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부터 주 1회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싣습니다.[기자말] |
나는 복지관에서 어르신들과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이라는 이름으로 글쓰기 수업을 한다.
지난 2월 첫 주 개강일, 하필 한파주의보가 떴지만 15명 정원에 14명이 지각없이 오셨다. 재수강생이 10명이라 더 감사했다. 수강 못한 분은 추첨에서 떨어져서 그랬단다.
어르신들 글이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왜곡없이 전달됐구나 싶어서 나도 흥이 차올랐다.
카톡 어렵다는 의외의 고충
복지관이 방학인 동안, 나는 교회에서 만난 어르신들께 '쓰기의 어려움을 느낄 때'를 종종 여쭤봤다.
예상 못했던 '카톡이 어렵다'라는 답이 여러번 나왔다. 전화보다 카톡 비중이 높아지면서 짧은 글을 쓸 일이 많은데, 그럼에도 그게 부담될 때가 있다고 하셨다.
수업에 새로오신 분이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내 자료조사가 헛되지 않았구나 싶어서 내심 반가웠다.
화면에 <센스있는 카톡으로 자식들과 식사약속 잡기> 라는 제목을 띄웠다. 어르신들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띄워진다. 이번 소재만큼은 다들 일필휘지다. 5분도 안 되어 다 쓰셨다고 했다.

▲의외로 카톡 글쓰기가 어렵다는 어르신들이 많다(자료사진). ⓒ priscilladupreez on Unsplash
나는 다시 질문했다.
"센스있는 카톡은 뭘까요?"
친절한 카톡, 한눈에 읽기 좋은 짧은 카톡, 그림이 들어간 카톡 등등의 대답이 나왔다. 나는 모든 대답에 다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그게 모두 센스입니다. 저는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할게요. 행간을 읽는 노력이 필요없을때 상대방은 센스를 느낍니다."
고맥락 언어는 피곤하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은 한국어에서 지나가는 인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말을 연세 드신 부모님이 할 때는 마냥 인사로만 볼 수 없다. 정말 밥 한 번인지, 하고 싶은 다른 말이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행간을 읽어내야 하는 톡이다.
반면, 식사 가능한 시간과 메뉴를 어느정도 정해놓고 보내는 톡은 따로 읽을 행간이 없다. 식사 메뉴 확인절차도 필요없다. 그렇지만 어떤 어르신에게는 이게 서운함이 될 수도 있기에 다시 여쭤봤다.
"알아서 착착 해줬으면 하는 마음 드시죠? 부모 마음 헤아리는 게 자식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드시죠?"
몇몇 어르신이 너털웃음을 지으신다. 내 말을 인정한다는 뜻일게다. 그래도 웃어주시니 다행이었다.
센스는 결국 배려다. 말하지 않아도 알면 물론 좋겠지만 배려하는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든다. 그 어려움이 쌓이면 피곤함이 되고 더 쌓이면 아예 안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한국어는 고맥락 언어라고 한다. 같은 말이라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말보다 분위기나 눈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누군가 "괜찮아요"라고 말할 때, 정말 괜찮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억울함이나 서운함을 삼키며 하는 말일 수도 있다. 듣는 사람은 표정, 어조, 상황을 고려해 진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영어는 '저맥락 언어'로 분류된다.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며 문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I'm fine"이라고 하면 정말 괜찮다는 뜻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 문장 속에 감정을 덧붙이거나 명확한 표현을 추가하는 경향도 있다.
사랑을 쓰는 연습
간단한 설명이 끝나자 몇몇 어르신의 펜이 바삐 움직인다. 살아내느라 바쁜 자식들을 위로하면서, 전하는 의도도 정확한 명료한 카톡 문장이 쏟아졌다. 나는 모든 발표에 아낌없는 칭찬을 해드렸다.
한국어는 때때로 피곤한 언어로 느껴질 수 있다. 말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말하는 사람 역시 자신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전달해야 하며,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국어는 섬세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언어이기도 하다. 피곤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한국어, 우리는 이 균형 속에서 살아간다.
"이제 자식들에게 센스 있는 톡을 보낼 수 있겠어요." 어느 어르신의 마지막 말에 우리는 다 같이 웃었다.
한국어는 어렵고, 때로는 피곤하지만, 그렇게 한 글자씩 마음을 전하려는 순간순간이 쌓여 가족의 이야기가 된다. 그날의 수업은 결국, 사랑을 쓰는 연습이었다. 언어의 온도를 바꾸는 연습이다. 그 따뜻함을 떠올리며 나역시 센스있는 말 한마디를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