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성희)은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2월 16일까지 중국미술관(관장 우웨이산)과 공동기획 '수묵별미水墨別美 : 한중 근현대 회화'를 선보이고 있다. 양국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대표적인 근현대 수묵채색화 148점을 한자리에서 조망하는 전시다.
지난 1월 22일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번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한·중 작가와의 대화'를 기획해 양국 작가들과 관람객이 소통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날 행사에는 현대적인 수묵채색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추이진(崔进), 중국예술연구원 공필화원 원장 장젠(张见),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면서 작품과 공간, 신체의 만남을 고민하고 있는 유근택, 분절된 자연 이미지로 독창적인 추상 풍경들을 선보이고 있는 이정배 작가가 참석해 전통 수묵채색화 안에서 논의되고 있는 용어의 문제, 재료 사용의 변화와 작업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이번 전시와 행사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배원정 학예연구사와 네 명 한·중 작가들의 문답이다.

▲한중근현대회화전 연계프로그램지난 22일 국립현대미술관 다원공간에서 <수묵별미:한중근현대회화> 작가 토크가 열렸다. 왼쪽부터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추이진 작가, 장젠 작가, 유근택 작가, 이정배 작가가 참석해 수묵화의 개념과 용어, 재료의 활용과 작업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국립현대미술관
-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동아시아 회화의 전통을 이어 온 수묵화(水墨畵)의 개념과 용어 사용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수묵별미 : 한중 근현대 회화전 작가 토크>에 함께 한 작가들의 공통점은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술의 형식과 재료적인 다양성이 풍부한 시대에 작가님들께서는 '수묵화'라는 용어가 어떻게 불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추이진(崔进) 작가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수묵화'로 사용합니다. 수묵과 색채를 융합한 장르로 '채묵화'라는 용어도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중국화'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은 중국이 가진 심미적인 세계와 미학을 담은 함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작가들이 재료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죠. 산수화를 표현하면서 담배 같은 걸로 그을음을 주는 효과를 내기도 하고, 마치 퍼즐을 맞추는 형식으로 작품을 창작하기도 합니다. 일본 회화에서 사용하는 안채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유근택 작가 "재료가 장르가 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중요하죠. 물질에 의해서 장르가 만들어지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시대에 하나의 명칭으로 장르를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저 역시 수묵으로부터 미술을 시작한 사람이고 현재도 채색과 종이, 물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수묵이라는 재료가 가지고 있는 공간 개념, 수묵이 가지고 있는 '스며들어 가는 공간' 개념은 아주 중요합니다. 제가 수묵을 기본으로 하지만 제 작업을 콕 집어 수묵화라고 하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다만 동양 회화사에서 무수한 천재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독자적'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부분은 회화적인 방향이 자기 자신이었다는 겁니다. 그림과 회화라는 매체의 목적성이 나와 시대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가 중요한 지점이었다는 거죠. 겸재 정선의 작업을 수묵화라고 부르지만, (수묵을 넘어서는) 미디어적인 개념이 있다는 점에서 좀 더 확장적 개념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정배 작가 "개념이라는 것은 확고한, 절대부동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실 동아시아 회화형식을 개념화시키는 것은 위험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술은 늘 그렇듯 새로움의 출현이죠. 이전 세대가 가지고 있던 확고한 신념을 다른 형식으로 넘어서면서 재등장하는 게 미술의 역사고요. 이 때문에 개념화가 필요한 역설적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각 나라가 가지고 있는 미술적 양식과 형식을 한국에서는 굉장히 대립적으로 보았는데, 같은 대상을 인식하는 방법이 서구와 동아시아가 달랐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서로 어떤 재현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대립성이 아닌 차별성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 문화가 가지는 잘 섞이고 혼재되는 성격을 감안해서 (양식) 구분의 차원에서는 자유롭게 쓰되, 내용 면에서는 재현적인 요소가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수묵화의 확장을 위해 어떠한 실험적인 기법이나 재료들을 활용해 오셨는지, 또 전통적인 수묵화 작업에서 현대적인 작업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추이진(崔进) 작가 "재료는 사실 도구에 불과합니다. 도구를 통해 감정과 정서를 표현하는 거예요. 작가가 외부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표현하는 거죠.
