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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간다. 이른 아침 날카롭게 울려대는 알람 소리에 간신히 눈을 뜬 엄마는 커피 한 잔 마실 새도 없이 곧장 주방으로 들어선다. 아침 식사를 끝낸 가족들이 각자 자기 몫의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집을 나서면 엄마의 하루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서둘러 옷을 꿰어 입고 회사로 달려 나가는 워킹맘도 있고 '프로 살림러'의 솜씨를 뽐내며 반짝반짝 집을 가꾸는 주부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일단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은 아이들의 욕구와 필요를 챙기느라 자신의 마음을 좀처럼 돌보지 못한다.

융합예술 연구센터 '아뜰리에 드 까뮤'를 운영하는 김상래 작가가 쳇바퀴 돌 듯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엄마들을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글쓰기의 치유 효과를 먼저 경험한 바 있는 김 작가는 일상에 치여 자신을 돌보는 법을 잊어버린 엄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본 기자를 포함한 11명의 엄마들은 전과 다름없이 일상을 꾸려나가며 틈이 날 때마다 쪼개진 시간을 모아 글을 써 내려갔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 끝끝내 잠들지 않는 작은 별의 희미한 빛을 친구삼아 틈틈이 써두었던 조각난 문장들을 이어붙인 시간이 10여 개월이었다. 마침내, 시간의 조각들이 모두 모여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조각보가 탄생했다.

10일 출간한 책 <조그만 별 하나가 잠들지 않아서>는 김환기의 <우주>,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 같은 잘 알려진 작품을 보고 11명의 작가들이 쓴 에세이집이다(나 역시 이 책의 필진들 중 하나다). 이 책을 쓴 11명의 엄마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김상래, 유승희, 료료, 김경애, 전애희, 김혜정, 장영지, 박숙현, 김현정(왼쪽에서부터) '살롱 드 까뮤' 오프라인 만남
김상래, 유승희, 료료, 김경애, 전애희, 김혜정, 장영지, 박숙현, 김현정(왼쪽에서부터)'살롱 드 까뮤' 오프라인 만남 ⓒ 김현정

- 먼저,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신 김상래 작가님께 질문드립니다. '살롱 드 까뮤'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김상래(작가) : "2022년에 동네 엄마들과 아이들을 위한 모임을 결성해 책자를 만들었어요. 2023년에는 도서관에서 '치유의 그림 에세이'라는 수업을 진행했고요. 그 뒤에 저의 첫 책 <실은, 엄마도 꿈이 있었어>를 쓰면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걸 느꼈어요. 제가 경험한 치유 효과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지인들에게 함께 글을 쓰자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동양화를 그리는 박숙현 작가님을 비롯한 몇몇 분과는 SNS를 통해 인연을 맺었고요. 함께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분들과 인연이 닿아 '살롱 드 까뮤'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 글쓰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모두 브런치 작가로 데뷔하고 책을 출판하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살롱 드 까뮤'가 다른 글쓰기 모임과 구별되는 것 같습니다. 무경험자들을 이끌고 출판까지 가는 여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김상래 : "처음에는 각자 쓴 글을 보고 서로 응원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던 중 출판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권의 책을 출판한 저와 오랫동안 번역을 해온 김현정 기자님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두가 글을 써본 적이 없는 엄마들이었죠. 한 마디로 '외인구단' 같은 상태였습니다.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주 글을 쓰고 브런치 작가로 데뷔하는 과정을 거치며 모두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출판을 염두에 두고 투고를 시작한 후 한 달간 거절 메일을 많이 받았습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투고한 출판사로부터 긍정적인 답신을 받았을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 어떤 계기로 이 모임에 참여했나요?

이지연(강사) : "2023년 3월에 남편을 보낸 후 저는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았습니다. 저도, 아이들도, 힘겹게 홀로서기를 하고 있었죠. 그런 저를 김혜정 선생님이 세상 밖으로 끌어내 주셨어요. 혜정 선생님은 남편이 투병 중일 때 옆에서 많은 힘을 주던 동네 언니였어요. 반찬과 아이들 간식도 챙겨주고, 종종 손 편지도 써주시고 했죠. 혜정 선생님도 암으로 고생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저를 더 보듬어 주셨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혜정 선생님이 글쓰기를 통해 아픔을 치유한 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그래서 아직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을 때 아이들을 위해 아빠에 관한 글을 남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모임 첫날이 많이 기억납니다. 제가 펑펑 울었거든요.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괜찮은 것 같았어요. 그런데, 줌(Zoom)에 모여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 마음의 슬픔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기 시작한 거죠. 아마 다른 선생님들도 많이 당황하셨을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점차 예전의 제모습을 찾게 되었습니다.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갑작스레 매주 글을 써야 하는 삶이 시작됐습니다. 어땠나요?

