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여느 때보다 이른 설 명절이 반갑기만 하면 좋으련만 생각만 해도 가슴 한 편이 답답해지는 이들도 있죠. 남편 뒷바라지만 강요하는 시어머니, 걱정인지 염장인지 모를 말만 늘어놓는 친척들, 설 연휴에도 일하라는 사장님, 찬바람 불면 생각나는 '추억의 빌런'까지. 그들이 보고 무언가 깨달을 수 있는 영화와 드라마, 노래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이미 2023년이 시작됐다지만 우리에게 설연휴는 '진짜' 한 해가 시작되는 고유의 명절이다. X 세대든 밀레니얼 세대든, 혹은 베이비붐 세대든 이유 불문하고 이 연휴엔 가족들이 한데 모여 덕담이든 잔소리든 서로 주고받는 게 전통처럼 자리잡았다. 소중한 형제자매 친척일가와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만 남기면 가장 좋겠지만, 매번 명절마다 크고 작은 다툼 또한 뒤따르는 법. 심지어 가족 간에 불거진 갈등이 종종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일도 있었다.
 
어떤 일이든 원인은 있는 법. 결혼, 출산, 육아, 취업 등등 개인 대소사를 거침없이 당사자 앞에 꺼내곤 하는 이, 며느리나 가족 구성원을 마치 악덕 업주마냥 부릴 생각만 하는 이 등을 '명절 빌런'이라고 칭해보자. 물론 이 빌런의 깊은 속뜻까지 헤아리면 이해 못 할 일이 뭐 있겠냐만 당장 소중한 시간과 마음을 담아 달려온 사람 입장에선 적잖이 맘 상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때다.

잠시 갈등은 제쳐두고,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함께 이 영화들을 관람해보는 건 어떨까. 거칠어진 호흡도 가다듬고, 서로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돌아볼 기회는 분명 될 것이다. 대체 휴일인 24일까지 포함해 이번 연휴는 총 4일이다. 날짜 및 상황별로 추천해보았다.
 
시댁 먼저? '처댁' 먼저? 속 터지기 시작하는 1월 21일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 워터홀컴퍼니(주)


 
연휴 첫날부터 아마 눈치싸움은 시작될 것이다. 속도 모르고 시댁에 보낼 선물부터 생각하는 남편, 혹은 장인과 장모부터 챙겨야 한다며 기선제압을 하려는 아내 모두에게 21일은 피곤하게 다가올 것이다. 차례상 준비와 친척들 면면을 떠올리다가 배우자 얼굴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물에 기름을 부은 듯 화가 톡톡 솟아오를지도 모를 일. 눈치 없는 내 배우자가 미워 보인다면 양자경 주연의 <에브리웨어 에브리씽 올앳원스>를 권한다.
 
지난해 10월 국내 개봉한 <에브리웨어 에브리씽 올앳원스>는 권태기에 빠진 한 부부가 평행우주, 즉 자신들이 존재하는 또다른 차원의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게 되며 잊고 있던 꿈과 서로의 마음을 재확인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남편과 함께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양자경)은 어느 날 당국의 강력한 세무조사로 경영권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고, 남편 웨이먼드 왕(키호이콴)은 그런 에블린에게 이혼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딸 조이(스테파니 수)는 게이라는 성정체성을 내내 묵살당하자 반항심이 극에 달해 분노를 터뜨리기 일보직전이다.
 
콩가루 가족이 주인공인 판타지 영화로 볼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곳곳에 따뜻한 가족주의적 시선을 잃지 않으며,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처가살이를 하며 아내는 물론이고, 장인어른에게도 무시당하며 살아온 남편이 알고 보니 다른 우주에선 온 세상에서 각자의 삶을 사는 여러 존재들을 구하기 위한 영웅이었던 것. 이 영화는 수많은 선택지 앞에 놓인 에드먼드와 에블린의 삶을 교차로 보여주며 인생의 묘미를 깨우치게끔 한다. 당장은 미워보이고, 권태로워 보이는 일상을 사는 기성 부부라면 함께 필람해야 할 첫 번째 영화일 것이다.
 
보는 방법: 이 영화는 아직 극장 상영이 끝나지 않았다. 수도권 지역이라면 더숲 아트시네마, 아트하우스모모, 에무시네마, 헤이리시네마 등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에서 1일 1회씩 상영한다. 비수도권 지역에선 그때그때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상영관을 찾아야 하는 수고가 있겠지만,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OTT 플랫폼 중에선 웨이브를 통해 볼 수 있다.
 
