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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13 10:53최종 업데이트 25.03.13 10:53

성스럽지도, 에로틱하지도 않은 '누드'

[미술관에 간 페미니즘] 파울라 모더존-베커 : 최초를 쌓아간 여성

 호박목걸이를 한 자회상. 1906
호박목걸이를 한 자회상. 1906 ⓒ 파울라 모더존-베커

최초로 누드 자화상을 그리다

"그럼 누드가 그 자체로 문제인가요?" 누드화에 대한 강의가 끝난 뒤 한 수강생이 물었다. 누드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벗은 몸이 재현되는 방식에는 명백하게 젠더 권력이 개입한다. 남성이 측량하고 바라보며 생각하는 입장이라면 여성은 철저하게 보여지는 몸이다. '누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즉각적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누구'인가. 누드는 인간 사회에서 결코 중립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여성 화가는 대상화되지 않고 어떻게 창조적인 주체로 시각 예술에 개입할 수 있을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독일 표현주의 화가, 파울라 모더존-베커(Paula Modersohn-Becker, 1876~1907)의 '호박목걸이를 한 자화상'은 여성 화가의 첫 번째 누드 자화상이다. 이보다 3세기 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수산나와 장로들'에서 자신의 몸을 그린 적이 있지만 이는 여성 작가들이 모델을 구하기 어려워 제 몸을 모델로 활용한 것이지 자화상을 그린 것은 아니다.

수전 발라동과 함께 모더존-베커는 여성의 몸을 남성의 시선이 아닌 여성의 입장에서 재현한 최초의 여성 화가이다. 이들의 그림 속에서 여성의 몸은 성스럽지도, 에로틱하지도 않다. 베커는 고갱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고갱처럼 원시성이 강조된 이국적인 여성의 몸을 자연으로서 찬양하지도 않는다.

베커는 기존 남성 작가들의 누드화가 만들어지는 방식인 모델과 창작자의 관계를 무너뜨리며 누드 자화상을 그림으로써 누드화의 관습을 깬다. 나아가 그는 임신한 누드 자화상까지 그린다. 여성은 창작이 아니라 임신-출산이라는 생물학적 재생산만을 성역할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그는 임신한 누드 자화상을 통해 두 세계의 통념적 구별을 교란시킨다. 누드 자화상-임신한 누드 자화상-옷을 벗고 누워있는 어머니와 아기로 이어지는 흐름은 몸을 통해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

베커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러 개 필요한 화가이다. 최초로 누드 자화상을 남기고, 최초로 임신한 누드 자화상을 남기고, 또한 최초로 제 이름의 미술관을 남겼다. 짧은 삶을 살았으나 활동적으로 작업하여 천 점 이상의 다양한 그림을 남겼다. 통념적인 여성성을 담지 않은 그의 그림은 사후 나치에 의해 퇴폐 미술로 낙인찍혔다.

 여섯번째 결혼기념일의 자화상. 1906
여섯번째 결혼기념일의 자화상. 1906 ⓒ 파울라 모더존-베커

어머니와 화가 사이에서

베커는 1876년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1888년에 브레멘으로 이사한 후로 브레멘은 베커에게 중요한 장소가 된다. 당시 중산층 여성들이 그렇듯이 그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학교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았으나 교사가 될 생각이 없었다. 열일곱 살부터 베커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무 살 즈음 베커는 베를린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독일 페미니즘 문학에서 중요한 인물인 나탈리 폰 밀데를 만나 깊은 인상을 받지만 가족들의 개입으로 이들의 관계는 지속되지 못했다.

1898년, 베커는 독일의 예술가 공동체인 보르프스베데 그룹에 합류했다. 이 그룹은 산업화와 거리를 두고 농경 생활을 추구했다. 이때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조각가 클라라 웨스토프를 만났고 이들과의 관계는 평생 이어졌다. 보르프스베데에서 활동하던 화가 오토 모더존과 결혼하며 베커는 이곳에 정착하지만 이 그룹이 지향하는 미술에 온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베커는 모더니즘의 수도인 파리로 향한다. 파리에서 특히 폴 세잔과 폴 고갱과 같은 후기 인상파의 작업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베커는 수년간 파리와 보르프스베데를 오갔지만, 보르프스베데파의 자연주의와 점차 멀어지고 프랑스 미술계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오귀스트 로댕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그 당시 파리에서 미술가들이 관심을 가졌던 일본화를 공부하기도 했다.

베커는 한동안 남편과 떨어져 왕성하게 작업했다. 그의 대표작이 된 '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의 자화상'도 이 시기에 제작했다. 이 작품은 임신한 여성을 그린 최초의 누드 자화상이다. 흥미롭게도 이 그림을 그리던 시기에 베커는 임신 중인 상태가 아니었다. 임신과 출산 경험 없이 '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하는 여성 화가에게는 무수한 생각들이 오갔음을 짐작케한다. 사후에 출간된 그의 일기와 편지에는 모성에 대한 고민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당시 여성 운동과도 거리를 두었던 베커는 시대의 통념에 적극적으로 맞서기보다는 모호한 입장이었다.

1907년 베커는 보르프스베데에 있는 남편에게 돌아갔고 그해 11월 딸을 출산했다. 몇 주 후에 베커는 임신 합병증인 심부정맥 혈전증으로 사망했다. 당시 출산 후 여성들에게 종종 발생하는 질병이었다. 겨우 31세였다. 어머니 되기와 창작자 되기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어머니가 되자마자 삶을 마치고 말았다.

베커는 생전에 그림을 거의 판매하지 못했다. 1917년, 사망 10주기를 맞아 베커의 작품들은 대규모로 전시되었다. 1927년 브레멘에 여성 작가를 기리는 최초의 미술관인 파울라 모더존-베커 미술관이 개관했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5년 3-4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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