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원은설 국회의장실 정무 비서관이 12.3 내란 당시 경험한 일과 생각 등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원 비서관의 동의를 얻어 해당 글을 게재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투입되어 점령을 시도한 국회의사당의 모습. 해당 사진은 12월 4일 오전 2시께 촬영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투입되어 점령을 시도한 국회의사당의 모습. 해당 사진은 12월 4일 오전 2시께 촬영된 것이다. ⓒ 권우성

비상계엄 선포, 불 꺼진 국회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오후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여의도 국회를 비추는 불들이 꺼져 있다. 해당 사진은 12월 3일 밤 11시 30분께 촬영된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 불 꺼진 국회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오후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여의도 국회를 비추는 불들이 꺼져 있다. 해당 사진은 12월 3일 밤 11시 30분께 촬영된 것이다. ⓒ 유성호

엄마는 당신 배에 나를 품었을 때, 꿈을 꾸었다 했다. 꿈 속에서 엄마는 백두대간 같은 태산 한복판을 걸었다. 어느 순간 어스름한 새벽이 당신과 함께 서있었고, 그러다 산맥 가득 눈이 내렸다는 말은 이야기의 늘 같은 시작이었다.

참 조용히도 내렸다고 했다. 매서운 눈보라도 칼날바람도 없었던 산 속. 희었던 눈은 새벽의 푸르스름과 섞여 은빛으로 빛났는데, '은색 천이 세상을 다 덮다 못해 밝히는 듯 했어'라던 그녀의 환해지는 음성.

소복소복, 펑펑, 펄, 펄. 백두대간 태산을 덮을 듯 나리는 눈을 보다가 또 보다가 엄마는 잠에서 깼다고 했다. 그 다음엔 꿈이 아닌 진짜 겨울이 찾아왔고 그 다음해 봄에는 그렇게 내가 찾아왔다. 열달 동안 당신이 품은 건 꿈이었을까, 눈이였을까, 나였을까. 그렇게 내 이름은 은설이 됐다.

AD
백석도, 나타샤도, 흰 당나귀도 이름이 있다.대학교 1학년, 무작정 내게 맞는 전공을 찾으려 개론 수업이란 수업은 다 들어가던 그 때. 사회학 개론을 가르치던 중년 교수의 이름은 '샛별'. 그 세대 맞지 않게 튀었던 그 이름은 지금의 그녀를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했다. 여성의 이름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관습을 따르지 않고자했던 부모님의 결연한 의지, 샛별. 징표같은 그 단어대로 살았더니 이렇게 샛별같은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참도 반가워했다.

그 시간 이후 모두에게 주어진 이름값에 대해 늘상 고민한다. 새로운 이름들을 볼 때면 더 그렇다. 12월 3일 계엄 당일, 위헌적 포고령이 온 나라를 어둠처럼 덮은 날. 그 이래로 시민들이 마주한 정말 많은 이름들. 참으로 다양한 이름이다. 익숙한 국가 원수의 이름이기도, 도무지 어떤 조직인지조차 모르던 군부의 누군가이기도, 양심을 따른 영웅으로 칭송받는 이름이기도, 국민들 앞에 낙인 찍힌 채 줄줄이 포승줄처럼 나열되던 이름이기도 했다.

은빛 눈, 은설, 나의 이름값은 무어지

통제 속 국회담 넘는 우원식 국회의장 3일 오후 11시경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경찰이 통제 중인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담을 넘어 본청으로 향하고 있다.
통제 속 국회담 넘는 우원식 국회의장3일 오후 11시경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경찰이 통제 중인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담을 넘어 본청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12월 3일 그날 나는 국회의사당 본청의 불을 모두 밝혔다. 국회하면 모두가 단박에 떠올리는 그 건물은 1975년도의 낡은 서양식 건물. 그 곳엔 불을 한 번에 켤 수 있는 전기 시스템이 없노라고 설비과장은 추후에 설명했더랬다. 그래서 나는 수백개의 방의 불을 키려 수백번의 노크를 해야 했다.