1월 22일, 양가 부모님이 빌런이라면? <두 교황>
 
 영화 <두 교황> 스틸컷

영화 <두 교황> 스틸컷 ⓒ 넷플릭스


 
연휴 둘째날, 온 가족이 아마 한 자리에 모여 한 끼 이상의 식사를 했을 것이다. 십중팔구 시아버지나 장인어른 혹은 시어머니나 장모님, 그도 아니라면 집안 어른 중 누군가가 빌런으로 등장할 타이밍. 이럴 땐 서로 다른 가치관 차이로 대립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대통합과 아름다운 우정을 몸소 실천한 두 어르신의 이야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9년 12월 개봉한 영화 <두 교황>은 베네딕토 16세와 그 후임으로 교황 자리에 오른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다. 실존하는 두 인물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성추문과 각종 비위로 권위가 추락한 카톨릭계를 소재로, 보수와 개혁진보를 상징하는 두 인물의 선택을 집중 조명한다. 구습과 몰락의 기운을 온 어깨에 짊어진 베네딕토, 그런 가톨릭계를 뒤로하고 은퇴 의사를 밝히러 온 프란치스코는 서로 상반된 가치관을 지녔다. 하지만 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세상에 실천하겠다는 정언 명령에서만큼은 진실한 마음이다.
 
영화는 지는 별로서 온 악습을 떠안고 사라지는 보수 신부와 피하고 싶었으나 결국 변화와 개혁이라는 사명을 받든 진보적 신부를 통해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명절이면 유행처럼 번지곤 했던 양가 친척들의 정치 신념에 따른 갈등, 누군가는 큰소리를 내거나 얼굴을 붉혀야만 끝나곤 했던 무의미한 토론들에 치를 떨었다면 이 영화를 소개해 주자.
 
보는 방법: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인 만큼 해당 플랫폼 가입자라면 언제든 볼 수 있다. 양가 가족이 대형 TV 앞에 둘러 앉아 함께 귤이라도 까먹다 보면 진정한 두 어르신에 동화돼 진정한 대통합을 이뤄낼 지도 모른다.
 
사랑스럽던 조카들이 미워지는 연휴 3일차?
 
 영화 <벨파스트> 스틸컷

영화 <벨파스트>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결혼한 형제자매를 둔 사람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조카바보'가 돼 봤을 것이다. 뭔가에 홀린 듯 실실 웃음이 나고, 가뜩이다 얇은 지갑을 탈탈 털어서라도 선물을 갖다 바치곤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명절에 만난 조카들은 그걸 새까맣게 잊은 눈치다. 더욱이 눈물 콧물 짜내며 온 집안이 떠나가라 울기라도 하는 날엔 더없이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는 새벽녘 무렵보다 마음이 더욱 고달파지곤 한다.
 
지난해 3월 개봉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까지 받은 영화 <벨파스트>는 바로 그 천둥벌거숭이 같은 유년의 시선으로 가족을 바라본 가족 드라마다. 1960년에서 70년대 영국의 소도시 벨파스트에서 벌어진 일종의 종교 갈등을 소재로 했는데 온 이웃이 함께 서로의 아이를 책임감 있게 훈계하거나 아껴주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마치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떠올리게끔 한다.
 
영화에선 종교 갈등을 이유로 세대를 거쳐 살아온 마을을 떠나야 했다. 지금의 대한민국 구성원들 또한 많은 이들이 고향을 저마다 이유로 떠나 살곤 한다. 생떼를 쓰는 조카를 인내심을 갖고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의 반짝 거리는 눈빛 안에는 조건 없는 신뢰와 믿음이 담겨 있음을 새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보는방법: 현재 포털사이트 네이버 시리즈온, OTT 플랫폼인 티빙과 웨이브와 콘텐츠 제휴가 돼 있다.
 
명절 증후근에 진이 다 빠져 있을, 1월 24일
 
 모든 길이 초행길일 것이다. 그리고 모두 가시밭길일 것이다.

영화 <초행<의 한 장면, ⓒ ㈜인디플러그


 
민족 대이동이라는 말대로 어마어마한 교통 체증을 뚫고 귀가했을 시간이다. 대체 휴일이기에 아마 다수의 사람들은 이날만큼은 부족했던 수면 시간도 채우고, 모처럼 자기 충전 시간이 고플 터. 그런데 이때 만에 하나 참고 있던 배우자나 자녀가 명절 기간에 쌓였던 서운함을 토로라도 한다면 눈앞이 깜깜해질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이 빌런처럼 느껴질 일이다.
 
2017년 12월 개봉한 <초행>은 결혼을 목전에 둔 예비 신혼부부의 로드무비다. 7년 차 커플인 미술학원 강사 수현(조현철)과 종합편성채널 계약직 지영(김새벽)은 한 집에서 동거해왔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임신, 그리고 양가 부모의 결혼 강요로 두 사람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는다.
 
영화 내용의 대부분은 이들이 서로의 부모를 만나러 가는 여정에 집중된다. 인천과 삼척을 오가면서 두 사람은 헤매다가 길을 잘못 들기도, 우연을 가장한 특별한 장소에 다다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서로의 복잡한 가정사가 드러난다. 결혼도 처음, 인생도 처음이기에 모든 게 서툴고 낯선 게 당연할 터. 이것을 로드무비라는 형식으로 은유한 감독의 기지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극중 배우들 대사 또한 각본에 담겨 있는 게 아니라 즉흥 연기로 나온 것이기에 날 것의 맛이 살아 있다. 영화를 통해 배우자와의 첫 만남, 자녀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기 충분할 것이다.
 
보는 방법: 네이버 시리즈온, 티빙과 웨이브에 콘텐츠가 제공되고 있다.
 
설연휴 예술영화 설날 가족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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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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