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3 17:00최종 업데이트 23.06.2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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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대학동 녹두거리에 있는 링고 1호점의 천장 ⓒ 윤한샘


"저게 다 우리 와이프랑 일일이 손으로 붙인 거예요. 그때는 대학생들이 <타임>지 같은 영문 잡지를 보는 게 유행이었거든. 천장에 도배를 해야 하는데 돈은 없고. 애들이 다 읽은 영문 잡지가 왠지 멋있어 보이더라고. 낑낑대면서 붙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5년이 지났네요."

천장에는 오래돼 보이는 잡지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규칙이나 질서는 없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정감이 갔다. 색은 살짝 바랬지만 표면은 여전히 빤닥거렸다. 또렷하게 보이는 깨알 같은 영자에서 수십 년 전 막 장사를 시작하는 젊은 부부의 정성과 희망이 느껴졌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 녹두거리, 이곳은 80년대 이후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놀이터이자 운동권의 아지트였고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의 보금자리였다. 고시촌을 중심으로 생긴 식당, 술집, 다방, 하숙집들은 지갑이 가벼운 학생과 고시생들로 항상 북적였다. 녹두거리라는 이름도 구 289번 종점에 있었던 빈대떡과 막걸리를 팔던 녹두집에서 유래했다. 
 

링고 1호점 입구 ⓒ 윤한샘


1998년 이상태 대표가 차린 링고는 당시 신림동에서 찾아볼 수 없는 수입 맥주를 파는 펍이었다. 도림천을 마주한 건물 지하에 있는 맥줏집은 고시촌 문화와 어울리지 않았다. 막걸리와 소주가 주인인 동네에 외국물 먹은 맥주가 들어오다니, 젊은이들이 많은 대학 근처였지만 문화 충격이 작지 않았다. 

"항의하는 학생들도 있었지요. 아무래도 녹두거리는 운동권 문화도 남아있었고,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막 벗어났을 때라 이해하기 힘들었을 거야. 당시만 해도 생맥주 한잔에 1500원 할 때였는데, 우리가 판 맥주는 한 잔에 5000원 정도 했으니까. 강남이나 종로 같은 곳은 수입 맥주나 양주가 흔했지만, 이곳 고시촌에서는 파는 곳도 마시는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50대 중반, 희끗희끗한 머리에 인자하고 미소가 멋진 이 대표는 옛이야기라고 덧붙였다. 경상도 사투리에 느릿한 말투였지만 오랜 경륜에서 나오는 여유가 묻어있었다. 왜 어울리지도 않는 대학동 고시촌에 웨스턴 펍을 차린 것일까? 대학가라면 신촌이나 혜화동이 더 좋지 않았을까?

"원래 카페였어요. 90년대 후반에 민들레 영토 같은 카페가 유행했어요. 커피나 음식 시키고 스터디나 토론을 할 수 있는 장소였죠. 녹두거리보다 월세가 저렴한 건물 지하에 지금으로 치면 스터디 카페를 시작했는데, IMF 때문에 잘 안됐어요. 1년 동안 월세도 못 냈다니까. 착잡한 마음에 다음 아이템이 뭘까 고민하던 중에 이상한 걸 만나게 된 거지."

두려움 넘어 파격적인 도전
 

링고의 테이블과 의자 ⓒ 윤한샘


새로운 아이템을 찾고 있던 이 대표가 본 것은 종로에 있던 웨스턴 바, 산타페였다. 종각역 근처 지하에 있던 산타페는 직장인들이 록 음악과 병맥주를 즐기던 공간이었다. 이 대표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홀린 듯 신림동에 웨스턴 펍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이런 문화가 있었구나 놀랐죠. 한 편으로 완전 색다른 것을 해보자는 마음이 들더군요. 수중에 돈이 없었어요. 인테리어는 다 와이프랑 직접 했죠. 테이블과 의자도 최대한 저렴하게 구해와 손을 봤고 천장도 학생들이 보던 <타임>지를 붙였어요. 맥주도 잘 몰랐어요. 촌에서 올라와서 신림동에 있던 내가 무슨 맥주를 알겠어요. 지금이야 호가든, 버드와이저 같은 맥주가 흔하지만 그때는 뭐 마셔본 적도 없었지."

