22.10.08 15:12최종 업데이트 23.02.0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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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대교 아래를 지나가는 유람선. 이날 여행중에 아라뱃길에서 볼 수 있었던 유일한 배다. ⓒ 성낙선

 
경인 아라뱃길이 여전히 골치다. 11년째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인데, 최근에는 기존의 물류 기능을 과감하게 축소하고, 관광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에 따른 문제점들이 또 논란이 될 조짐이다. 이게 다 아라뱃길이 선박을 이용해 짐이나 사람을 실어 나르는 '교통로'로서의 기능 등 애초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그런데 2조 7000억 원이나 되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 서울에서 인천까지 4500t급 이하의 선박이 오고 갈 수 있는 '대운하'를 건설해 놓고, 그 거대한 물길을 기껏 뱃놀이나 다른 레저 활동을 즐기는 데 쓸 거라면, 대체 운하는 왜 건설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인 아라뱃길 안내판. 주변이 좀 어수선하다. ⓒ 성낙선

 
아래뱃길에서 마주친 수많은 인공 구조물

2일 아침, 아라뱃길 동쪽 끝에 위치한 판개목쉼터에서 먹구름이 얕게 깔린 하늘을 높이 올려다봤다. 비가 온다는 예보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서쪽 하늘에서부터 비가 내릴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판개목쉼터에서부터 아라뱃길을 따라 뱃길 서쪽 끝인 정서진까지 약 20킬로미터 길이의 자전거도로가 깔려 있다. 자전거로 짧게는 1시간, 좀 더 여유를 갖는다고 해도 2시간이면 충분히 여행을 끝낼 수 있는 거리다. 정서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이어서 바로 근처에 있는 청라호수공원까지 한 바퀴 돌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날 청라호수공원에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시간은 의외로 빠르게 흘러갔고, 자전거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자전거를 타다 말고 수시로 멈춰 섰다. 아라뱃길에는 온갖 인공 구조물이 넘쳐났다. 그걸 일일이 카메라에 담으려다 보니, 자전거를 타는 시간보다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그러다 결국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내가 아라뱃길이 아니라, 단순히 아라뱃길을 치장하고 있는 물건들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붓고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서 이 허울뿐인 물건들을 계속 찍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아라뱃길 자전거도로. 길가 조각공원에서 내려다 본 풍경 ⓒ 성낙선

 
아라뱃길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전거여행 명소 중에 하나로 꼽힌다. 자전거도로가 매우 평탄하게 깔려 있는데다 주변에 제법 눈길을 끄는 풍경이 많이 배치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라뱃길 자체는 아무 볼품이 없는 물건이다. 굳이 시간을 내고 돈을 들여 찾아갈 이유가 없다. 그곳에서 변변한 배 한 척 만나기 힘들다. 그렇다고 물이 맑고 깨끗한 것도 아니다. 인공 수로인 탓에 우리나라 하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스럽고 친근한 멋 같은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아라뱃길 자전거도로 위로 스치듯 지나가는 비행기. ⓒ 성낙선

 
이명박 정부가 남긴 '새빨간 거짓말'들

아라뱃길을 만들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이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래서 아라뱃길을 만드는 명분을 강화하고,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아라뱃길이 아닌 다른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더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럴 듯한 포장이 필요했다. 인공 구조물들만 그런 게 아니다. 정부는 아라뱃길 건설 사업을 설명하고 홍보하는 데 수없이 많은 수식어를 남발했다. 지금에 와서 그 화려한 구조물들과 수식어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니 그것들이 사실은 거의 다 '보기 좋은 겉치레'이자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아라뱃길을 만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이 길이 '수도권 육상운송 수단을 보완'하고 '관광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고 떠들었다. 각종 매체를 통해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쳤다.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또 그에 어울릴만한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다. 2012년 5월 25일, 아라뱃길 정식 개통식 현장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앞으로는 자동차나 기계류를 실은 배가 중국·일본은 물론 러시아, 동남아까지 운항하기 때문에 관광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기대가 아주 크다"라고 허풍을 떨었다.

