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자지구 남부 라파 지역에서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아래 세워진 피난민 텐트 ⓒ 세이브더칠드런
2025년 1월 25일은 제게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1월 19일, 휴전이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은 그날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계신 분과 영상 통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쟁에서 아버지와 형제를 비롯한 수많은 가족을 잃은 피해자와 얼굴을 마주하자니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짧은 대화에 그쳤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나니 뉴스가 아닌 '사람'을 통해 가자와 다시 연결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연락이 끊어진, 가자 지구에 살던 친구 아베드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봉쇄로 고립된 팔레스타인... 자유로운 이동은 불가능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폭격하기 시작한 2023년 10월 7일부터 휴전이 시작된 2025년 1월 19일까지 사망한 가자 주민의 수가 4만 7천 명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휴전 이후에도 사망자 수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폭격이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있거나 땅속에 집단 매장되어 있던 시신을 수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자 주민의 희생이 컸던 가장 큰 이유는 이스라엘 군대가 가진 '살인의 능력'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자가 봉쇄되어 있다는 것 또한 피해를 키운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가자에 가 본 적이 있다는 것이 이처럼 특별한 경험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벌써 여러 해 지난 일인데, 그때도 가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허가가 필요했습니다. 흔히 해외여행을 할 때 비자 발급을 받는 것과는 달리, 가자 지구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특별 허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특별 허가 없이는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갈 수도 없고, 가자 지구 안에 있는 사람이 밖으로 나올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대구광역시 인구와 비슷한 230만 명가량의 사람이 감옥과도 같은 가자 지구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유엔 인도지원조정실(OCHA)은 지난 2022년 6월 '가자 지구 : 15년 봉쇄의 인도주의적 충격'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가 미친 영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기존의 이동 제한 조치를 대폭 강화하여 가자 지구를 다른 팔레스타인 점령지 및 전 세계로부터 사실상 고립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외곽에 철조망과 콘크리트로 장벽을 쌓았습니다. 이스라엘 언론 <더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의 보도에 따르면 장벽의 길이는 65km에 이르고 높이는 6m가량이라고 합니다. 레이더 등 각종 감시 장비가 설치된 장벽을 따라 곳곳에 감시탑을 세워 군인이 지키고 있습니다. 심지어 장벽은 지하와 바다 쪽으로도 뻗어 있습니다.

▲내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만났던 학생들 ⓒ 미니
예전에는 가자 지구에 국제공항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이 2001년부터 활주로, 관제탑, 터미널 등을 파괴해서 더 이상 운영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군함이 바다를 지키고 있어서 팔레스타인 사람이 배를 타고 조금만 멀리 나가면 총을 쏩니다. 땅과 하늘과 바다, 이스라엘은 가자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이렇게 봉쇄된 가자 지구에 이스라엘은 미국이 제공한 미사일과 폭탄을 쏟아부은 것입니다. 폭격은 가자의 북부 지역부터 시작됐고 이스라엘은 주민들에게 남쪽으로 이동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부분의 가자 주민이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파(Rafah) 지역으로 몰려들게 된 겁니다.
만약 가자가 봉쇄되어 있지 않다면 많은 사람이 살기 위해서라도 가자 밖으로 나가겠지만, 외부가 봉쇄된 상태에서 주민들은 폭격을 피해 가자 지구 안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할까 싶은 학교나 병원으로 몰려들자 이스라엘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을 계속해서 폭격했고, 희생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습니다.
휴전 이후, '집' 아닌 '집터'로 돌아가는 팔레스타인인들
1월 19일 휴전이 시작되고 수십만 명의 사람이 다시 가자 지구 북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난민들은 길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땅에 엎드려 기도하며 기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쟁 속에서 헤어졌던 아빠와 딸이 다시 만나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난민들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들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많습니다. <알자지라>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전쟁으로 가자 지구 주택의 92%가량이 부분 또는 전부 파괴되었습니다.
휴전이 시작된 1월 19일 <로이터>가 드론을 이용해 촬영한 자발리아(Jabalia) 난민촌의 모습은 그야말로 폐허입니다. 그 많은 난민이 수도도 전기도 없는 폐허 속, 그야말로 집터만 남아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휴전과 함께 하마스-이스라엘 양측은 억류하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풀어줬습니다. 이스라엘 감옥에 있다가 이번에 풀려난 사람 가운데는 칼리다 자라(Khalida Jarrar)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1963년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나블루스(Nablus)에서 태어난 자라는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전선(PFLP)' 소속의 정치인으로 살아왔습니다. 또한 수감자를 지원하는 단체인 '앗다미르(Addameer)'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인권운동가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처음 이스라엘에 체포된 것은 1989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행진에 참여했을 때입니다. 이후 그녀의 인생은 체포와 구금의 연속이었습니다. 2015년 4월에는 이스라엘이 그녀를 '행정 구금' 했습니다.
행정 구금이란 이스라엘이 필요하다 싶으면 영장 등의 법적 절차 없이 자의적으로 팔레스타인인을 구금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어떤 혐의로 체포했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고, 구금 기간 또한 무한정 늘어날 수 있습니다.
2023년 10월 전쟁이 시작된 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는 물론 서안 지구에서도 팔레스타인인을 대규모 체포·감금했습니다. 이때 자라 또한 체포되었다 이번에 풀려난 것입니다.

▲8월 11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곳곳에서 공습을 이어가고 있다. 2024.08.12 ⓒ 누세이라트 AFP=연합뉴스
서안 지구 공격 계속하는 이스라엘
휴전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을 대부분 멈췄습니다. 그러나 서안 지구에 대한 공격은 지속하고 있습니다. 가자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던 지난 15개월 동안 서안 지구에서도 8백 명 넘게 살해되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공격이 특히 강화되고 있는 곳이 서안 지구 북부에 있는 제닌(Jenin) 지역입니다. 제닌은 오래전부터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이기도 하고, 그만큼 이스라엘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던 곳입니다.
팔레스타인 언론 와파(WAFA)에 따르면 1월 21일부터 1월 30일까지 이스라엘은 제닌에서만 19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했습니다. 드론을 이용한 폭격이나 저격수의 사격 등으로 부상자가 발생했는데도, 이스라엘은 구급차가 부상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어 추가적인 피해 또한 발생하고 있습니다. 1월 29일 밤에는 이스라엘이 서안 지구 투바스(Tubas) 지역을 폭격해 10명을 살해했습니다.
이러한 공격에 대해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는 "테러리즘의 제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한 그들의 군사 공격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렵게 시작된 휴전 또한 언제 깨어질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 평화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