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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 앱을 시작하며
▲ 줌 모임 들어가는 화면 줌 앱을 시작하며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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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에 한 번씩 목요일 밤마다 친구들과 나는 줌으로 만난다. 지난 여름 한 친구의 제안으로 시작된 줌 모임은 8개월째 계속 되는 중이다. 줌 앱으로 들어가 회의 ID와 암호를 입력하는 걸로 모임은 시작된다. 하루의 일과를 마친 밤 시간, 줌으로 들어가 화면에 얼굴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동안 20여 명 단톡방에 있는 친구들 중 오늘은 누가 들어올지를 항상 기대한다. 

2주 만에 보는 친구들은 언제나 반갑다. 이번 모임에는 5명이 들어와 풍성하게 줌 모임을 시작했다. 우리는 7편의 시를 낭독하고 들으며 느낌을 나누었는데 보통 밤 10시에 끝나는 모임이 한참 더 지나서야 끝났다. 그만큼 시를 감상하고 나누는 일이 즐겁다는 뜻일 게다.
 
창작과비평사에서 출판한 <한국현대대표시선3>
▲ 시 낭독 모임 책 창작과비평사에서 출판한 <한국현대대표시선3>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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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는 창작과비평사에서 발행한 <한국현대대표시선Ⅲ> 중 1970년 후반에 쓰인 시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는데 이번 모임에서는 송수권과 임홍재, 하종오 시인의 시를 낭독했다. 송수권의 시에는 우리의 옛 정서인 한과 슬픔이 담겨 있는데 시의 소재로 나온 '지리산 뻐꾹새'를 읽으면서 각자의 지리산 관련 경험을 쏟아냈다. 

이번에 모인 5명 중 3명이 지리산 종주 경험이 있었다. 나 역시 신혼 초에 남편과 함께 텐트와 배낭을 메고 3박 4일 동안 노고단에서부터 세석평전을 거쳐 장터목까지 지리산을 종주했던 경험이 있다. 산과 산이 물결처럼 굽이치고 어머니의 품처럼 너른 지리산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특히 천왕봉에서 본 일출 장면은 28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할 장관으로 기억된다.

한 친구는 지리산에서 야간 산행을 하다가 길을 잃어 실족사할 뻔 했는데 그 밤중에 그 깊은 산에서 어떻게 사람을 만나 어떻게 살아났는지 아슬아슬한 경험담을 풀어 놓았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한 시를 함께 읽는 묘미가 아닌가 싶다.

임홍재의 '산역'과 '등나무 아래서'는 우리 근대사의 질곡이 시 속 화자의 삶 속에 고난과 역경으로 나타난 시들이었다. 시 '산역'에서 화자는 '아버지는 한세상 남의 송장이나 주무르기만 할 것인가'라고 한탄하고, '피통 터져 농약 먹고 죽은 농부'의 시신을 매장하고 '밤마다 술에 취해 울음 섞인 가락을 토해 내는' 아버지에 대한 회한이 사무치는데, '품팔러 간 어미는 왜 오지 않는가' 하는 싯구에서는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화자의 절절함을 눈으로 보는 듯했다.

시 '등나무 아래서'는 일제 시대에 '가막소 뒤뜰에서 주리 틀려 죽은 할아버지'에 대한 시인데, 망국의 한이 할아버지의 억울한 죽음과 집안의 풍비박산으로 나타나 우리 역사의 어둠이 시련 많은 가족의  삶 속에 응축되어 나타난 시였다.

하종오의 시 세 편은 화합과 연민이 담겨 있었다. 그 중에서 '참나무가 대나무에게'라는 시는 모두에게 멋지고 좋은 시라는 공감을 얻었다.

참나무와 대나무의 대조되는 특징을 얼마나 잘 분석하고 서정적으로 표현했는지 참 멋진 시,라고 느꼈다. 흔들리는 땅에서 꼿꼿한 대나무와 버티는 참나무가 너무나 다르고 분노하는 대나무와 슬픔 밑으로 뿌리 내리는 참나무의 성질 역시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뿌리 뻗어서 우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은 아름다운 화해와 상생의 몸짓이 아닐 수 없다.

늦은 밤까지 시를 나눈 우리는 2주 뒤의 모임을 약속하며 줌을 닫았다. 친구들과 함께 시를 읽고 느낌을 나누고 경험을 나누는 이 시간들이 참 좋다, 라고 생각하며 다음 번 모임에서는 어떤 시를 만나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갈 것인지 벌써부터 2주 뒤의 모임이 기대된다. 

태그:#줌 모임, #시 낭독 모임, #시, #시 낭독, #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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