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중현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좋아요를 수집합니다>(애지, 2022)
▲ <좋아요를 수집합니다> 시집 표지  이중현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좋아요를 수집합니다>(애지, 2022)
ⓒ 애지

관련사진보기


전반적으로 세상 모든 것의 상품화가 원만히 진행되는 국면임
극소수 사람들이 자신은 상품이 아니라고 저항하지만 무시할 수준임
-<시장 동향 보고서> 부분


이중현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좋아요를 수집합니다>(애지, 2022)를 읽다가 나는 내가 "무시할 수준임"을 알게 되었다.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나 "자신은 상품이 아니라고 저항"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에 입가에 잠깐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무엇보다 고독, 죽음의 상품화가 시대의 빅히트 상품임
고독, 죽음에 대한 맞춤형 상품이 다양하면서 고품질로 개발 중임
//(...)//
기후 위기는 곧 시장의 기회 창출이 될 것임
기후 위기 불안의 상품화는 장기 호황이 예상됨


'시장 동향 보고서'는 시집 제 3부에 실려 있다. 1부와 2부에 실린 시 제목을 열거하면 이렇다.

번개 배송, 즉석요리, 나를 사 가세요, 자영업자, 인공지능 무인편의점, 구의역 9-4승강장에서, 로봇 노동자를 보며, 질주, 하이패스, 고용계약서, 마케팅, 자동 업데이트, 고객마저 팝니다, 청년 백수, 사과문, 쇼핑노동자, 나는 스팸 문자였다, 커피 가격표 등등

한 권의 시집이 단 한 편의 예외도 없이 한 가지 주제로 일관되어 있는 경우는 매우 드믄 일이다. 그것도 시인 자신의 서정적 자아가 아닌, 마치 남의 몸과 영혼으로 들어가 쓴 듯한 시가 대부분이어서 내심 놀랍기도 했다. 시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혹시 이번 시집은 기획된 것이 아닐까? 내 예감이 맞았다. 다음은 출판사가 제공한 책 소개를 읽다가 만난 글이다.

"지금 여기, 우리 삶을 길들이는 것들을 만나 그들을 알고 싶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모두를 만나지는 못했으나 대화가 불편했고, 내가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거나 오역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들은 명랑했고, 나는, 아팠다."

그는 왜 아픔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번 시집을 내려고 했을까?

김진경 시인은 시집 해설에서 "이중현 시인은 1980년대 민중시의 정신을 버리지 않고 시대변화를 예리하게 포착, 문명사적 비판 차원으로 확장함으로써 갱신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중현의 시가 서 있는 자리는 '디지털 자동화 시대 민중시의 진화'로 요약할 수 있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또 이렇게 적고 있다.

"일정한 트렌드로 세팅된 시스템 속에서 그 시스템을 넘어서는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는 그 때문에 많은 상처를 안고 교육과 관련된 공직에서 은퇴하여 포천의 어느 산 중턱에 산방을 마련하였다."

이중현 시인의 마음의 근황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일정한 트렌드'란 무엇일까? 앞에서 소개한 '시장 동향 보고서'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전반적으로 세상 모든 것의 상품화가 원만히 진행되고 있으며, 극소수 사람들이 자신은 상품이 아니라고 저항하지만 무시할 수준"인. 시인도 거기에 해당되어 고통을 겪었던 것은 아닌지.

이중현 시인은 혁신학교 교장을 지낸 바 있다. 혁신학교와 관련한 책도 여러 권 펴냈다. 그도현직에 있고 나도 현직에 있었을 때 우린 인성교육과 관련한 심포지엄에 발표자로 나란히 선 적이 있었다. 중등교육을 담당한 우리 말고도 대학교수, 장학사 신분의 발표자가 두 명 더 있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다른 세 분에 비해 공교육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평교사였다. 개인 교사로서의 한계가 분명한 다소 낭만적인 실천사례를 중심으로 발표를 마친 나에게 그는 짧게 한 마디 했다. "멋져요."