제 작업의 방향이 전환된 계기를 따지자면, 저의 경험(과 시간)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겠죠. 제 작품이 전통적인 연화도 있고, 초현실주의와 결합한 작품도 있습니다. (작품의 다양성은) 제 젊은 시절의 열정이 드러나는 것이죠. 사회의 변화와 제 경험이 쌓이면서 외부 세계에 대한 완전히 다른 이해가 생겼던 것이고, 그 이해를 작품으로 표현한 겁니다.
최근 제 작품을 보면 분명한 주제가 있습니다. 인생의 불확실성, 사람의 운명에 대한 것입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 말이죠. (이러한 주제 안에서) 형식과 재료와는 별개로,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술가로서 (저 자신의) 내적인 정서와 진실된 감정, 정신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한중근현대회화전 작가 토크지난 22일 국립현대미술관 다원공간에서 <수묵별미:한중근현대회화> 작가 토크가 열렸다. 추이진 작가는 '오늘날 수묵화라는 용어가 마땅한가'라는 배원정 학예사의 질문을 받고 답하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추이진 노방추이진, 〈노방〉, 2019, 종이에 먹, 색, 116×64cm, 중국미술관 ⓒ 중국미술관
장젠(张见) 작가 "저의 경우에도 창작, 즉 실험이라는 것은 '유지'와 '성숙'이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무언가 벽에 막혔을 때 실험실에서 돌파구를 찾죠. 그런데 그 돌파구가 재료가 아닐 수 있습니다.
백색을 처리하는 경우 중국화에는 다양한 백색이 있습니다. 호분도 있고요. (백색 가운데서도) 따뜻하고 차가운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거기서 구체적인 느낌은 창작 과정에서 실제로 써보아야만 작가 본인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중국화에서는 '선의 사용'을 강조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중국 사람들보다 '선의 질'을 따지는 경우가 없을 겁니다. 선에서 화가의 실력, 심지어 인격까지 볼 수 있다고 하는 만큼 중국화에서는 선이 중요시되고 중국화의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중근현대회화 작가 토크지난 22일 국립현대미술관 다원공간에서 <수묵별미:한중근현대회화> 작가 토크가 열렸다. 장젠 작가가 자신이 하고 있는 창작의 방향과 방법론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장젠 이브닝드레스장졘, 〈이브닝드레스〉, 2002, 비단에 먹, 색, 64×59.5cm, 중국미술관 소장 ⓒ 중국미술관
유근택 작가 "2000년대 이후로 한국회화사는 매우 많은 변화를 겪은 시기입니다. 정보의 체계와 작업의 방식이 개방적이었고, 세계적인 경향과 형식들을 자기 방식으로 끌고 들어오는 형태죠. 거대 담론보다 개인적 감수성이나 사적 감수성이 '어떻게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가'하는 방법론과 모색이 적극적으로 있었던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수묵화라는 장르적 고민이 어떻게 확장적일 수 있고, 보편적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재료적 방법으로 호분을 끌어들였고, 호분을 사용하다 보니 '평면과 공간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또 '색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지점까지 나아갔습니다. 한 걸은 더 나가서 '종이의 물성 자체에서 언어를 이끌어 낼 수 없는가'하는 차원으로 점점 더 확장적인 개념으로 변모해가고 있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다루는 물질이 어떻게 새로울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다는 겁니다."

▲한중근현대회화 작가 토크국립현대미술관 다원공간에서 <수묵별미:한중근현대회화> 작가 토크가 열렸다. 유근택 작가가 자신의 작업이 어떻게 점점 확장되가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유근택 어쩔 수 없는 난제들유근택, 〈어쩔 수 없는 난제들〉, 2002, 종이에 먹, 색, 135×16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이정배 작가 "동아시아 회화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성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재현 체계. 또 하나는 여백입니다.
