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혁신파크는 시민들의 소중한 추억이 깃들어있는 공간입니다. 시민들은 이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지금도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서울혁신파크부지를 기업에 매각하는 절차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2월 20일 기업매각 공고 이후, 오는 4월 21일 기업과의 계약을 체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시민의 땅 시유지, 시민의 추억이 깃든 공간, 시민들이 누려왔던 공간을 기업에 팔아넘기며 어떻게 민주주의와 공공성을 훼손하는지 몇 편에 걸쳐 전합니다.

▲생츄어리 거주동물 잔디잔디가 여러 도움으로 마련된 생츄어리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 새벽이생추어리
2020년, 새벽이생추어리라는 생소한 이름을 가진 공간이 탄생합니다. 한국 최초로 축산농가에서 공개 구조된 아기 돼지 '새벽'이 살아갈 공간을 조성하려는 시민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말입니다. 돼지가 인간을 위해 이용되거나 죽임당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 현실에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이 맺을 수 있는 대안적 관계를 상상하는 국내 첫 동물 생추어리(Sanctuary: 안식처, 안전한 장소를 뜻하는 영어 단어)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듬해에는 실험동물로 쓸모가 없어져 죽임당할 뻔한 위기에 있던 돼지 '잔디'도 생추어리에 입주하여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2022년, 동물착취산업의 피해 생존 동물들을 매일 돌봄 하며 굴러가던 생추어리는 땅주인의 사정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을 마주합니다. 머지않아 활동가들은 연대자들의 도움을 받아 여러 지역을 후보에 두고 땅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갈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금전적인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세상의 시선에선 돼지를 돌보고 그들이 살아갈 공간을 찾는 활동가들이 돈 안 되는 이상한 일을 하는 사람들로 보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모든 땅이 촘촘히 나뉘어져 서류상 주인이 있고, 평생 손에 쥘 수 없는 가격이 매겨져 거래된다는 사실이 더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절망 사이에서도 무상으로 땅을 내어주려는 제안이나 살고 있는 지역에 생추어리가 올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주신 감사한 시도들이 있어 우여곡절 끝에 땅을 찾고 거주 동물의 집과 돌봄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지어졌습니다.
드디어 2023년 말, 돌보는 거주 동물들과 함께 저도 새로운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 직전까지 저는 서울혁신파크가 위치한 동네에 살았습니다. 당시 살던 동네의 상황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매일 지나가던 골목에 어느 날부터 건설사의 현수막이 걸렸고, 어떤 집주인은 재개발로 인한 이주 보상금을 받고자 가짜로 전입신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집이란 유일한 '안식처'였지만, 같은 공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투자의 대상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서울혁신파크 개발 논의를 들은 것은 한창 단체의 이사를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생추어리가 이사를 한 이후에도, 카페 쓸이 마지막까지 남아 강제 퇴거 명령에 저항하는 활동들을 해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그러한 투쟁에도 결국 운영을 종료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서울혁신파크를 통해 만난 사람들