이 한 마디로 지금까지도 나는 그때 내가 멋진 발표를 한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그날 내가 발표한 내용에는 그 무엇과도 대체가 불가능한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 값'에 대한 다음과 같은 소박한 실천 사례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해마다 첫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2와 60의 차이는 몇 배입니까?" "30배요."
"그럼 20조 2와 20조 60의 차이는?"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준다.

"차이가 거의 없지요. 그것은 2와 60 앞에 붙어 있는 20조라는 숫자가 너무 크기 때문이지요. 선생님은 20조라는 숫자를 '생명 값'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뒤에 붙은 2나 60이라는 숫자는 공부를 좀 더 잘하고, 얼굴이 좀 더 예쁜 여러분의 조건을 뜻하지요. 그 조건들이 30배가 된다고 해도 그 앞에 붙은 여러분의 생명 값이 너무 크기 때문에 거의 차이가 없게 되지요. 선생님은 그런 마음으로 여러분을 대하고 싶습니다."
 
 
다시 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시장 동향 보고서'에는 시인의 생각이 반영되었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의 심화로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음을 개탄하고 우려하는 시인의 마음의 중심에는 "사람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뜨겁게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교육자라면 마땅히 지니고 있어야 할 당연한 마음가짐을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망상 정도로 취급하기도 하는 우리 교육계에서 좌절을 겪기도 했으리라.

사회에 나가기 전에 학교에서부터 상품 취급을 당한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자기 감정? 낭만적이군요/내가 온전히 나를 살아봤으면 해요//감정도 관리하고 조립해서/포장, 전시하는 거지요/등급이 있으니 가격도 다르겠고요//(...)//버텨야지요./가슴속에 멍, 아니 꿈을 키우면서/꿈을 사려고 조립한 감정을 파는/살아있는 상품이니까요 -<나를 사 가세요> 부분

<봄, 커피숍을 나서며>에는 시인 자신이 자동 주문기 잎에서 "커피를 스스로 주문하고, 다소곳이 가져와 마시며/커피숍 창 너머 시위를 음미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자동화 이전 같으면 종업원이 했을 노동을 대신하고, 커피를 마시고는 매뉴얼에 따라 뒤처리를 하며, 이것이 "몸에 밴 놀이일까, 노동일까/약속일까, 고용일까"를 의심한다.

박두규 시인은 추천사에서 "오랜만에 묶은 이중현의 이번 시들은 현실 자본주의의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누리는 현대인의 도시 정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그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위해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을 치열하게 드러낸다."라고 강조한다.

시집 4부에서 시인 자신의 마음으로 돌아온 듯한 시 한 편을 만났다. 제목이 <데이터가 소진되었습니다>이다. "데이터 소진 문자가 왔"지만 시인은 "불편과 동행할 작정"이다. "느려도 무방하니/속도를 돈으로 사지 않겠다//용량도 줄여/더 헐벗고 싶"다고 말한다. "데이터 소진으로/버벅거리며 살고 싶다//걸어가서 묻고, 손잡고 싶고/내 몫의 시야만이라도 안고 싶다"고 마음을 다진다.

이런 시인의 마음가짐에 대해 김진경 시인은 "그가 꿈꾸는 것은 아마도 이윤 코드로 세팅되어 인간을 옥죄는 디지털 플랫폼의 세계로부터 인간이라는 코드를 회복하는 것일 게다."라고 긍정적으로 진단한다.

이 시를 읽고 나서야 나도 멀미 같은 것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대다수의 다른 시편들은 디지털 자동화 시대의 자화상이랄까. 거울 속의 우리, 혹은 내 자신의 모습이 친근하면서도 끔찍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아팠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중현 시인은 1987년 <소설문학> 신인상(시), 1988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물끄러미 바라본 세상>, <아침 교실에서>, <사람을 보면 눈물이 난다>가 있으며, 동시집으로 <공부 못하는 이유>, <나는 나> 등이 있고, 동화집과 혁신교육 관련 도서도 여러 권 낸 바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변화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나 느낌의 이모저모를 피력하는 것이 거지반인 나의 좁은 시 세계를 돌아보게 한 것만으로도 이번 이중현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읽기는 의미가 깊다 하겠다.

좋아요를 수집합니다

이중현 (지은이), 애지(2022)


태그:#이중현 시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