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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필연적으로 소수자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누구나 출생과 동시에 소수자인 어린이로 태어나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소수자인 노인이 되고 때로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장애인이나 성과 관련된 소수자가 된다. 보편적인 대한민국 국민인 내가 지금 미국으로 건너간다면 당장에 유색인으로서의 소수자, 동양인으로서의 소수자가 되고 말 것이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대학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는 다수의 직업군에 속하므로 시스템의 중심에 있었다. 이후 보건교사로 직업이 바뀌었다. 교원이므로 교원/교직원으로 분류하면 다수에 속했지만 다시 교원을 교과/비교과로 분류하면 소수에 속했다. 비교과는 보건, 상담, 사서, 영양 등 4과목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승진 규정, 성과급 평가 기준 등 학교 인력과 관련된 제반 사항은 교과 교사 중심으로 돌아간다. 심지어 내가 근무하는 지역교육청에는 2023년 1월 현재, 보건 장학사가 없다(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보건 장학사 미배치 지역이다). 그것은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팬데믹을 겪은 2022년에 학교보건과 방역을 지휘해 줄 컨트롤 타워가 교육청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역량 강화를 위한 길잡이가 되어 줄 장학사조차 없는 환경에서 보건교사들은 비바람 맞아가며 바이러스와 싸워야했다.

보건교사들은 학교 현장에서 장학사 배치를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그 결과 '유초등 교육전문직원 임용후보자 선발 공개경쟁시험' 공고에 '보건 1명'이 예정자로 포함됐다. 이 시험에 보건교사 1명이 지원하였으나 아쉽게도 2차 논술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과 중심의 학교 환경상 보건교사가 승진을 준비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1차 통과만으로도, 아니 지원 사실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채용 예정자가 공석이 되었다면 채용 재공고가 나야 마땅하지만 이후로도 그와 관련된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탈락을 인정할 채점 기준과 채점표도 공개되지 않았다. 애초 교육전문직원 선발 시험에서 교과교사와는 다른 보건교사의 특수성과 전문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교육에서 중시되는 결과적 평등이 교육전문직원 선발 시험에서는 고려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자존감 성교육(김영사)>이라는 책에서 배정원 교수는 말한다. '숫자가 적다고 사회적인 약자를 차별하거나 소외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그의 말대로 차별과 불평등이 인지되었다면 옳은 방향을 고민하고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가야 한다.

위의 일은 다름 아닌 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적어도 교육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사회적 민감성이 빛을 발해야 하며, 교육공동체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주간지 <서산시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소수자, #보건교사, #장학사, #교육전문직, #사회적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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