▲2023년 비건페스티벌 새벽이생츄어리 부스거주동물 '새벽'과 '잔디'가 좋아하는 비트와 쑥으로 만든 음료를 선보였다. 인간동물과 비인간 동물이 먹는 것은 다르지 않다. ⓒ 새벽이생추어리
새벽이생추어리는 22년도와 23년도 서울혁신파크에서 개최된 '비건 페스티벌'에 부스로 참여한 인연이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거주 동물 돌봄에 집중하며 돌봄 활동가를 양성하는 활동을 주로 해왔다면, 더 많은 시민에게 단체와 동물권을 알리고자 외부 행사에 참여한 것은 이전에는 자주 하지 않던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열리고 연결되고자 하는 시도였습니다.
비건 페스티벌에서 처음 새벽이생추어리를 알게 되고 관심이 이어지다 이후 운영 활동가로 함께 하게 된 동료도 있습니다. 생추어리 이사를 준비하며 부지 조성 공사를 맡아주신 목수님 또한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퍼머컬처 관련 행사에서 인연이 닿았습니다. 서울혁신파크를 통해 단체가 나아가는 데 중요한 관계들을 만나왔습니다.
은평구에서 살아가던 한 명의 주민으로서, 제가 은평구에 애정을 가졌던 것은 전환마을부엌 밥풀꽃, 살림의료협동조합 그리고 서울혁신파크 등 지역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시민들의 자발적 활동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장과 부동산 개발이란 자본의 논리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작동하는 도시 안에서 대안적인 가치를 꿈꾸며 실현해 나가는 시도들이 은평구에는 있어 왔습니다. 그렇기에 그곳에선 조금은 다정하게 들리는 '마을'이란 단어가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대안적인 시도와 실험들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서울혁신파크와 같이 사람들이 모이고 연결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도시 한가운데 숨통을 틔우는 공원이자 다양성이 존재하는 공공의 공간이 있기를 바란 마음은 지역을 낙후시키고 사욕을 챙기는 일로 폄하되었습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식물생태학자가 쓴 책 <향모를 땋으며>에서 저자는 "선물의 본질은 관계들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선물 경제의 바탕에 놓인 화폐는 호혜성이다. 서구적 사유에서는 사유지를 '권리'로 이해하지만 선물 경제에서는 재산에 '책임'이 결부된다"고 말합니다. 서울시는 서울혁신파크 부지 사용 방향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들이 가진 권리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시민들이 만들어 온 공유지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와 그 안의 관계들을 살피는 책임은 다하지 않습니다. 일자리 창출과 지역 간 불균형 해소를 말하지만, 서울혁신파크 개발로 정말 큰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요?
연결된 사람들이 만들어온 터전

▲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 출범 기자회견서울혁신파크의 주인은 바로 공간과 관계성을 만들어 온 사람들이다. ⓒ 혁신파크를지키는시민모임
생추어리 이사 준비를 시작할 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돼지 둘과 함께 살아갈 땅과 힘이 되어 줄 이웃들을 찾는다는 것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이사를 와 입주 1주년을 넘기기까지 여러 사람의 노력과 내어주는 마음, 환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곳에서 저와 동료들은 함께 살아가는 둘레 이웃들과 애정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웃들에게 지역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데 도움을 받을 뿐 아니라 거주 동물을 위한 채소와 곡물, 지푸라기 등을 나눔 받으며 안부를 전하기도 합니다. 지역살이 경험이 없는 활동가들만 덩그러니 이사를 와 살아가야 했다면 적응하는 것이 더욱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사를 오기 전 생추어리는 다수의 '보듬이'('새벽이생추어리의 거주동물들을 보듬는 이'라는 의미로 돌봄으로 연대하는 돌봄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매일 돌봄이 멈추지 않고 이뤄졌습니다. 그렇게 연결된 사람들의 활동이 새벽이생추어리를 새벽이생추어리답게 만들어 온 것처럼, 이사를 온 이곳에서도 우리를 진정 살리는 것은 관계임을 일상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서울혁신파크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요? 그곳을 그 공간답게 만들어 온 것은 서류상 소유자가 아니라 그 공간의 나날을 만들어 오던 시민단체와 주민들입니다. 공간의 나날들을 만들어오던 입주 단체를 내쫓고, 이용하던 시민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기업에 매각하는 것은 공간의 관계성을 무시하고 죽은 공간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서울혁신파크를 기업에 매각하기 위해 교통의 접근성, 지리적 이점들을 나열하고 용도를 변경해 값을 낮추는 등 경제성으로 평가하는 말들이 아닌, 이미 그 공간과 땅에 직접 연결되어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풍요로운 이야기가 더 들리고 이어지길 바랍니다. 서울혁신파크는 그 공간을 지켜온 시민들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구황은 새벽이생추어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