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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홍매화)이 만발한 안동 병산서원
 봄꽃(홍매화)이 만발한 안동 병산서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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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수를 좋아한다

나는 국수인 면(麵) 류를 좋아한다. 잔치국수, 우동, 자장면, 짬뽕, 라면 등 면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그 가운데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린 시절에 많이 먹었던 경상도식 손칼국시다.

그 시절 내 고향 구미는 세 끼 밥을 해 먹는 집이 드물었다. 쌀이나 보리와 같은 양식이 매우 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가정에서는 하루 한두 끼는 밥 대신에 국시나 호박범벅, 또는 나물죽, 콩죽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 어린 시절 물리게 먹었던 그 국시(국수의 경상도사투리)를 이즈음도 매우 좋아하여 나는 이따금 국시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내 고향식 경상도 본래의 맛을 내는 국시집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다. 20여 년 전 포항 보경사 가는 어귀에 늘어진 수십 곳의 국시집이 생각나서 연전에 그곳을 다시 찾았더니 씻은 듯이 사라졌다. 또 경북 영주에서 맛본 어느 국시집을 애써 찾아갔더니 옛날식 국시 맛은 아니었다. 그분들의 말을 빌리면, 옛날식 국시는 이즈음 만들기도 힘들거니와 요즘 젊은 사람은 즐겨먹지 않다는 변이었다.
 
안동칼국시
 안동칼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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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식 국시

나는 어린 시절 국시를 만드시는 할머니나 어머니 곁에서 자주 지켜보았다. 초여름 밀을 수확하면 방앗간에서 곱게 빻은 다음, 그 밀가루를 길쭉한 독에 넣어두었다. 할머니나 어머니는 국시를 만들 때마다 큰 양푼에 서너 사발 밀가루를 담고 그 옆에 있는 항아리에서 날콩가루 한 사발을 퍼다 골고루 섞었다. 그런 뒤 거기에 물을 부어 반죽을 했다.

그런 다음 여러 번 손으로 반죽을 다진 뒤 거실이나 대청에 돗자리를 펼치고 그 위에 광목이나 삼베 같은 천을 깔았다. 그곳에 국시 판을 놓고 밀가루를 흩뿌리면서 여러 차례 반죽을 다진 다음 한두 시간 숙성 시켰다. 그런 뒤 반죽을 국시 판 위애 놓고 홍두깨로 서번 번 밀면 곧 멍석처럼 점차 둥그렇게 커져갔다. 그걸 여러 겹 접은 다음 부엌칼로 곱게 썰었다.

그때 맨 나중 것은 '국시꼬랑지'라 하여 곁에서 눈이 빠지게 쳐다보는 나에게 주면 그것 냉큼 받아 부엌 아궁이 짚불 위에 구워서 먹곤 했다. 군것질이 귀했던 그 시절 맛나게 먹었던 그때의 추억이 어제 일처럼 새롭다.
  
병산 서원
 병산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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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

지난해 안동 임청각에서 나의 졸작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 북 콘서트를 한 바, 그때 알게 된 한 작가분이 며칠 전, 안동국시 대접을 하겠다고 초대하기에 '얼씨구' 하고 어제 안동행 열차를 탔다. 21일은 춘분 절기로 바야흐로 봄이 한껏 무르익는, 올해 들어 가장 화창하고 외투가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화사한 날이었다.

안동역에서 그분을 만나자 안동시 풍산초등학교 옆 손칼국수 맛집으로 안내했다. 모처럼 침을 흘리며 목을 뽑고 기다리자 곧 안동국시 한 사발과 함께 여러 가지 반찬과 밥이 나왔다. 맛집 아낙은 그 국시에 스무 가지 재료가 들어갔단다. 하지만 그걸 다 기억은 못하겠고, 날콩가루와 쑥, 막걸리가 들어갔으며, 여태 당신 손으로 반죽하고 부엌칼로 74번 썰었다면서 아직도 옛날 그대로 만든다고 자랑했다.

한 젓가락 입에 넣자 60~70년 년 전 옛 맛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나는 그야말로 국시 한 사발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 다 먹은 뒤 혹시 주방에 남은 면이 더 있느냐고 묻자 더 없단다. 

식후 봄나들이로 그곳에서 가까운 병산서원으로 갔다. 병산서원은 풍산 류씨의 학당으로 조선조 서애 류성룡 선생의 체취가 물씬 밴 곳이다. 서원 안 마당 매화는 제 철을 만나 만개한 채 나그네를 반겼다.
 
병산서원 안의 광영지
 병산서원 안의 광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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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 가듯이 병산서원을 한바퀴 훑고서 떠나오는데 초가로 된 측간, 혹은 뒷간(화장실)이 눈길을 끌었다. 문도 없는 이 화장실은 사라져간 우리의 엣 모습이기에 후세를 위해 카메라에 담았다. 옛 선인들은 측간에 갈 때 문 앞에서 노크 대신 '으흠' 하는 기척을 냈다. 휴지 한 장도 없었던 그 가난한 시절이 왠지 그리운 이즈음이다. 봄볕이 '오매 환장하도록 좋은' 모처럼 옛 국시 맛에 젖은 안동 국시여행의 하루였다.
 
병산서원의 재래식 측간
 병산서원의 재래식 측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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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국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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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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