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02 18:44최종 업데이트 23.05.0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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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0일에 나를 포함한 충남대학교 교수 135명은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강제동원 보상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시국 성명을 발표했다. 충남대에서 전임교수로 강의한 지 23년째인데, 내 기억에 이렇게 많은 교수가 특정 사안에 대한 성명에 이름을 밝히면서 참여한 것은 유례가 없다. 그만큼 현재 돌아가는 시국 상황이 엄중하다는 뜻이다. 충남대만이 아니라 국립대, 사립대를 막론하고 많은 대학교수, 연구자가 비슷한 마음을 담은 성명을 내놓고 있다.

나는 현 정권이 출범하기 몇 달 전에 쓴 어느 신문 칼럼을 이렇게 맺었다.
 
정상적인 국가 관계를 통해 신의가 쌓이고 신뢰가 두터워지면 자연스럽게 통일의 길이 열릴 것이다. 통일이 안 되더라도 서로를 무력으로 위협하는 일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평화가 깨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 이번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이런 길을 여는 데 이바지하길 바란다. 아니, 최소한 방해자는 되지 않길 바란다. 내가 이번 선거에서 바라는 딱 한 가지다.
  
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 기대가 없었기에 국내 현안은 엉망이 되더라도 최소한 남북관계, 그와 관련된 외교와 국방만큼은 잘 관리해 한반도 평화를 흔드는 일만은 하지 않길 바라는 기대를 칼럼에 담았다.

무능한 권력자, 공동체에 심각한 위협

내가 이번 성명에 참여한 핵심 이유는 그런 희망이 무참히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성명은 강제동원이 주요 내용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문제가 된 한·일 관계만이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과 맺는 관계에서 현 정부가 되풀이 주장해 온 대한민국의 국익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하는 불편한 의구심이 작용했다.


나는 이 글에서 충남대 성명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서 약간의 개인적 소회를 덧붙이겠다. 성명의 첫 번째 문제 제기는 "정부가 내놓은 납득할 수 없는 조치는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침해하며,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충남대 성명만이 아니라 다른 성명에서 가장 먼저 꼽는 문제점인데, 이는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을 훼손한 것이었다.

2018년 10월 대법원은 가해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확인했는데, 그것은 "사법부의 최종판결"이었다. 그렇다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당연히 최종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에게 한국 기업의 자발적 기여로 배상금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겠다는 3자 변제 방안"을 내세웠다.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묻지 않는 ‘제3자 변제’를 핵심으로 하는 윤석열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를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주최로 열렸다. 2023.3.6 ⓒ 권우성

 
내 기억에 적어도 1987년에 현행 헌법이 도입된 뒤로 이런 식으로 최고사법기관의 판결을 행정부가 묵살했던 일은 없었다. 성명에서 이런 행태는 "헌법을 위배한 탄핵 사유"라고 강하게 비판한 이유다.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 수반이자 국가원수이지만 그것이 법을 만드는 입법부나 법을 해석하는 사법부를 무시하면서 자의적으로 법을 집행하라는 뜻은 아니다.

이런 판단은 꼭 헌법학자의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다. 나 같은 인문학 연구자·문학평론가라도 혹은 기본적인 민주주의 소양을 지닌 시민이라도 조금만 따져 보면 알 수 있는 문제다. 한마디로 현 정권은 헌법을 무시하고 있다.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둘째, 윤석열 정부의 제 3자 변제안은 "강제징용에 시달렸던 노인들의 팔을 꺾는 반인권적 행위"라고 교수들은 판단했다. 이점도 충남대 교수들만이 아니라 다른 대학교수들도 일관되게 지적한 점이다. 강제징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 기업이 배상금과 지연 이자를 내놓도록 하는 발상이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이런 발상에는 강제징용 문제를 가치나 원칙은 접어둔 채 단지 돈 문제로만 접근하려는 천박한 시각이 깔려 있다. 성명에서 밝혔듯이 "일본 가해 기업의 배상 책임을 명확히 한 대법원 판결은 수십 년간 한국 사회가 강제동원 등을 둘러싼 과거사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싸워 얻은" 결실이다. 개인의 문제에서도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우선적으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시각에서 먼저 접근해야 한다는 게 오랜 시간 인류가 쌓아온 인권의 기본적 원칙이다. 이런 원칙은 국가 간 관계에도 적용된다.

