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변해도 맛에 대한 기억과 쓰임은 변하지 않나 보다. 언제 이렇게 쌓인 눈을 보았을까 싶을 만큼 많이도 내렸다. 낮에도 밤에도 소복소복 내렸다. 풍경으로는 좋지만, 외출을 하려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눈이 그치고 땅이 녹기 시작하니 밭에 가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내 보기엔 캘 것도 없어 보이는데, 땅에 묻은 돈을 찾기라도 하듯 열심히 찾아다닌다. 냉이란다. 눈맞은 냉이는 더 영양가가 높고 달큰해서 무쳐 먹어도 좋고, 데쳐 먹어도 끝내준단다.
나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냉이는 한해살이 식물이다. 바위에 들러붙은 낙지처럼 냉이는 최대한 땅에 몸을 밀착해 납작 엎드려있다. 생존 전략이다. 겨우내 양분을 몸에 저장해야 꽃을 피우고 2세를 위한 씨앗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날이 급한 냉이는 그래서 옆을 볼 겨를이 없어 잔뿌리도 없이 급한 대로 긴 뿌리 하나만 땅에 고정한 채 양분을 섭취하기에 바쁘다. 눈이 와도 파란 잎을 보이는 냉이는 추위와 바람을 견디기 위해 최대한 잎으로 땅을 덮어 몸을 덥힌다. 냉이는 뿌리가 약이라고들 한다. 인삼에 있는 사포닌 성분도 있고, 언뜻 보면 만병통치약 같다.

▲밭에서 캔 냉이다. 길바닥이 아닌 그래도 폭신한 땅에서 냉이가 자랐다 생각하니 덜 측은한 마음이 든다. ⓒ 김은아
"다들 유채꽃은 그리도 즐기면서 무나 배추꽃은 왜 모르지? 냉이도 꽃이 피면 참 예쁜데…. 몸에 좋다니까 겨우내 애써 저장한 양분을 인간이 낼름 먹어치우네!"
냉이 캐는 사람을 보고 지나가는 마을 어르신이 한 마디 툭 하신다.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순리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잎을 이불 삼아 땅을 덮고 뿌리를 잘 지켜낸 냉이 입장에서는 가슴 아플 일이지만, 인간의 논리로서는 영양가 풍부한 나물인 것을.

▲눈맞은 냉이눈 속에 냉이가 파묻혀 있다. 형체로 보면 냉이가 맞는데 모두가 다 파란 것은 아니다. 눈을 이불삼아 잎을 속이불 삼아 포근하다 여기며 양분을 축적하고 있으리라. ⓒ 김은아
눈 맞은 냉이가 좋다는데
너무 추우면 땅이 얼어 냉이를 캘 수가 없다. 2월이면 땅도 적당히 말랑하고, 계절도 알맞다.
"눈 맞은 냉이가 약이래. 몸에 얼마나 좋은데?"
"그러니까, 너나 많이 캐서 묵어. 주라고 안 할 터니."
어려서 지천에 널린 냉이를 질리게 드셨다는 엄마는 냉이 손질하기도 번거롭고, 무엇 보다 쪼그려 앉아 냉이 캐기가 쉽지 않다고 하시며, 냉이 캐자는 언니의 청을 단칼에 자르신다.

▲냉이 심마니마음은 원이로되 현실은 냉정하다. 큰 양동이를 양 손에 들고 있지만, 엄마는 한 뿌리도 못 캐셨다. ⓒ 김은아
나는 사실 지금도 냉이를 구별할 줄 모른다. 먹거리에 빠삭한 언니 눈에는 온 천지가 냉이로 보이는 것 같다. 둘만 밭에 내보낸 엄마가 마음이 불편했는지 나오신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인데, 엄마 눈이나 내 눈이나 비슷한 것 같다.
"어찌 자 눈에는 그렇게 냉이가 잘 보이나 몰라."
냉이를 모를 리 없는 엄마라고 확신은 하지만, 엄마는 한 뿌리도 못 캐셨다. 언니는 아무리 뒤져도 안 보이는 냉이를 참 잘도 찾는다. 역시 보려고 해야 보이고, 얻으려 해야 얻는다.
수고해야만 얻는, 봄 날의 푸른 보석
24절기만큼이나 맛도 쓰임도 변하지 않는다. 아는 사람들은 냉이를 캐고, 또 지금이 가장 약성이 좋다며 조릿대를 꺾어다 차로 마신다. 감기에 조릿대차만한 게 없고, 봄 오는 길목에 냉이만한 나물이 없다는 것이다. 다듬고, 씻어서 끓여 먹으려면 참으로 손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세상사 그냥 얻어지는 것이 있나. 그 정도 수고는 당연지사다.