다시 계엄 당일로 돌아가, 나는 그날 7층부터 지하 1층까지 세워진 건물을 샅샅이 뛰어다녔다. 오로지 불을 키기 위해서. "다같이 불을 켜야 한다고, 안에 계시냐고, 국회의장실에서 나왔다고, 아무도 없다면 문을 열고 불을 켜겠다고" 고함을 치며 달렸다. 바깥을 향해 난 창이 있는 방이면 방마다 문을 두드리고 열어댔다.

7층에서 6층, 6층에서 5층, 5층에서 4층. 빙빙 도는 계단을 뛰어, 동쪽에서 서쪽, 모서리를 꺾어 또 북쪽에서 남쪽 사방으로 뛰어. 미음(ㅁ)자 건물의 사면을 뛰어. 심장보다도 빨간 볼이 터지게 뛰어.

구식 건물의 스위치는 참 조그맣더라. 새끼손가락 끝면만한 흰색 버튼을 벽속으로 깊이 눌러야 했다. 나중에 다 뛰고 보니 다 깨져있었던 엄지와 검지 손톱들. 그렇게 건물 일곱개 층 네면의 창문에 최대한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불을 켠 이유는 간단했다. 야간 투시경을 끼고 쳐들어오고 있는 계엄군보다 우리 직원들의 시야가 어두우면 안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국회의장님이 계시는 곳만 환히 밝히는 것 역시 안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빛으로 눈을 부릅뜨되, 의장님을 찾아 나선 계엄군의 눈은 빛으로 가려야했다.

이제 나는 아침마다 약을 먹는다. 숨길 건 아니지만 사무실에선 티 안 나게 약봉지를 뜯는다. 같은 밤을 견딘 동료들에게 나까지 걱정되는 존재이고 싶지 않기에. 무슨 약을 먹냘 때는 가끔 곤혹스럽긴 해도 이 작은 알약은 많은 위안이 된다. 딱 한 알이면 그날 이후 일상 속의 불안감을, 주말 중의 무기력함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다. 비단 나뿐일까. 우리 대한민국은, 우리 국민은, 지금 어떤 시간을 지나고 있는 걸까. 인내와 고통, 감내와 기다림 등으로는 오롯이 설명되기 어려운 시간들. 연약하다 못해 깨어질 듯한 믿음의 상태. 언어화할 수 없는 시간은 불안을 준다. 명백한 '계엄성 블루'다.

그런데 엊그제 집집마다 켜놓을 만한 티비 채널에 나온 무려 앵커 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본인의 이름값을 내팽개쳐버렸다. 당신은 국회의장이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만을 위해 계엄 해제를 미뤘다고 했다. 아마 당신은 이재명의 사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이라며, 거대 야당이 이미 나라를 망쳤던 거라 비판하고 싶었을게다. 그러나 당신은 틀렸다.

그날의 밤을 틀리게 기억하지 마라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국회 담장에 올라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국회 담장에 올라가 있다. ⓒ 권우성

나는 아프지만 지금 여기 내 이름값을 위해 살아있다. 살아있는 나는 모든 장면을 기억한다. 본청 방문을 열 때마다 창문을 깨고 들어온 계엄군을 맞닥뜨리진 않을지 아득했던 내 모습을, 밝게 켜진 본청 어딘가로 몸을 피한 국회의장을, 한손으로라도 담을 넘어 민주주의를 지키러 오던 이재명 대표를, 체면 따위 담 밑에 훌훌 벗어던진 국회의원들을. 그러므로 '신동욱' 당신은 틀렸다. 당신은 당신의 이름값을 저버린 거다.

국회의장과 국회 직원들이 환한 빛 속으로 숨을 수 있도록 내가 불을 켰고, 국회의장이 걸어 나와 계엄령 해제를 가결시켰고, 의원들은 탄핵안을 가결하러 돌아오라며 동료의 이름들을 한 글자씩 삼키지 못하고 뱉었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익명의 시민들. 그들은 국회의 불이 미처 다 켜지기도 전에 시민의 이름값대로 순식간에 국회 앞을 메꾸었다.우리는 그렇게 계엄의 밤을 보냈다.