서양의 재현 체계는 관찰로부터 시작하고, 대상과 거리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 재현 체계의 특징은 대상과 관찰자, 즉 그림 그리는 사람의 거리를 없앴다는 점입니다. 나와 대상의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외면을 그린다기보다 작가가 그 사람이 되기 위해 하는 노력과 태도들이 있다는 거죠. 그의 언어와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 다음 초상을 그리는 겁니다.
또 하나는 여백입니다. 여백은 그리지 않은 것이죠. 여백은 그리지 않았지만,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거죠. 작품이 작가 손을 떠나서 완결된 것이 아니라 관객의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는 겁니다. 대도시에서 산과 건물들이 많죠. 저는 그 사이에 작은 기하로 등장하고 있는 산, 자연물을 봅니다. 그것들을 보면서 어떤 색이나 면으로 이것들을 드러낼 수 있을까 연구하고요. 디테일을 제거하는 방식으로요.
결국 제가 집중하는 것은 여백입니다. 색면으로 치환된 것이 무한한 상상력으로 보이길 원합니다. 표면의 즐거움, 색면의 즐거움,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 이게 여백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정배지난 22일 국립현대미술관 다원공간에서 <수묵별미:한중근현대회화> 작가 토크가 열렸다. 이정배 작가가 동아시아 회화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이정배, 〈두 개의 봉우리〉, 2020-2024, 2020-2023, 알루미늄, 우레탄 페인트, 144.7×89×0.8cm; 114×88.5×0.8cm, 개인 소장 ⓒ 이정배
-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재료나 표현을 넘어서 동양화라 부르기 위해 즉 수묵화라 부르기 위해서 잃지 않아야 하는 핵심적 요소는 무엇일까요."
유근택 작가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가 작업을 하는 과정에도 그 질문을 해본 적이 없어요. 내가 다루는 매체는 그 당시의 필연성이 있는데, 그 순간에 내게 다가오는 물질성과 대상성이 있죠. 표현성이라는 것이 시간에 따라 너무나 다르게 작용하는 거죠. 결국 예술가가 만지고 있는 재료, 작업은 필연성을 가지고 있고, 중요한 건 그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고, 이때 필연성이란 작가의 몸과 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작품이 동양화로 불릴지 말아야 할지는 그다음 문제가 될 것이고요."
-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한편 사회적인 제도가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작가는 어떻게 대응하면서 작업을 진행하는지 궁금합니다."
추이진(崔进) 작가 "예술가는 시대의 기록자라 생각합니다. 기록자라고 하는 건 구상적인 방식 뿐만 아니라 시대의 정신을 기록하는 사람이어야 하죠. 이 화두는 중국에서도 논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통을 새로운 시대에 녹여낼 수 있고, 더 혁신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죠. 당대의 예술가들은 현대적 방식으로 혁신적하는 작업들에 자극을 받으면서 활동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동시대를 보여주는 매개체가 되는 거죠. 예술가에게는 반드시 동시대적인 정신을 긴밀하게 엮어서 표현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시대를 드러내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입니다."
-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마지막으로 중국에서는 서구 주류 미술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중국작가들이 어떤 특별한 예술 의지를 갖고 작업을 하고 있는지 말씀 나눠주시고, 오늘 행사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졘(张见) 작가 "중국처럼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입장에서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서구를 배운다는 것은 근대부터 중요한 과제였고요. 당시에 중국은 대가들이 유럽이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유학이라는 것은 서구가 앞서 있다는 감각에서 출발하는 거고요. 그들이 돌아와서 중국에 굉장한 영향을 끼친 것은 의심할 여지는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한 가지 특별한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앞서 나갈 때도 뒤를 돌아본다는 점입니다. 전통을 돌아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민족성이자 저 역시 그렇습니다. 모두가 앞을 향해야 한다, 미래를 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민족의 문화적 특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예술가들이 참 많고 다양합니다. 시간은 모래시계와 같아서 시간이 쌓여가면서 (예술의) 정수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한중 예술가와 예술계가 함께 나날이 발전하길 기대해 봅니다."

▲한중근현대회화 작가 토크<수묵별미:한중근현대회화> 작가 토크 기념 사진. 왼쪽부터 장젠(??) 작가, 추이진(崔?) 작가, 이정배 작가, 유근택 작가. ⓒ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