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혁신의 노예]
호아킨 페레즈 레이 스페인 국무장관

"법 위에 알고리즘? 노동자의 권리는 민주주의 문제"

5.

스페인

글.류승연

사진.이희훈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배달원 종사자는 45만 명. 배달앱 라이더와 택배, 우편 종사자까지 포함된 수치입니다. 이는 3년 전에 비해 10만 명이 넘게 늘어난 것입니다. 현재 배달앱 라이더만 집계한 정부의 공식 통계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온라인을 통한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2017년 2조 7326억 원에서 2021년 25조 6847억 원으로 연 평균 75.1% 폭발적인 상승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배달앱 라이더의 법적 지위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1년 5월 라이더 권익보호법안을 만든 스페인을 찾아, 두 나라 라이더들의 일상이 어떻게 다른지 그 나라의 변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말]

호아킨 페레즈 레이 국무장관
호아킨 페레즈 레이

그의 말은 분명했고, 또한 단호했다.

분명하고도 단호한 어휘들은 두 개의 요점을 향해 내달렸다. 알고리즘의 지시를 받아 일하는 라이더는 곧 노동자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목을 잡는 알고리즘은 스페인에서 결국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호아킨 페레즈 레이(Joaquín Pérez Rey) 스페인 고용 및 사회적 경제부 국무장관은 법학 박사다. 그는 욜란다 디아스(Yolanda Díaz) 스페인 제2부총리의 지명을 받아 지난 2020년 초 국무장관으로 부임한 후, 줄곧 고용 및 사회적 경제부의 실무자 역할을 수행했다.

2021년 5월 세계 최초로 라이더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내용의 '라이더법'이 스페인에서 통과된 데는 그의 공이 컸다. 그는 노사정이 참여한 사회적 대화의 정부 측 인물로 참여하면서 합의를 이끌었다.

그에게 무엇을 근거로 라이더가 노동자라는 판단을 내렸고, 1년 전 법제화된 라이더법은 스페인에서 어떻게 평가 받고 있는지 물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0월 10일 호아킨 페레즈 레이 국무장관을 스페인 마드리드 시내에 위치한 주정부 사무소에서 만났다.

호아킨 장관 사진

라이더는 왜 노동자인가

Q.
스페인에서 세계 최초로 라이더법이 제정된 지 1년이 지났다. 총평을 한다면?

"새로운 기술 환경 속에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노동 성격을 결정 짓는 데 스페인이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최근 신기술의 출현과 함께 전에 없던 형태의 노동·직업이 생겨나고 있다. 이 때문에 심각한 문제도 발생했다. 과거엔 보통 노동자들에게 주어졌던 보호 장치들이 (신산업 노동자에겐) 해당되지 않거나 버려지고 있다. 사회 보호의 관점에서, 대부분의 라이더들에겐 적절한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라이더법은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이 종료되도록 하는 시도였다. 라이더법이 제정된 지 1년이 지난 현재, 대부분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다른 스페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형태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라이더들은 더 이상 새로운 업무 형태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피해를 입지 않는다. 라이더법은 기술이란, 노동 그리고 사회적 권리와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걸 알려준 사례다. 그게 라이더법의 목적이었고 1년이 지난 지금, 그 목표가 달성됐다고 평가한다."

Q.
라이더법 제정 전, 라이더들에게 이렇다 할 보호 장치가 없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였나?

"그들에겐 제대로 된 노동 조건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적절한 급여가 주어지지 않았고 단체협상이나 노동조합이 가지는 권리도 없었다. 그들은 거리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법안을 추진하게 된 것도 이들에게 스페인의 다른 노동자들이 누리는 같은 수준의 안전을 보장해주기 위해서였다."

