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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삶의 ‘흔적’이 쌓인 작은 공간조직이 인접한 그것과 섞이면서 골목과 마을이 되고, 이들이 모이고 쌓여 도시 공동체가 된다. 수려하고 과시적인 곳보다는, 삶이 꿈틀거리는 골목이 더 아름답다 믿는다. 이런 흔적이 많은 도시를 더 좋아한다. 우리 도시 곳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그곳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기쁘게 만나보려 한다. [기자말]
통행이 뜸해진 1호선 노량진역 바깥 계단은, 셀 수 없을 만큼의 발길에 깎이고 닳아버린 모습 그대로다. 바람도 여전히 퀭하고 차갑다. 수많은 청춘이 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부는 바람에 어깨를 움츠리고 옷깃을 여몄을 것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진학에 실패한 청춘은 내몰리듯 노량진역으로 찾아 들었다.

절치부심. 청춘의 짧은 시간을 희망이란 가느다란 빛을 갈구하며, 이 공간에 기대었다. 종로에 있던 입시학원이 옮겨와 진학에 실패한 청춘을 품으면서, 노량진은 학원가로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풍경이 변했다. IMF 구제금융을 겪고 난 후 몰아친 신자유주의 광풍에 휩쓸려 모두가 유폐 당한 모습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만큼의 극한 경쟁의 장이다. 간신히 취업한 직장은 언제 내몰릴지 모르는 살얼음판이다.
 
1호선 노량진역 바깥 계단에서 본 공시촌의 모습. 기업화한 대형 학원들이 큰 길가를 점령하고, 그 뒤로 고시원 등 생활시설이 자리해 공시촌을 형성하고 있다.
▲ 노량진역 앞 1호선 노량진역 바깥 계단에서 본 공시촌의 모습. 기업화한 대형 학원들이 큰 길가를 점령하고, 그 뒤로 고시원 등 생활시설이 자리해 공시촌을 형성하고 있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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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보장되는 공직(公職)이 인기를 끌고, 그 길에 접어들려는 기약 없는 경쟁에 청춘은 불나방처럼 기꺼이 자기를 내던진다. 볼모와 유폐, 저당의 시간이 만들어 낸 공시촌의 모습이다.

교과서에 실린 수필에선 '청춘!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라 배웠다. 정말 그러한가? 2022년 청춘은 길을 잃었다. 아르바이트에, 비정규직 불안정하고 위험한 일터에, 대학을 졸업한 청춘의 절반이 일터를 찾지 못하고 세상과 쌓은 두꺼운 벽을 높이는 실정이다.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아 좋은 직장에 취업하려, 혹은 다른 대학에 편입하려는 청춘도 노량진에 넘쳐난다. 그래서 청춘이란 말에서 설렘을 느끼지 못한다. 측은지심을 넘어 수오지심마저 느낀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빙하기의 청년

2000년대 후반, 비정규직 청년의 평균 임금 '88만 원'은 소외 계급으로 전락해버린 청년을 진단하는 고유명사였다. 88만 원 세대는 그대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로, 다시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 꿈까지 포기한 '오포세대'로, 이를 넘어 거의 모든 미래를 포기할 처지를 대변하는 'N포세대'로 치환된다.

청춘은 오늘도 암울한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미래를 향한 낙관적인 전망으로 자신을 위해 즐겁게 투자해야 할 시기에, 지금의 청춘은 오히려 절망의 미래를 간파하고 스스로 모든 걸 내려놓아 버렸다.
 
공시촌 수험생의 애환을 달래주는 주점 골목의 일부. 주말이면 골목은 제법 수험생들로 북적인다.
▲ 주점 골목 공시촌 수험생의 애환을 달래주는 주점 골목의 일부. 주말이면 골목은 제법 수험생들로 북적인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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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는 체념과 자조가 청춘의 정신과 의지를 갉아먹는다. 우울과 절망에 휩싸여 낙오자 대열에 기꺼이 자신을 합류시킨다. 이런 대열을 과연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대학교는 물론 직장까지 정해진 계급에 따라 배정되고 나뉘는 극심한 피로사회다. 이 구조적인 모순을 깨뜨리지 못하는 한 희망은 성과주의와 승자독식이라는 망상에 불과하다.

