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동휘.

배우 이동휘. ⓒ 안성진 작가


 
주연이든 조연이든 캐릭터 본연의 존재 이유를 알고 자신의 개성을 십분 발휘해 연기하는 배우. 그간 많은 작품으로 대중과 만나온 이동휘를 이렇게 설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그는 한 신에 나오더라도 치열하게 고민해 준비해 오는 배우로 알려져있다. 8일 개봉하는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또한 그렇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 영화에선 중심 캐릭터로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온전히 책임져야 했다는 것이다.
 
매번 공무원 시험에 낙방하고, 이렇다 할 듬직한 모습을 보이지 못해 이별을 맞이한 남자. 영화 속 준호는 찌질함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대놓고 탓하거나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인물이다. 이별을 통보한 아영(정은채)의 호출에 만사를 제치고 나갈 정도로 의리 하나만큼은 지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창 <범죄도시4> 촬영으로 바쁜 와중임에도 영화 홍보에 나선 이동휘를 지난 3일 만날 수 있었다.
 
준비 과정, 현실에 발 딛기
 
시작은 이동휘의 의지였다. 평소 감독의 단편을 보고 그 재기발랄함을 기억했던 이동휘가 먼저 감독과 만남을 제안했다고 한다.
 
"형슬우 감독님의 단편을 보며 참 재밌는 사람같다고 생각했다. 지인을 통해 수소문해 만나게 됐는데 그 자리에서 헤어진 연인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데 어깨에 담이 걸려 한쪽만 보면서 재회한다는 설정 이야길 들었다. 사실 그 무렵 작품을 1년간 못하거나 안 했던 시기가 있었다. 많은 분들이 모르실 수 있지만 영화 <극한직업> 하기 1년 전, 그리고 예능 <놀면 뭐하니?> 출연 직전 1년 정도 집에만 있었다. 작품 현장이 소중하고 행복을 느끼는 곳이기에 공손하게 임해야 하고, 그래서 마음이 움직여야 일할 수 있겠더라. 적어도 출연 이후 제가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는 작품을 찾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추천하더라도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는, 흥행이 덜 되더라도 제가 후회하지 않는 작품에 참여하고 싶었다."
 
강하면서도 제법 진지한 의지였다. 영화 속에서 마냥 대책 없어 보이던 준호가 후반부에 은근히 성장한 모습을 보이듯 이동휘 또한 작품을 분석하는 자세 면에서 나름의 분명한 기준을 기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현실 문제로 갈등하는 수많은 커플을 떠올리며 이번 영화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는 "아영과 같은 미술 전공이었지만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게 된 준호 입장에선 아마도 그만큼 좋아했으니 인생을 뒤집을 카드랍시고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라며 캐릭터 준비 과정을 언급했다.
 
"왜 우리 사회에선 어느 때가 되면 결혼해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 그런 관념이 있잖나. 제 개인적으론 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준호 입장에선 자신의 인생을 뒤집을 수 있는 선택이 그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준호 마음에 이입을 많이 했다. 오랜 세월 함께 한 아영에게 뭐든 보여줘야겠다는 의지는 항상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이밍이 잘 안 맞은 거지. 그게 맞지 않아서 엇박자가 났던 거다. 지금 현실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픈 걸 하는 사람은 드물잖나. 제가 연기한다고 했을 때도 지지하는 사람보단 말리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전공자들이 전공을 살리는 게 제 주변에선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준호 또한 결국 차선 혹은 차악을 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거였지."
  
치열했던 이동휘의 고민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스틸컷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스틸컷 ⓒ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유쾌한 분위기의 영화지만 치열했던 이동휘의 고민 과정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현장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애드리브를 구사하는 그는 그만큼 캐릭터의 현실성과 존재 이유를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었다. 이번 영화도 그랬다. 눈치 없이 게임기를 가지고 왔다가 아영에게 혼나는 준호 친구(종호)가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자, 그걸 기억해 다음 신에서 "왜 열중쉬어를 하고 그러냐"며 윽박지르는 연기 또한 애드리브였다. 십중팔구 관객의 웃음이 터질법한 장면이었다.
 