나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를 종종 강의한다. 탈식민주의는 국가 간 관계에 작동하는 가장 강력한 억압 체제인 식민주의의 작동 양상을 분석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이론적, 실천적 방안을 모색한다. 탈식민주의 비평의 제일 중요한 전제조건도 식민지배자(the colonizer)와 피지배자(the colonized) 사이에는 어떤 경우에도 평등하고 중립적인 해석은 가능하지 않으며 일차적으로 피식민자의 시각에서 사안을 파악해야 하는 점이다.

국제사회의 인권 규범을 따른 상식적인 최종 판결을 짓밟고 오직 일본의 시각에서 제3자 변제안을 꺼내든 윤 대통령이 어느 나라 국가수반인지를 묻게 된다. 그런데 이런 물음은 단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제 3자 변제안에만 제기되는 게 아니다. 일제강점기가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100년 전 과거사는 다 잊고 미래만을 바라보자는 식의 발언은 최소한의 역사의식이 있는지를 의심하게 한다.

셋째, 이번 학기에 나는 '희곡의 이해'라는 학부 과목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다룬다. 특히 현실정치에서 사적인 것(the private)과 공적인 것(the public)의 관계를 날카롭게 구분하며 근대 정치이론의 토대를 세운 마키아벨리에 기대어 작품을 읽는다. 범박하게 말하면 '사적인 차원'에서 리어왕, 코딜리어, 글로스터 백작처럼 착하고 선한 인물일지라도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위치에 있는 왕과 귀족의 경우에는 자신이 맡은 '공적인 소임'에 무능하여 냉철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현실의 흐름 속에서 도태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능한 권력자는 공동체에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된다.

현 정부가 오랜 기간 아슬아슬하게 달성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실패로 규정하면서 "한반도를 국제 열강의 대리 전쟁터로 만들 수 있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한다"라는 논리가 제 3자 변제안의 숨은 배경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이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대한민국 국익을 해치는 일이다.

마키아벨리에 다시 기대면 국제 정치는 "우리가 호의를 베풀고 머리를 숙이면 상대도 그렇게 나올 것"이라는 순진함이 통하는 곳이 아니다. 국제 정치에서 순진함은 반드시 참담한 결과를 낳는다. 냉철한 국제정치 현실에 대해 천박한 수준을 드러낸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해법은 비단 이 사안에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더 나아가 중국, 러시아, 북한 같은 대륙 세력과 미국, 일본 등 해상세력의 힘이 충돌하는 교차 지점에 있는 대한민국의 엄중한 지정학적 위치를 전혀 알지 못하는 맹목을 드러낸다.

조심스러운 판단이지만, 나는 윤석열 정부의 현실 인식이 1950~60년대 냉전 시대에 갇혀 있다고 본다. 미국의 원조를 받고, 중국을 중공이라 부르고 러시아가 아니라 소련이 위세를 부렸던 시절, 그래서 반공주의가 득세했던 시절. 혹은 일본에 깊은 열등감을 느끼고 있던 시절의 현실 인식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한다.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자의 현실 인식, 역사의식이 이렇게 평균적 시민의식에도 한참 뒤처진 것이 안타깝고 불안하다. 씁쓸한 소회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2023.4.26 ⓒ 연합뉴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헌법적 가치의 문제를 상기하고 싶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한다고 되어 있다.

납득할 수 없는 강제동원 제 3자 변제안이나 다른 외교 문제에 대해 윤석열 정부가 그간 보여준 비상식적이고 어지러운 행보는 헌법에 명시된 "3.1 운동"의 민족정신과 "4.19 민주이념"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이것은 진보냐 보수냐의 이념적 입장과는 아무 관계없는 질문이다. 어떤 정치적 입장에 서 있든 관계없이 민주공화국을 국헌으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지키는가 아닌가의 문제다.

다시는 시국선언 할 일 없기를

두서없는 소회의 결론을 맺자. 짐작컨대 대다수 교수들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전공 분야에서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가르치는 데 쓰길 바랄 것이다. 나는 좋아하는 문학을 더 많이 읽고, 글 쓰고, 가르치는 일에 시간을 쓰고 싶다. 나도 그렇지만, 교수들이 자기 전공과 관련된 학문적 쟁점이 아니라 시국에 관해 발언하는 것은 결코 즐겁지 않다.

그러나 교수, 연구자는 그가 속한 공동체가 위기에 빠졌다고 판단할 때는 공적 지식인으로서 필요한 발언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름을 걸고 시국 성명을 내는 일이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 다시는 없길 바란다. 아무래도 그런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부디 내 예감이 틀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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