Q.
'자율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라이더가 왜 노동자라고 생각하나.

"라이더는 스스로 자신이 자영업자인지 노동자인지 결정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업무 형태가 가진 특성에 따라 사회적으로 판단해야 할 부분이다. '배달업엔 자영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사실을 처음 지목한 이들이 스페인의 노동 사회보장 감사관들이었다. 그 다음 법원에서 판결을 내렸다. 마지막 법률 제정 단계에서 우리는 알고리즘에 따라 노동자가 업무를 해야 하는 관계는 엄연한 고용 관계지 '자영업'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예를 들어 한 노동자가 핸드폰 앱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하긴 하지만 그 정보나 프로그램은 정작 타인의 것인 데다 노동자가 언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까지 프로그램을 통해 지시를 받는다면 이는 곧 '가짜 자영업자'라 할 수 있다. 배달앱을 통한 노동은 '노동자'의 업무이지 자영업자의 서비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호아킨 장관 사진 2

"노동법과 조화가 안 되는 기술?
살아남을 수 없다"

Q.
라이더법에는 '알고리즘 공개' 항목도 들어가 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을 알 수 있도록, 배달앱 회사가 이를 공개하게 한 내용이다. 어떤 문제 의식으로, 이를 법제화 했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라이더법에는 두 가지 큰 의의가 있다. 하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알고리즘을 활용해 배달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알고리즘이 노동자의 작업 조건에 영향을 미칠 경우 회사가 그 내용을 노동자 대표에게 일러줘야 한다는 점이다.

배달 노동자뿐 아니라 요즘 많은 노동자들의 삶은 컴퓨터가 정해둔 계산식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때문에 컴퓨터가 어떠한 결정을 내린다면 노동자들은 왜, 어떤 기준으로 그 결정이 이뤄졌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알고리즘 변경 과정에서 성적, 인종적인 편견·차별 등 헌법 위반이나 노동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나면 처벌할 수도 있다."

Q.
알고리즘이 문제가 된 사례가 구체적으로 있었나.

"잘 알려진 사례 하나가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 노동법원은 글로벌 배달앱 기업 딜리버루가 집회·시위에 참여한 노동자들에 알고리즘을 통한 '패널티'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반노조 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알고리즘이 노동자의 삶을 방해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노동자들이 그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라이더법으로 그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특히 각 회사 알고리즘이 노동법, 노동조합법 등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거꾸로 말하면, 앞으로 노동법과 노동조합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알고리즘은 살아남지 못하게 하겠다는 이야기다.

물론 알고리즘의 발전은 정부에도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곤 한다. 정부도 이미 노동 분야나 사회보장제도에서 사기 행각을 잡아내기 위해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술 발전 속에서도 알고리즘이 '휴머니즘'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고리즘이 (사람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정글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Q.
라이더법은 라이더의 노동권을 강화하자는 내용의 법안이다. 보수 정치권이나 기업들의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법 제정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문제가 아예 없지 않았지만 비교적 쉽게 해결된 편이다. 라이더법은 실제론 광범위한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스페인에서 가장 큰 2개 노동조합의 동의 뿐만 아니라 스페인 내 2개 고용주 단체로부터도 동의를 얻었다. 기존에 있던 기업들 또한 새 기술의 발전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을 보호할 제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국회 역시 라이더법을 폭 넓게 지지했다. 스페인 법률 시스템에서 법적 효력을 갖고 있는 '왕실칙령법(Real Decreto Ley)'의 검증도 받았다. 사회적 지지와 정치적 지지가 동시에 이뤄진 셈이다."

Q.
라이더법 제정 후 스페인에서 나타난 긍정적인 변화를 꼽는다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변화는 각 회사들이 배달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을 고용노동자로 인정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라이더법 제정 후) 사회보장제도상 일반 체제(Regimen General, 고용노동자 형태)로 가입한 이들의 수가 크게 늘었다. 이로써 노동자가 된 라이더들은 더 많은 권리를 갖게 됐다. 사회보장제도의 보호를 받을 권리와 노동조합을 할 권리, 또 단체협상에 의해 보호받을 권리,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을 권리, 노동 시간 제한의 권리 등이다."