"제가 단역과 조연을 다 겪었기에 영화를 두 세 번 보면서 단역, 조연분들 연기를 쪼개면서 보는 습관이 있다. 학부생 시절부터 내 연기 선생님이라 생각하고 그분들이 영화의 빈틈을 어떻게 채우는지를 봤던 것 같다. 좋은 감독의 영화는 단역마저 빛나거든. <나를 찾아줘>에서 벤 애플렉에게 사진 찍어달라던 그 여자 배우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만큼 잔상이 남아 있다. 역시 거장은 단역 하나에도 빛이 나도록 표현한다. 제 나름의 판단 기준이다.
 
<극한직업> 때도 류승룡 형님과 어깨 동무하고 걷는 장면에서 어떤 모습으로 따라갈지 엄청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배드민턴 치는 장면이나 준호가 창밖을 홀로 바라보는 모습에서 나름의 이유를 찾아갔던 것 같다. 특히 창밖으로 넘어가는 노을을 바라볼 땐 제가 어린 시절 맞벌이하셨던 부모님을 기다렸던 심경, 그리고 연기자로서 응원받지 못하고 혼자 프로필 돌리며 버텼던 시절을 떠올렸던 것 같다."

 
유머의 중요성
 
작은 유머 하나에도 이유나 개연성을 찾는 습관. 이동휘는 이 지점에서 나름의 철학을 설파했다. "무조건 제가 웃겨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인생에서 유머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지만 그 안에 비현실적 요소 한 스푼이 들어갈 때 곧 인생을 상징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서비스 중인 (디즈니 플러스) <카지노> 속 정팔도 그런 생각으로 임했다. 어떤 순간엔 자제해야겠지만, 사람들이 웃는 모습에 희열을 느낀다. <원라인>이라는 작품에 출연하고 개봉 후 몰래 극장에서 관객분들 틈에서 봤거든. 그때 감독님이 자유를 주셔서 할 수 있는 걸 다했는데 관객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모습에 저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 희열이 생각보다 크다.
 
<놀면 뭐하니?> 직전 일을 쉬면서 스스로에 의심도 생겼는데 그 직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을 만났다. <브로커>에서 역할을 주셨는데 빈칸이더라. 대사를 만들어 오라고 하시길래, 거장이신데도 이렇게 자유를 주시네 생각하며 준비해갔다. 송강호 선배님과 함께 하는 장면이라 엄청 긴장했는데 감독님이 촬영 때 웃으시며 데굴데굴 구르시더라. 아, 내가 세계적 거장도 웃길 수 있구나, 내 장점은 남들이 볼 수 없는 걸 보고 표현하는 데에 있구나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본 그대로 연기하는 배우가 너무 부러웠거든. 난 작가도 아닌데 매번 만들어가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요즘은 좋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배우 이동휘.

배우 이동휘. ⓒ 안성진 작가


 
물론 반대급부도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 류동룡으로 시청자들에게 처음 각인된 이후 이동휘와 코믹 연기는 등식처럼 자리 잡았기에 진지한 연기에 대한 욕심도 있을 법하지 않을까. 종종 웃음기를 뺀 작품들이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에 상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동휘는 "아마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며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응팔> 때 전력투구했고 깊이 사람들 뇌리에 남았다. 그걸 지우기 위해 작품을 선택하려 하진 않았다. 사실 그럴 수도 없고. 어떤 분들은 드라마 스페셜 <빨간 선생님>이나 영화 <국도극장>을 언급해주시기도 하는데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 작품이다. 그저 전 꾸준히 제 일하면서 잘 여물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 감사할 것 같다. <극한직업> <놀면 뭐하니?> 등 큰 사랑을 받는 작품에 출연하는 건 배우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것이니 감사하며 살아야지.
 
그래서 상업영화도 좋지만,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에 끌린다. 표현도 더 자유롭거든. OTT 작품도 그런 점에서 좋은 것 같다. <카지노>도 만약 공중파에서 했다면 지금처럼 현실적인 묘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저도 계속 노력하려고 한다. SF든 좀비 장르든 사람 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예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희극과 비극이 오가는 좋은 이야기에서 함께 달려 나가고 싶다."
 
이동휘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정은채 정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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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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