작금의 청춘에게 차별보다는 다름, 증오와 저주보다는 함께라는 포용과 관용, 스스로 낙오하기보다 삶과 생을 더 치열하게 사랑해 보라 말하고 싶다. 길은 어쩌면 여기서부터 열릴지 모른다.

공간의 형성

고시원이 있었다. 방은 최소한의 생활과 학업이 가능한 구조로 무척 협소하다. 고시 준비 전용으로 탄생하였고, 쪽방을 방불하는 극한의 공간 경제성을 추구하였다. 신림동에 집단화해 있던, 꿈꾸는 청춘의 공간이었다.
 
1970년대 말 노량진에 이주해 입시학원의 길을 연 D 학원의 모습. 노량진 공시촌은 이 학원에서 출발했다.
▲ 노량진 D 학원 1970년대 말 노량진에 이주해 입시학원의 길을 연 D 학원의 모습. 노량진 공시촌은 이 학원에서 출발했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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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들어 노량진에도 하나둘 고시원이 생겨난다. 입시 공간에 교원 임용고시학원이 길을 연다. IMF를 전후하여 공무원임용 전문학원이 등장하고, 각종 자격증 등 취업 관련 학원이 성황을 이룬다. 이때 이미 취업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했고, 이에 따라 수험생은 시간을 아낄 필요성이 대두하였다. 당연하게 노량진에도 고시촌이 형성되었다.

노량진 학원가는 1990년 말 대형화의 길을 걷는다. 기업형 학원도 다수 등장한다. 대형화 추세에 맞춰, 학습공간도 다양화한다. 변형된 기숙 형태다. 거주공간은 규모와 환경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이름도 여럿이다. 그러함에도 모두 고시원 변형에 불과하다. 수요자인 수험생 경제력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한계다. 소위 말하는 노량진 공시촌의 완성이다.

공간은 노량진역 중심으로, 노량진로 남측에 넓고 길게 분포한다. 동작구청에서부터 동작경찰서를 지나 사육신 공원 맞은편까지가 동서 방향이고, 남북은 대로변에 연이은 대형학원 건물 뒤편으로 주택가 곳곳까지 파고든 고시원과 원룸, 크고 작은 상점과 근린시설이 구성하는 공간이다.
 
고시원과 스터디 카페, 일반 근린시설이 입지한 공시촌의 한 골목. 약국 이름마저 이곳 공간구조를 축약하여 대변하고 있다.
▲ 공시촌 어느 골목 고시원과 스터디 카페, 일반 근린시설이 입지한 공시촌의 한 골목. 약국 이름마저 이곳 공간구조를 축약하여 대변하고 있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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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검정 대비시설, 스터디 카페와 독서실, 저렴한 뷔페식당과 편의점, 분식점이 즐비하다. 전자오락실과 동전 노래방, 부담 없이 가볍게 한잔할 수 있는 주점 골목도 이 공간이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다.

수험생들은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누군가에 비용을 의존하기 때문에 먹고 쓰는 일상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간편식으로 수험생들이 끼니를 해결하는 '컵밥 거리'는 이런 맥락에서 탄생하였다. 노량진로 동쪽에 줄 지어선 컵밥 거리 가게들은 고단한 청춘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이마저도 줄어든 공시 열풍, 인터넷 강의로 수험생이 빠져나가면서 문을 연 곳은 몇에 불과하다.
 
큰 길가에 줄지어 선 컵밥 거리. 오후 한가운데인 시간에도 이용하는 수험생이 제법 많다.
▲ 노량진 컵밥 거리 큰 길가에 줄지어 선 컵밥 거리. 오후 한가운데인 시간에도 이용하는 수험생이 제법 많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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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이었거나 독서실이었음이 분명해 보이는 집들이, 곳곳에서 리모델링 중이다. 그만큼 공시생 수요가 감소했음을 대변하는 현상이다. 인터넷 강의가 일상화하여 비용부담을 줄이고 있다. 굳이 노량진이 아니어도 공부할 여건이 갖춰진 셈이다. 여기에 응시생의 절대 감소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이다.

