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라 나이트, <절벽 끝에서> 1917 ⓒ Estate of Laura Knigt
여기 '절벽 끝에' 선 여성이 있다. 절벽에서 깊고 짙푸른 바다를 응시하고 있지만 두려움보다는 당당한 태도로 바라본다. 프릴 장식 없는 현대적 여성의 복장. 코르셋 없이 편안한 니트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스커트. 로라 나이트(Laura Knight, 1877~ 1970)의 <절벽 끝에서>(1917)는 이른바 '현대 여성'의 출현을 상징한다.
짙푸른 바다를 응시하는 젊은 여성. 이 그림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의 바다 위 방랑자>(1817)를 떠올리게 한다. 얼핏 보면 대자연을 감상하는 것 같은 한 사람의 뒷모습으로, 자연과의 조우를 그린 것 같다. 남자의 앞모습은 경이에 차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당시 프레드리히가 살던 드레스덴에까지 그 여파가 미쳤고, 종교적 회의가 만연해진 시대였다. <안개의 바다 위 방랑자>에서의 남성은 안개로 가려진 풍경 속 실존적 문제에 부딪혔다. 종교적 회의, 전쟁의 참혹한 실상 앞에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로라 나이트
로라 나이트의 <절벽 끝에서>는 그로부터 100년 후에 그려진 그림이지만 1차 세계대전 후라는 시대적 상황은 같다. 전쟁속에서 인간의 폭력성을 경험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에 균열이 가해진 시점.
이 시대의 여성들은 자신의 가치에 이끌려 사회로 나왔다기보다는 남성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사회로 나가던 때였다. <안개의 바다 위 방랑자>처럼, 짙푸른 바다 앞에 선 여성의 옆모습에서 현대적 여성의 고뇌와 함께 결연한 의지가 보인다.
뒷모습을 그린다는 것은 관람자도 그림 속 인물의 위치에 두고자 하는 화가의 의도를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작품 속 인물처럼, 앞을 가리는 안개 한가운데, 혹은 짙푸른 바다 앞에 선다. 그리고 묻는다. "지금, 여기서, 내가 뭘 할 수 있을 까."
이 그림의 화가 로라 나이트도 당시 여성으로서 기대되는 삶을 살아가기보다, 몇 세기를 앞서간 듯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삶을 살았다. 결혼은 했지만 동료 화가와 결혼해 이른바 '딩크' 부부 화가로 예술적 흥미와 주제에 따라 생활 반경을 옮겨 다녔고, 로열 아카데미에서 허락하지 않는 '여성 누드'를 그렸다.
특히, 새롭게 정의되어야 할 '현대 여성'의 의미와 경험, 사회 안에서의 여성을 관찰하며 다채롭고 강렬한 색감으로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그녀는 남성의 그늘 안에 있기보다는 변화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여성에 관심을 가졌다. 이는 같은 시기 여성 화가들이 주로 가정 안의 풍경이나 어머니와 아이 같은 가정생활로 이루어진 주제에 집중했던 것과 대비된다.
런던으로 이주 후에는 무대 뒤 무용수와 재봉사등이 그녀의 관찰 대상이 되었고, 남편 해럴드 나이트가 존스 홉킨스 병원 외과의사 초상화를 의뢰받아 그릴 동안 간호사와 환자들을 그렸다.
2차 세계대전 당시는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 아이들과 전화 교환병 등이 주제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뉴렌버그 재판에 참가해 <뉴렌버그 재판>(1946)을 통해 역사적 현장을 기록하는 등 당대 여성 화가들보다 넓은 세계와 주제를 화폭에 담았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던 여성 화가

▲로라 나이트, <뉴렘버그 재판>, 1946. ⓒ Imperial War Museum
그 때문인지 로라 나이트는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1936년 로열 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영국 로열 아카데미가 설립된 지 200년 만의 일이었고, 로라 나이트의 나이 50세를 바라보던 시점이었다.
로열 아카데미에서 여성 화가에게 허락되지 않는 여성 누드를 그리고 남성의 영역이라고 생각된 역사적 현장을 담아냈던 활동들이 도리어 남성 화가들과 견줄 수 있게 하는 커리어로서 인정받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로라 나이트가 아카데미 회원이 된 것이 그녀의 화가로서의 커리어에 자유로움을 부여했다기보다, 여성으로서 한계 지어진 범주를 벗어나고자 하는 태도가 로라 나이트를 화가로서 더욱 성장시켰다고 할 수 있다.
한창 커리어를 쌓아갈 30대의 무렵에도 로라 나이트가 그린 여성들이 당당하고, 가정의 영역을 벗어나 존재하며, 자기 만족적이고, 자기 자신에 몰두 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해 준다.

▲로라 나이트, <자화상>, 1913. ⓒ National Portrait Gallery
'남성 화가들이 하는 것은 여성 화가도 할 수 있다'는 그녀의 신념을 보여주는 그림 중 최고봉은 바로 자화상이다. 자화상은 미술사에서 변화하는 화가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상징이자, 화가의 내면적 독백이기도 했다.
로라 나이트의 <자화상>에서 그녀는 여성화가에게는 금기시되다시피 한 누드화를 제작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보란 듯이 모델의 누드와 자신이 그리고 있는 누드화를 두 번 배치하면서 사회적 금기를 깬다.
화가가 입은 옷도, 배경의 색도 붉은색. 강렬하고 직접적이다. 그림의 구조상 이 그림은 기존의 자화상처럼 거울에 비친 화가의 모습이 아니라, 되려 관람객을 등지고 있다. 마치 사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화가 자신도, 모델도,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장르에도, 화파에도 구애받지 않고 넘나들며 스스로를 규정짓지 않고 나아간 로라 나이트. 병원에서도, 전쟁 중에도, 전쟁 후에도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던 것 같다. "지금,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나를 둘러싼 한계들로 답답한 상황에서는 로라 나이트의 <벼랑 끝에서>를 본다. 그리고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여성이 되어본다. 수많은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가 한계를 넓혀가는 과정이 될 거라 확신하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