거기에다가 아라뱃길을 건설하고 나면, '3조원 생산 유발 효과'를 거두고, '3만 명 고용 창출'이 일어날 거라는 터무니없는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그런 일들은 그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타당성도 희박하고 근거마저 불분명한 일을 밀어붙이는 데 무리수를 두다 보니, 그저 듣기 좋은 온갖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고 한 느낌이 적지 않다.
 

아라마루원형전망대. 아라뱃길을 지나가는 배들을 내려다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아래로 지나가는 배를 보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 성낙선

 
아라뱃길 건설 당시, 이명박 정부가 쏟아낸 말대로라면, 지금은 이 길로 국내외 화물선들과 여객선들이 빈번하게 드나들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 길에서는 장난감 자동차를 실어 나르는 화물선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교통수단으로 이용돼야 할 여객선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애초 아라뱃길을 통해서 인천 근해 섬들로 주민들과 여행객들을 실어 나른다는 계획은 어디로 갔을까? 그 대신 지금 이 뱃길에서 보게 되는 여객선은 김포와 인천을 오가는 유람선 한 척이 거의 유일하다. 이 유람선마저도 이용객 수가 너무 적어 골치다.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이 국민 등골만 휜다 

이쯤 되면, 애초 이 사업을 주도했던 사람들 스스로 어떻게든 남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사업을 주도한 인물들 중 이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 모든 책임을 일반 국민들에게 그대로 떠넘겼다. 11년도 더 지난 일을 헤집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업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결코 끝난 게 아니다.
 

아라뱃길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은 유람선 상품안내문. ⓒ 성낙선


개통 초기부터 이미 이 애물단지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만 매년 200억 원 이상이 쓰일 거라는 지적이 나왔다. 시간이 흘러, 각종 시설물들이 점점 더 낡아갈수록 그 액수는 더욱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 국민이 짊어져야 할 짐이 보통 무거운 게 아니다. 게다가 이 짐을 언제 어떻게 벗어 던지게 될지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 다시 아라뱃길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관광 기능 강화 등 용도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라뱃길은 이명박 정부가 남긴 대표적인 예산 낭비성 사업 중에 하나로 꼽힌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면, 위정자들이 국가 예산을 사용하는 데 더욱 더 신중해져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가 예산을 자기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만큼이나 가볍게 여기는 정치인들이 있다. 앞서 그렇게 큰 예산을 낭비하고 나서도 그 누구도 그 일로 책임을 지는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용도 변경이 또 다른 예산 낭비 사업으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아라서해갑문 근처. 아래뱃길의 끝이자, 국토종주 종착점을 알려주는 표지판. ⓒ 성낙선

 

아래뱃길의 끝, 정서진에서 바라다본 서해. 왼쪽으로 영종대교가 보인다. ⓒ 성낙선


이래저래 아라뱃길을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 아라뱃길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전거도로'라는 말까지 나돈다. 아라뱃길에서 화물선이나 여객선 대신에 수많은 자전거들이 오가는 걸 목격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한탄삼아 내뱉는 소리다. 그 말을 부정하기 힘든 게, 현재 아라뱃길을 가장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는 교통수단이 바로 자전거다.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 '단군 이래 최대 운하'를 건설했는데, 겨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전거도로'라는 말을 들어야 하다니 그냥 헛웃음만 나온다.

어찌 어찌하다 보니, 아라뱃길 중간 지점에서 점심 끼니를 때웠다. 가는 길에 가는비가 내리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몸이 젖을 정도는 아니어서 여행을 계속했다.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 달리 시간은 자꾸 늦춰져 정서진에 당도했을 때는 오후 4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서해 낙조를 마저 보고 떠나기로 작정하고 근처 공원 벤치에 자리를 폈다. 때맞춰 하늘에서 굵은비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비를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로 받아들였다. 풀었던 짐을 다시 싸들고 허겁지겁 정서진을 떠났다.
 

정서진. 돌 위 4대강 국토종주 안내도를 새겼다. 이명박 정부가 벌인 예산 낭비 사업의 끝판왕이 여기 누워 있다. ⓒ 성낙선

 
 
덧붙이는 글 정서진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공항철도인 청라국제도시역이 있어, 온몸이 다 젖기 전에 전철에 올라탈 수 있었다. 전철에 자전거를 실을 때는 양 끝 칸을 이용한다. 평일 출퇴근 시간에는 전철 이용을 삼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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