수십 년래 최저라는 2022년 7급 공무원 경쟁률이 이런 현상의 징표다. 원인은 여럿이다. 그중 제1의 요인이 낮은 임금이다. 9급 공무원 퇴직이 증가하고,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최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길거리에 나선 일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함에도

그래도 공간은 살아있고, 정해진 규칙과 관성에 따라 움직인다. 공시생의 일과에 따라 공간도 깨어나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공부하며, 토론하고 모색하다가 곤한 하루의 잠에 빠져든다.

새벽 5시 경이면 공간이 잠에서 깨어난다. 부지런한 발걸음이 대형학원에 딸린 자습실을 향한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고요를 대신하는 하루의 시작이다. 9시 언저리에 오전 수업이 시작한다. 강의실 자리도 경쟁이 극심하다. 짧은 두어 번 휴식 시간을 포함한 4시간 오전 강의가 13시에 종료한다.

점심시간, 공간은 시장통처럼 분주해진다. 수험생 전용 뷔페식당과 분식집이 공시생 단골 메뉴다. 대부분이 혼밥족이다. 편의점을 이용하는 수험생도 상당수다. 인스턴트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거나 군것질을 위해서다. 알려진 만큼 컵밥의 이용률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였다. 거리와 시간, 편의성 등이 제약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육신 역사공원 맞은 편에 자리한 대형학원과 노량진로 가에 자리한 컵밥 거리.
▲ 대형학원과 컵밥 거리 사육신 역사공원 맞은 편에 자리한 대형학원과 노량진로 가에 자리한 컵밥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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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해결한 일부가 동전 몇 개로 오락실을 찾아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오후 강의가 없는 수험생들은 스터디 카페나 독서실, 자습실로 자리를 옮긴다. 18시를 전후해 저녁 식사가 이뤄지고, 이때부터 삼삼오오 토론하고 학습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모임이 활기를 띤다.

22∼23시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하루의 어둠을 뒤로하고 각자의 거주공간으로 다시 스며든다. 이런 피곤한 일과가 365일 쉼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공간이 노량진 공시촌이다.

시대의 문제로

노량진이라는 공간에 청춘의 시간을 유예한 수험생은, 결코 이생망이 아니다. 이들은 노량진 밖을 '속세'라 칭한다. 첩첩산중에 자리한 절간도 아닌데 말이다. 이들이 이 공간을 소비하는 방식을 보면 답은 명쾌해진다.

몸이건 마음이건 노량진을 결코 안정된 생활공간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취준생 신분의 불안을, 한 평 남짓 고시원에 몸을 누이며 미래를 희구한다. 현재의 시간에서 뼈를 깎는 고통으로 기꺼이 시간과 경쟁을 감내하고자 하는 청춘이다. 노량진이라는 공간을 결코 절망으로 읽고 소비하지 않는다. 주어진 이번 생의 삶과 미래를 알차게 꾸미려 꿈꾸는 이들이다.
 
노량진 한 대형학원의 건물 통로에서 바라 본 여의도. 긴 터널 같은 수험생 기간을 지나 모두 밝은 미래에 다다르길 응원한다.
▲ 안과 밖 노량진 한 대형학원의 건물 통로에서 바라 본 여의도. 긴 터널 같은 수험생 기간을 지나 모두 밝은 미래에 다다르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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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실패를 개개 청춘의 문제로 돌리곤 한다. 기성세대의 생각 깊숙이 뿌리내린 '자기 계발'이란 논리를 앞세워, 실패가 단지 노력과 능력 부족이라 치부한다. 그게 아님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청춘은 극심한 피로사회가 양산해낸 피해자일 뿐이다.

청춘의 실패와 체념, 절망이 개인 차원이 아님은 물론 세대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사회 전체 문제이자 공동체가 발 벗고 나서 해결해 내야 할 시대의 숙제다. 더 빛나야 할 청춘들의 미래를 열렬히 응원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라는 현실이 그저 가슴 절절할 뿐이다. 그러함에도 속세를 벗어난 노량진 공시촌은 오늘도 푸른 꿈을 꾸고 있다.

태그:#노량진_공시촌, #고시원_대형학원, #IMF_신자유주의, #88만원_삼포세대_오포세대_N포세대_이생망, #청춘_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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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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