Q.
현재 라이더법이 현장에서 잘 시행되고 있나.

"라이더법은 매우 중요한 (경제적) 모델을 바꾸는 내용이라, 현실 적용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더법은 대체로 잘 이행되고 있다고 본다. (라이더법은) 스페인 정부와 국회가 결정을 내린 부분이라 회사들에겐 이를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법을 지키지 않는 회사들은 매우 위중한 처벌을 받게된다. 스페인 노동부는 법 적용을 주저하고 있는 회사를 이미 매우 가혹하게 처벌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최근 사태들은 단순히 기업이 법을 지키지 않아 처벌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라이더법은 신기술 속에서 파생된 '신 노동'과 관련한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우리는 문화가 바뀌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기술 발전은 권리 발전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 점을 확실히 말하고 싶다. 스페인 사회에서 '노동자 권리를 없애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게 하는 기술 발전은 있을 수 없다. 기술 발전과 권리는 서로 적이 아니라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

호아킨 장관 사진 3

스페인 정부는 왜 글로보에
천문학적인 벌금을 매겼나

Q.
최근 노동부는 글로보가 라이더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며 사회보장금 비지급분을 포함해 천문학적인 벌금 7890만 유로(바르셀로나 6320만, 발렌시아 1570만, 한화 기준 1100억 원)을 부과했다. 다만 이번엔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지역만 문제 삼았다. 이를 마드리드 등 스페인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 있나?

"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기업들에 벌금을 부과하지 않아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법을 지키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문화의 변화'가 이뤄지길 바란다. 그런데 법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회사가 있다면 그들은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회사도 이 나라 법 위에 존재할 수는 없다. 노동부는 법을 완벽하게 이행하게 하기 위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계획이다. 최근 특정 회사에 부과된 벌금은 라이더법 이행을 위한 노동부의 각별한 주의와 약속 이행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Q.
라이더법 시행 이후 일부 배달앱들은 하청업체를 통해 라이더를 고용하는 형태로 법 망을 피해가고 있다.

"가짜 자영업자를 고용하는 건 엄연한 규칙 위반이다. 그래서 매우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다만 배달원 일부를 하청업체를 통해 고용하는 건 회사의 선택 사항이다. 남용 행위만 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는 문제는 없다. 하청 노동자도 노동자다. 노동법에서 정해둔 권리를 우회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부는 앞으로도 노동 현장에 대한 감사나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적용되는지 지속적으로 관찰해나갈 계획이다."

Q.
스페인에서 라이더법이 제정된 이후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라이더의 노동권 강화를 위한 논의가 확장되고 있다. 법 제정에 기여한 당사자로서 이런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라이더의 노동권 강화란 글로벌한 문제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신기술에 따른 새로운 형태 노동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글로벌'한 답이 필요하다고 본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1년 12월 스페인 모델을 참고해 유럽 전체에서 디지털 플랫폼을 관리할 '디렉티바(directiva, 입법지침)'를 진전시켰다. 이 입법지침은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내용이다. 스페인은 이를 지지한다. 스페인 라이더법에 영향을 받은 이 입법지침이 전 유럽으로 뻗어나가 각국의 야심찬 법안으로 실현되기를 바란다."

Q.
보수 정당이 집권한 한국에서는 라이더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되기 어렵다. 한국 국회는 2개 정당이 의석을 독점하고 있다. 보통 '노동권 강화'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를 때 한 쪽은 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해 반대하고, 다른 한쪽은 사회적 비판 여론을 의식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한국 정당에 조언한다면?

"신기술로 새롭게 생겨난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에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해줄 것인지 여부는 진보, 보수를 가릴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냐 아니냐의 문제다. 사회가 노동자의 권리는 내다버린 채 기술 발전만 추종하고 있을 수는 없다. 디지털화는 늘 민주적이어야 한다. 사회는 법과 공평함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하고 불공정한 메커니즘을 지우고 기업들이 더 나은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관련 분야의 관계자들이 모일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라이더법은 라이더들에게만 좋은 게 아니다. 디지털 플랫폼이 그동안 불공정한 경쟁을 해왔다고 보는 회사들에게도 좋은 법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금 세상이 맞이하고 있는 '디지털화'는 우리가 가진 권리들과 민주주의에 부합하도록 일정한 규칙에 따라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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