다행히 맥주를 공급해 주는 주류 도매사가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생맥주 장비는 물론 맥주도 선뜻 지원해 줬다. 맥주 스타일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 이상태 대표는 매일 맥주를 시음하며 고객에게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맥주를 서빙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그가 내놓은 답은 온도와 탄산이었다. 같은 맥주였지만 서빙 온도와 탄산이 적절하지 않으면 맛이 없었다. 

"그때 깨달았죠. 맥주 관리가 정말로 중요하구나. 그런데 어디 물어볼 사람이 없는 거야. 책도 없고. 할 수 없이 모든 것을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어요. 탄산가스를 직접 먹어보기도 했고 맥주에 따라 탄산과 온도를 매번 바꾸면서 손님에게 시음도 부탁했죠. 맥주에 따라 탄산 압력도 달리하고 완벽한 온도를 맞추니 반응이 오더라구요."

링고를 시작할 때 있었던 부정적인 반응도 조금씩 사라졌다. 서울대 근처에 맛있는 수입 맥주를 판매하는 곳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업도 안정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했던 서울대생들도 큰 역할을 했다. 입소문을 통해 링고의 존재를 알렸다. 두려움을 넘어 파격적인 도전을 한 결과는 달콤했다.

"그 녀석들은 지금도 만나요. 지금은 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지. 일 년에 한 번씩 링고데이 때 가족들 손잡고 와요. 아, 링고는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이라는 뜻이에요. 당시 내 미래와 마음을 말해주는 단어였지. 내가 워낙 비틀스의 링고 스타를 좋아하기도 해서 겸사겸사 정했어요."
 

링고 로고, SINCE 1998. ⓒ 윤한샘


녹두거리 끝자락에 있는 링고는 살아남았다. 이유는 다름 아닌 맥주 맛이었다. 가격이 비쌌지만 신선하고 맛있는 맥주에 고객들은 수긍했다. 맥주 관리뿐만 아니라 따르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 대표는 '빌드'라는 표현을 썼다. 맥주 스타일에 맞게 빌드하면 향미가 완전히 바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이스비어와 벨지안 골든 스트롱 에일을 비교해 보죠. 둘 다 탄산을 많이 갖고 있는 맥주입니다. 하지만 빌드는 달라야 해요. 밀 맥주 바이스비어는 풍성한 탄산을 즐기는 맥주입니다. 45도로 따라서 용존 탄산을 보존해야 탄산감과 거품 속에 있는 바나나 향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요.

반대로 벨지안 골든 스트롱 에일은 90도로 맥주를 따르면서 용존 탄산을 빼내야 합니다. 그리고 잔 위로 솟아 있는 거품을 깔끔하게 없애야 하죠. 탄산감이 벨기에 효모가 주는 향을 방해하지 않게 해야 하거든요.

온도와 탄산이 바탕이라면 빌드는 건축을 하는 거예요. 그래야 맥주라는 아름다운 건물이 탄생하는 겁니다. 손님들은 이 차이 모를 것 같죠? 기가 막히게 알아봅니다. 한 잔을 마셔도 좋은 맥주를 즐길 수 있다면 가격이 조금 비싸도 인정을 하는 거지. 맥주 펍을 하는 사람들이 맥주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예요."


다른 펍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
 

샤로수 길에 있는 링고 2호점 ⓒ 윤한샘


사법고시가 폐지되고 고시제도가 변화하자 녹두거리 고시촌도 퇴색하기 시작했다. 지방 출신 서울대생도 줄어들면서 상권의 중심은 교통이 편리한 서울대입구역으로 옮겨졌다. 가로수 길과 서울대 '샤'를 합친 '샤로수 길'은 관악구의 명물로 떠올랐다. 작고 젊은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며 빌라촌 골목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2014년 이상태 대표는 샤로수 길에 1호점의 노하우를 녹여낸 링고 2호점을 오픈했다. 비교적 샤로수 길 외곽에, 그것도 건물 2층에 있었지만 사람들은 링고의 맥주를 믿고 찾아왔다.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고, 1호점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한 매장을 하고 싶었어요. 2014년만 해도 지금처럼 가게가 많지 않았지. 2호점을 열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탄산이었어요. 맥주에 따라 탄산을 다르게 하고 싶었거든.

