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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요가원에 등록해 다닌 지 몇 해 째다. 갑자기 며칠 전부터 난방 보수공사를 한다고 요가원 난방가동을 중지하는 바람에 난감해졌다. 옷을 껴입은 채 요가를 시작하며 나름의 편법을 써보았다. 시베리아 추위를 상상해보자. 영하 삼십도, 얼굴에 쓴 마스크가 얼어붙고 구멍난 펠트장화 속으로 눈이 스며들어 발이 꽁꽁 얼어붙는 풍경을 떠올렸다. 마법이라도 일어난 듯 실내 냉기가 무감하게 다가왔다.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읽었다. 한겨울 수용소의 하루는 새벽 다섯 시 기상신호로 시작된다. 바깥은 한밤중처럼 어둡고 수은주는 영하 삼십도에 가깝다. 끼니당 이백 그램의 빵과 멀건 스프로 허기를 면한 죄수들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 중노동을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아무 생각없이 먹었던 하찮은 음식, 변변찮은 공간이지만 비바람을 막아주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요가 강사의 구령에 맞춰 다같이 몸을 풀고 심호흡을 반복했다. 추워서 경직된 몸이 조금씩 이완되기 시작했다. 한 동작을 끝내고 새로운 동작을 시도하기 전, 잠시 호흡을 골랐다.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고 힘을 모으기 위해서다.
수용소의 일과는 인원을 점검하고 신체검사를 마친 뒤에야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한 가지 일과를 끝내고 다음 일과로 나아가기 전, 반드시 인원점검을 거치는데, 그 이유는 죄수가 탈주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탈주하다 잡히면 즉결처형이다. 탈주에 성공하더라도 수용소 바깥의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얼어죽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탈주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움직이니 몸에서 열이 났다. 이젠 수용소 추위를 상상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껴입은 옷을 벗고 양말도 벗었다. 복부에 힘을 가하는 요가동작을 반복했다. 추위가 사라지니 고통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참을 만하다. 잠시 후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수용소 생활 팔 년 차다. 그동안 영양실조로 이를 몇 개 잃고 이질을 앓아 건강상태는 부실하다. 그럼에도 잔꾀부리지 않고 싸움에 말려드는 일 없이 눈치껏 버틴 덕에 수용소 생활에 이력이 붙었다. 이 년 뒤면 형기를 마치고 수용소에서 나간다는 희망이 있어 그는 모든 걸 참고 견딘다.
저녁 점호를 끝낸 슈호프는 침대에 누워 잠시 생각한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면 바깥 세상은 이곳보다 나을까? (글쎄다) 자기가 원하는 게 정말 자유일까? (잘 모르겠다) 바깥 세상에 있으면 가족생계부터 시작해 온갖 걱정을 달고 살아야 하지만, 수용소에 있으면 적어도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생활을 꼭 최악이라 단정지을 수 있을까? (헷갈린다) 어쨌든 오늘은 운이 좋았다. 빵도 하나 더 먹고 이상하리만치 모든 일이 잘 풀렸기 때문이다. 이게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감아준 동료와 암암리에 오고간 공모자의 눈짓 덕분이다. 그런 게 없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어디든 숨돌릴 틈은 있기 마련인 모양이다. 슈호프는 잠시 흡족해하다 눈을 감고 그대로 곯아떨어진다.
난방이 부실해 춥다한들 시베리아 추위에 견줄 수 있을까. 사람들 몸에서 열기가 나니 수련실 공기도 제법 훈훈해졌다. 매트에 누워 팔 다리에 힘을 풀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심신이 편안해졌다. 시베리아 수용소를 상기하며 냉골 속 요가를 무난히 마쳤다. 추울 땐 시베리아 수용소를 상상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끌어내는 슈호프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슈호프는 빵을 먹을 때 절대 허겁지겁 먹지않는다. 마스크에 싸서 겨드랑이 속에 끼워넣었다가 조금씩 물어뜯어 오물오물 씹는다.
입 안에 조금씩 넣고, 혀 끝으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침이 묻어나도록 한 다음 맛을 음미하면 딱딱한 빵도 기막히게 맛있어진다는 게 슈호프의 깨달음이다. 그럴 듯했다. 밥을 조금씩 오래 씹기만 해도 반찬이 필요없을 때가 많지 않나. 하찮은 음식을 먹더라도 슈호프의 식사법을 떠올리면 뭐든 맛있게 먹을 것 같다.

▲2024년 겨울에 읽은 두 권의 책 ⓒ 홍윤정
신영복(1941~ 2016) 선생만큼 감옥살이 소회를 감동적으로 풀어낸 사람이 또 있을까. 암울한 상황을 극복한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태도가 스스로를 돕는 모양이다.
"징역 때 묻었다는 것은 징역을 오래 살거나 자주 살아서 비위 좋고 염치없다는 뜻으로 통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알량한 체면이나 구차스런 변명 따위 코에 걸지 않는다는 솔직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떡을 받으러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떡신자끼리의 공감이란 것도 무슨 가치공감일 리 없습니다. 그저 동류라는 편안함입니다.
그런 때묻고 하찮은 공감에 불과하지만 삭막한 징역살이에서 이것은 여간 마음 훈훈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을 발견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쁨이고 안도감입니다. 밥처럼 믿음직하고 떡처럼 반가운 것입니다. 헌 옷 걸치고 양지 쪽에 앉아있는 편안함입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옥중서간, 돌베게, 384쪽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다보면 감옥살이를 인격수행의 과정으로 승화시킨 성인적 면모를 느끼게 된다. 선생은 두 줄로 길게 늘어선 미싱대의 자리를 차고 앉아 정신없이 미싱을 밟으며 마치 평화시장의 피복공장에 앉아 있는 듯한 연대감을 느꼈다고 1986년 12월 17일 편지에 썼다.
작업을 종료하고 뜨끈한 수제비 한 그릇을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먹는 맛은 비할 데가 없다고도 썼다. 이 대목에서 슈호프의 식사법을 떠올리며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이 여기 있겠구나 짐작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그 힘을 윤석열 탄핵집회에 적용해보았다. 여의도에 울려퍼진 시민들 노래와 함성 소리를 들으며 나는 시민들이 느끼는 분노와 그들이 발산하는 환희가 그대로 내게 전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탄핵 구호가 울릴 땐 나도 따라서 탄핵구호를 외쳤고 탄핵이 가결되어 다들 기뻐할 땐 나 역시 손을 흔들며 기뻐했다.
연대감은 같은 부류가 느끼는 편안함이다. 하찮은 공감일 수 있겠지만 절망을 희망으로 변하게 한다는 점에서 힘이 아주 세다는 걸 이번에 확인했다.
2024년 12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읽으며 잠시 한겨울 추위를 물리쳤다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며 나는 윤석열 탄핵가결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시민들과 함께 한 느낌이었다. 한겨울 추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훈훈해지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