그러니 감히 틀리지 마라. 그날의 밤을 틀리게 기억하지 마라. '우리'가 겪은 밤은 서로 다를지라도 틀린 적이 없는데, 왜 그네들은 자꾸만 그 밤을 틀리게 기억하는가. 외면하지도 왜곡하지도 다른 의도를 만들어내지도 부정하지도, 기어코 모든 것을 없던 일로 하려는 틀린 선택을 하지 말라. 우리는 아프지만 각자의 이름으로 지금 여기 살아있기에. 당신들의 이름 역시 여전히 기록되고 있기에.

3월 31일, 겨울은 갔는데. 상식은 동결된 얼음 덩어리같다. 상식 밖의 얼음을 각자의 이념대로 깎으려는 이들. 하다못해 조각상을 세우려는 이들로 가득한 각자의 얼음축제장. 얼음 왕국도, 각자의 얼음 축제도 단호히 거부한다. 나는 눈이지만 이불 같이 포근한 '은빛눈'이고, 세상을 덮으려던 어둠에 맞서 세상을 밝힌 '은빛'이다. 세상을 밝힌 눈은 얼기를 고집하지 않고 녹는다. 녹디 녹아 새봄 광장 터의 새벽 이슬로 기꺼이 태어난다. 광장의 일부에 내가 쓰일 수 있도록 열심히 갈고 닦을 의무가 내겐 남았다. 엄마 당신이 1995년 겨울 품었던 꿈처럼, 눈처럼, 나처럼.그게 내 이름값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이름대로 눈 덮인 국회 본청의 푸른 뚜껑을 퍽도 좋아했다.백석이라는 이름의 시인은 산골로 떠났지만, 세상 같은 게 더러워 버렸다지만. 세상에 눈이 푹푹 나리는 날에는 산골에도 눈이 내린다는 걸 그는 몰랐을까. 어디든 눈이 내린 평등한 광장의 은설은, 나타샤들은, 흰 당나귀들은 현실을 초월한 이상적 내일을 위해 오늘도 광장의 밤을 함께 할 거다. 국무총리와 8명의 헌법재판관들과 그 밖의 나랏님들도 부디 모두 제 이름값을 해내기를, 지금의 정치가 가져야 하는 이름이 정(正)치이기를. 대한민국이 제 이름값을 할 수 있기를. 그렇게 12월 3일과 3월 31일을 이어본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번외) 그럼에도 우리가 광장에 '저네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가 묻노라면, 그럴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우리를 저마다의 이름으로 부를 때, 광장은 더욱 커진다.민주주의의 핵심은 공존에 있다. 본문에 부러 '우리'와 '그네들'을 구분지은 것 역시 공존에 대한 희망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이었다. 그네들이 틀리지 않고 결국엔 우리와 공존할 수 있다는 공동체의 희망을 믿는 이의 발로와 같은 호칭이었음을. 그 참회와 같은 고백을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광장에 함께 서길 바란다.

이 글을 정리하며 '극우에 대한 단호한 대처' 레토릭을 따르지 않고자 하는 앞으로의 노력이 꽤 쉽지 않을 일임을 직감한다.그러나 죽을 때까지 나의 이름은 은설, 너는 나타샤, 너는 흰 당나귀. 우리는 제 이름값을 하며 살 것이다. 그래야 한다.

P.S. 내가 국회의 불을 미처 다 켜지도 못했을 때부터 익명의 시민들은 제 이름값을 하러 국회로 물결처럼 모여들었다. 마침내 국회가 환하게 빛을 냈을 때. 우리의 투쟁의 신호탄이 쏘아올려진 것은 아마 그때였을 거다.
▣ 제보를 받습니다
오마이뉴스가 12.3 윤석열 내란사태와 관련한 제보를 받습니다. 내란 계획과 실행을 목격한 분들의 증언을 기다립니다.(https://omn.kr/jebo)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되며, 제보 내용은 내란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만 사용됩니다.

#윤석열내란#국회의사당#본청#비상계엄#국회
댓글1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9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원은설 (news) 내방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13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