여기 보면 이게 탄산이고 이게 질소예요. 100% 탄산을 사용하는 맥주도 있고, 30%는 질소, 70%는 탄산을 쓰는 맥주도 있어요. 이 비율을 맥주에 맞게 조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죠. 1호점에서 정말 하고 싶었는데 할 수 없던 부분이었어요."


질소가 첨가된 필스너 우르켈은 부드럽고 우아했다. 쓴맛은 은은했고 홉 향은 매끈했다. 혀 뒤로 넘어가는 필스너 우르켈은 내가 알던 맥주와 달랐다. 곧이어 투명한 앰버 색 런던 프라이드가 나왔다. 낮은 탄산으로 조절된 런던 프라이드에서는 영국 냄새가 물씬 났다. 분명 다른 펍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을 담고 있었다. 문득 링고라는 펍이 이 대표에게는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25년입니다. 25년. 제 인생의 반을 링고와 함께했어요. 펍이 25년을 살아남다니 한국에서 드문 일이죠. 이제 삶, 인생, 그 자체인 것 같아요. 링고와 맥주라는 매개체로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희로애락을 느꼈습니다. 링고 1호점은 상권도 안 좋아졌고 시설도 낡았지만 소중한 공간이고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죠."

음식점은 25년이 되면 노포라 불리고 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한다. 링고도 마땅히 그럴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이 대표는 링고 1호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적자 운영이라고 고백했다. 수익을 생각하면 벌써 문을 닫았어야 했다. 코로나 때 수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링고 1호점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녹두거리에 링고 스타의 음악이 멈추지 않기를
 

젊은시절 모습을 담은 사진 요청에 보내온 사진. 젊은 이상태와 김미희 대표. ⓒ 이상태


"와이프와 나도 그렇지만, 손님들이 학창 시절 추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친구, 연인, 때론 부부 그리고 부모님들과 좋은 추억이 있는 장소라고. 그래서 인테리어도 못 바꾸고 있어요. 지금 이대로 바뀌지 않는 모습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바라는 거죠."

여전히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을 받는 이상태 대표는 장인의 모습이었다. 새로운 맥주가 들어오면 테이스팅 하고 최고의 상태로 서빙하는 방법을 고민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었다. 25년 동안 링고를 운영하고 있는 그에게 펍은 어떤 의미일까?

"예전에는 펍이 맥주를 마시는 공간이었어요. 술집이나 주점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즐기는 공간이 됐어요. 이국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취향과 입맛에 맞는 맥주 한 잔으로 기분도 내고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할 수 있는 공간이 된 거죠.

'마시다'가 일차원적인 행위라면 '즐기다'는 복합적이고 감성적인 목적을 갖고 있어요. 많이 마시고 취하는 것보다 문화를 즐기고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객에게 즐거움과 만족을 주기 위해 펍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국에서 펍은 미래가 있다고 봐요."


이 대표는 링고가 아직도 부족하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나라의 표준이 될 수 있는 맥주 관리 시스템이 있는 매장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의 꿈을 물었을 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의 인생을 바친 고시촌에 링고 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브루펍을 세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직접 양조한 링고 맥주를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완벽한 결말은 없을 것이라 말하는 얼굴 위에 웃음꽃이 피고 있었다. 

찬찬히 링고의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불안한 미래를 맥주에 맡긴 젊은이의 모습을 기억하는 25살 된 테이블과 의자는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그리고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상태 대표의 꿈이 링고와 함께 이어지기를 바란다. 녹두거리에서 링고 스타의 음악이 멈추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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