▲눈 속의 조릿대겨울철 숲에 있는 조릿대를 꺾어다 차로 마시면 열도 내려가고 목도 가라앉는다. 맛도 참 좋다. 오감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한 눈 맛'같다. ⓒ 김은아
물가는 너무 오르고, 세상도 뒤숭숭하기 짝이 없다. 때는 소리 없이 와서 할 일을 다 하고 유유히 떠나간다. 세월이라는 기차가 봄 역에 다 와 간다. 땅속에서도 우리가 보지 못할 뿐, 식물들도 나무들도 봄 소리를 낸다. 바람이 불건, 눈보라가 치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땅에 뿌리를 깊게 내려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냉이 뿌리다. 몸집에 비해 뿌리가 정말 크고 곧다. 못처럼 긴 뿌리로 땅에 견고히 설 수 있었나보다. ⓒ 김은아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꽃을 피우려고 이 모진 눈보라 속에서 정신줄 붙잡고 뿌리를 뻗고 있는 것일까. 기다리는 이 하나 없어도 보일 듯 말 듯한 냉이꽃 한 송이 피우겠다고 그리도 몸부림했을 냉이. 언제는 알아주어 꽃을 피웠나. 잎을 있는 대로 펼쳐 묵묵히 언 땅을 데우며 봄이 오는 소리를 눈으로 듣게 하는 고마운 존재다.
아무 길 위나 척박한 환경에서 살지만 심지만은 대못처럼 굳건하다.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한 그 몸짓이 숭고하기까지 하다. 한편으론 잡초로 밟혀 죽는 것보다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가서 그의 통통한 살이 되어주는 것이 냉이의 보람일지도 모른다.
낭만은 그때, 그 순간
마트에 가면 편히 구할 수 있는 냉이. 그러나 캐는 수고를 마다치 않고 밭에 쭈그려 앉아 냉이를 캐는 것은 어쩌면 누구나 누릴 수 없는 호사인지도 모른다. 캐보지 않고서 어찌 냉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겠는가.
지금 캐는 것은 냉이가 아닌 냉이의 삶이다. 잎부터 뿌리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야물딱지게 한입에 들어갈 줄 알면서도, 자신의 여정을 이야기하는 냉이는 그러고 보면 속도 참 좋다.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기회는 항상 그때, 그 순간이다. 도심 속 번잡한 삶으로 돌아가면 누릴 수 없는 축복이다. 낭만이라는 것이 버스 터미널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테다…. 아는 자만이 낭만도 누릴 수가 있나 보다. 잠시 멈춰선 버스에 올라타야만 하니 말이다.

▲냉이꽃날이 풀리면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울 것이다. 이름 없는 들꽃이 아니다. 냉이꽃. '나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는 꽃말도 가지고 있는 고고한 식물이다. ⓒ Pixabay
덧붙이는 글 | 이 세상에 중하지 않는 존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름 없는 들풀 또는 잡초라고 하지만, 이름을 모를뿐 왜 이름이 없겠는지요. 길 위에 사는 냉이도 '나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라는 고고한 꽃말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인생도 그러하듯 사연 없는 식물도 없었습니다. 날이 풀리면 길가에 무심코 피어있는 냉이꽃에 인사 한번 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주변의 '사람 냉이꽃'들에게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