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르나크 신전 전경카르나크 신전의 1탑문에는 수많은 스핑크스의 행렬이 이어져 있다. ⓒ 운민
고대 이집트 역사의 핵심, 룩소르는 어디를 가든지 문명의 번영했던 흔적을 심상치 않게 만나 볼 수 있다. 다만 이집트 내에서도 호객행위가 가장 극심한 고장으로 불명예를 안고 있다. 여행객의 주머니를 노리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현지인들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호객행위가 가장 극심한 고장
심지어 어두컴컴한 신전을 잠시 밝혀줬단 이유로, 잠시 길을 안내해 주었다는 명분으로 당당히 돈을 요구하는 경비와 직원의 태도는 과연 찬란했던 조상을 둔 게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호텔 앞에서부터 끈질기게 달라붙는 그들을 피해 달려온 맥도널드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장엄하게 펼쳐진 룩소르 신전의 자태가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맥도날드에서 바라 본 룩소르 신전룩소르 맥도날드에서 바라 본 룩소르 신전 ⓒ 운민
그렇다. 이런 자태는 오직 이집트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나일강을 기준으로 동, 서로 갈라진 이 고장은 각기 다른 특징이 다분한데 죽은 자의 도시로서 무덤과 장례전이 대부분인 서편과 달리 동편은 북쪽의 카르나크와 중앙의 룩소르신전을 중심으로 삶과 신앙이 행해지던 일상의 공간이었다.
관광객과 호객꾼이 옥신각신하는 신전을 떠나 한 발짝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현지인이 일상을 보내는 도시가 기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룩소르 동안 여행의 시작은 룩소르신전에서 시작된다. 원래는 신왕국시대에 오페트축제를 위해 지어진 카르나크 신전의 부속신전이었지만 여러 파라오를 거쳐 증축되었고 로마에 의해 요새나 교회로 개조되기도 했다.

▲스핑크스길룩소르 신전, 카르나크 신전 사이의 3km 구간의 스핑크스 길, 이곳에서 오페트 축제의 행렬이 이어졌다. ⓒ 운민
이슬람의 물결이 이 도시까지 밀려온 이후 신전의 일부를 활용해 모스크가 들어섰는데 현재도 아잔소리가 울려 퍼지며 관광객과 분리하기 위해 동선과 입구를 구분 지었다.
6개의 람세스 2세 입상이 자가복제하듯 나란히 서 있는 입상과 하나만 남은 오벨리스크가 인상적인 탑문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수많은 스핑크스가 서로를 마주 보며 3km 떨어진 카르나크 신전까지 이어진 장관을 만날 수 있다. 이 스핑크스길을 통해 오페트 축제의 행렬이 이어졌다. 신전 내부의 켜켜이 쌓인 지성소와 부조, 석상들은 고대 문명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룩소르 신전룩소르에서 가장 보존상태가 훌륭하다고 알려진 룩소르 신전 ⓒ 운민
가장 안쪽공간은 로마시대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로마의 성소와 왕의 방이라 불리는 이곳은 이집트가 로마의 속주가 된 이후 원래 있던 기둥을 제거하여 만들어진 공간으로 현재도 희미하게 프레스코화가 남아있다. 카르나크 신전에 비해 작은 규모라 하지만 가히 만만치 않은 규모다.
이 신전은 낮보다 야간이 훨씬 아름다워 해가 질 무렵 수많은 여행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여기서 카르나크로 가는 중간에는 미라, 룩소르 박물관을 만날 수 있는데 카이로의 박물관에 비해서 규모는 작지만 역사도시에 걸맞은 구성으로 문명의 흐름을 알차게 살필 수 있었다.

▲열주카르나크 신전에서 가장 인상적인 열주의 행렬은 여행객의 입을 절로 벌어지게 한다. ⓒ 운민
다음 발걸음은 이집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카르나크 신전으로 이어진다. 아문신과 그의 아내인 무트여신 그리고 아들인 콘수 신에게 봉헌되었고 중왕국 이후 꾸준히 규모를 확장해 왔다. 남북으로 2km, 동서로 500m를 자랑하는 이 신전은 단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아문신전 구역을 중심으로 무트, 몬트 등 많은 부속신전을 거느리고 있다.
룩소르 신전도 이곳에 소속되어 있었으니 이 신전의 독보적인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신왕국 이후 쇠퇴하는 파라오의 권력을 대신해 이 카르나크 신전의 아문 대사제가 권력을 휘둘리는 일도 심상치 않게 살필 수 있다. 모든 구역을 전부 관람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아문대신전만 공개되어 있는데 가장 규모가 거대한 탑문을 비롯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한 열주들이 인상적이다.
중왕국 시대 이후 30명이나 되는 파라오가 건설에 참여하면서 신왕국 시대 대부분의 파라오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나일강 건너 서편의 하트셉수트 장제전과 바라보이는 지점에서 1 탑문이 시작되는데 사자의 몸에 양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양옆으로 질서 있게 도열해 있었다.
곳곳에 빼곡하게 새겨진 부조와 글자들이 여길 찾는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대화를 들려주지만 그 이야기를 듣자면 며칠도 부족해 보인다. 탑문을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제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파라오의 일화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네 번째 탑문 너머로는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데 다른 곳과 달리 주변에 돌담을 쳐 놓았다. 그녀를 증오했던 투트모세 3세가 벽을 쌓아 업적을 지우기 위한 일환이었다 한다.
10개가 넘는 탑문의 가장 안쪽에는 지성소가 자리한다. 이제 동, 서축을 지나 신성하게 여겨졌던 호수로 떠나보자. 이 호수는 사제들이 의식을 치르기 전에 몸을 정화했던 장소로 더위에 지친 관광객들이 땀을 시키거나 목을 축이기 위한 식당과 기념품점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사회는 바뀌어도 변함없이 자리하는 곳
여기에는 쇠똥구리 모양의 캐프리신의 조각이 보이는데 동틀무렵의 해를 의미하며 창조와 생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곳에는 재미있는 미신이 있다. 반시계 방향으로 3번을 돌면 결혼을 할 수 있고, 5번 돌면 아이가 생기며, 7번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뜨거운 해가 정면으로 작렬하는 장소지만 소원을 이루기 위해 저마다 열심히 주위를 도는 모습을 심상치 않게 만난다.

▲소피텔 윈터 팰리스룩소르를 대표하는 호텔, 소피텔 윈터 팰리스 ⓒ 운민
다시 숙소로 돌아와 나일강을 고요히 바라본다. 소피텔 윈터 팰리스라는 고상한 이름을 지닌 이곳은 1905년에 지어진 이래 수많은 명사들이 묵으면서 호텔의 명성을 드높였다. 그중에는 투탕카멘으로 유명한 하워드 카터를 후원한 카너번경, 벨기에 왕 알베르 1세가 있었다.
아거사 크리스티는 이곳에 머물며 소설 <나일강의 죽음>을 저술하기도 했다. 독보적인 화려함을 지닌 이 호텔은 그야말로 이집트를 대표할만하다(관련 기사:
아가사 크리스티가 추리소설 쓴 곳, 직접 와보니 https://omn.kr/2aoh3 ).
이집트의 마지막 석양이 넘어가며 하늘빛이 진한 주홍색으로 물든다. 한 달간 이집트를 남, 북으로 종단하며 독자들에게 익숙하면서 생소한 이 나라를 생생히 전달하려 노력했다.
처음 접하는 낯선 문화와 관광객을 향한 치근덕거림에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일상처럼 툭툭 털고 일어나면 문명의 장구함과 유구함, 인간의 미약함을 직시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집트의 나일강은 오늘도 변함없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