유승희(강사) : "매주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았어요. 제 일을 하면서 남편과 아들을 챙기는 동시에 글도 써야 했거든요. 아들은 아직 네 살이라 엄마의 관심이 많이 필요한 나이고 남편은 갓 직장을 옮긴 후 한참 적응 중이었어요. 그렇게 엄마이자 아내로 살다 보니 제 이야기를 풀어낼 시간이 필요했어요. 아이를 재우고 글을 썼어요. 밤하늘의 별들이 그 시간을 함께 견뎌줘서 외롭지는 않았어요. 새벽의 찬 공기를 느끼며 글을 썼죠. 글을 퇴고하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다듬어진 글을 읽을 때의 설렘은 여태까지 살면서 느낀 어떤 감정보다 '순수한 감동' 그 자체였어요."

- 글을 쓰면, 삶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좁게는 매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달라질 테고요. 넓게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박숙현(화가) : "글을 쓰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건 참 비슷해요. 두 가지 모두 무언가를 기록하는 일이니까요. '살롱 드 까뮤'에서는 그림을 보고 글감을 떠올린 다음 내밀한 자신을 내보이는 글을 썼어요. 글을 쓰는 내내 나의 내면과 더 치밀하게 대화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글을 쓰면서 치유적 효과를 경험하고 나니 제 삶이 더 풍요로워진 느낌입니다. 그림의 소재를 찾듯 글감을 찾는 일이 참 행복했습니다."

- 그림을 보고 글을 쓰는 그림 에세이는 일반 에세이와 어떻게 다른가요? 앞으로도 꾸준히 그림을 보고 글을 써볼 계획이 있으신가요?

료료(가정경영자) : "그림을 보고 글을 쓰면 감정의 깊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탐험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림의 선, 질감, 색, 명암, 움직임, 리듬은 저에게는 밤하늘의 별처럼 하나하나 눈부십니다. 그래서 그림이 없을 때와는 다른 각도로 글을 쓰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 없이 글을 쓸 때 상상력이 부족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면의 감정에 집중해 창의적으로 표현할 기회가 생기죠. 다만, 쉽지는 않더라고요. 앞으로도 그림을 통해 글을 쓰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어요."

- 글을 쓰고, 그림을 보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입니다. 그런데, 그림을 보고, 글을 쓴 후 의견을 나누는 모든 과정이 '단체 활동'으로 진행됐습니다. 다 같이 그림을 보고 글을 쓰면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김혜정(행복밥상디자이너) :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대립이나 충돌이 생기기도 해요. 저희는 모두 하나의 그림을 보고 각자 글을 적었어요. 11명이 각기 다른 생각과 느낌을 표현했지만 서로 대립하거나 갈등하기보다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서로의 아픈 상처에 약을 바르며 쓰다듬어 주는 시간이 있어 치유의 힘을 느꼈습니다."

<조그만 별 하나가 잠들지 않아서> 투표를 통해 결정된 표지
<조그만 별 하나가 잠들지 않아서>투표를 통해 결정된 표지 ⓒ 김현정

- 10개월이 넘는 대장정이 이제 끝나가고 있는데요. 그 과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전애희(도슨트) : "저희는 마치 아이를 낳듯 소중히 글을 낳았습니다. 서로의 글에 함께 울고 웃으며 상대의 감정과 상황을 헤아렸습니다. 그리고 너무 조용해서 있는지조차 몰랐던 나의 아픔도 만났습니다. 너무나 꽁꽁 묻어두었기에 그 아픔을 꺼내려면 용기가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계속 글을 쓰면 언젠가 제 아픔도 밝은 세상으로 끄집어낼 수 있을 거 같아요."

- 글쓰기 문외한에서 브런치 작가 데뷔를 거쳐, 출판 작가가 되셨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이지연 : "책이 나와서 기쁘지만 걱정이 되기도 해요. 남편에 대한 글이 감성팔이처럼 보일까 봐 걱정됩니다. 두렵기도 하고요. 하지만 얼마 전에 읽은 공지영 작가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라는 책의 내용이 생각납니다. 주인공이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시간이 흘러 남편을 만나게 되면 남편이 "내 이야기를 써줘서 고마워"라고 말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힘을 내기로 마음먹었답니다."

김경애, 김경진, 김상래, 김현정, 김혜정, 료료, 박숙현, 유승희, 이지연, 장영지, 전애희. 11명의 작가가 공동 집필한 <조그만 별 하나가 잠들지 않아서>는 12월 10일부터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조그만 별 하나가 잠들지 않아서 - '살롱 드 까뮤' 11인의 엄마가 들려주는 미술 에세이

김상래, 김경애, 김경진, 김현정, 김혜정, 료료, 박숙현, 유승희, 이지연, 장영지, 전애희 (지은이), 미다스북스(2024)


#조그만별하나가잠들지않아서#살롱드까뮤#그림에세이#엄마#미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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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사랑하는 번역가. 원작자의 글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새로운 언어로 재탄생시키는 직업적 특성을 살려 다양한 형태의 예술 작품을 알기 쉬운 언어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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