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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18 10:12최종 업데이트 25.04.18 10:12

주민 300명이 인간띠 만들어 책 9100권 옮긴 이야기

지역공동체가 살아있음을 입증한 미국 미시간주 첼시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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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 300여 명이 세렌디피티 북스의 책들을 인간띠를 통해 모습.
주민들 300여 명이 세렌디피티 북스의 책들을 인간띠를 통해 모습. ⓒ 세렌디피티 북스 틱톡 캡처

미국 미시간주의 첼시(Chelsea)는 우리나라의 읍이나 면 정도 되는 작은 도시라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동네 서점으로 인해 갑자기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게 되었다.

디트로이트에서 95km 정도 떨어진 첼시의 전체 주민은 5300여 명이다. 전형적인 지방 소도시로 주민들은 서로 대충 얼굴을 알고 지낸다. 첼시 주민들이 지역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일이 지난 13일에 일어났다.

첼시에는 세렌디피티 북스(Serendipity Books)라는 동네 서점이 있다. 책을 좋아하는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인데 미셸 토플린(Michelle Toplin)이 2017년에 인수해서 계속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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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새로 둥지를 틀기로 했다. 문제는 9100여 권의 소장 도서를 어떻게 옮기느냐였다. 이삿짐센터를 부르면 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고작 한 블록 거리인데 사람을 쓰기도 애매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미셸 토플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아이디어가 있었다. 인간 띠를 만들어 책을 한 권씩 옮겨보면 어떨까?

바로 서점 홈페이지와 SNS에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는 공지를 올렸다. 자원봉사자를 위해 '책 부대'(Book Brigade)라는 재미있는 이름까지 지었다.

 미시간주의 작은 도시 첼시의 동네 서점 세렌디피티 북스가 책 운반을 위한 자원봉사자 모집을 위해 서점 SNS에 올린 공지다. 서점이 이전하는 날에 300명의 주민이 모였을 정도로 큰 호응을 받았다.
미시간주의 작은 도시 첼시의 동네 서점 세렌디피티 북스가 책 운반을 위한 자원봉사자 모집을 위해 서점 SNS에 올린 공지다. 서점이 이전하는 날에 300명의 주민이 모였을 정도로 큰 호응을 받았다. ⓒ 세렌디피티 북스

지역공동체가 보여준 놀라운 힘

일요일 오후 1시까지 모여달라고 했는데 주말을 희생하며 도와줄 주민이 몇 명이나 될지는 이삿날까지 물음표였다.

놀랍게도 이삿날에 자원봉사하러 온 주민은 300명에 달했다. 손에서 손으로 책을 전달하는 모습을 지나가다가 본 주민들도 합류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사람들을 더 불러 모았다.

자원봉사자 중에는 6살 여자아이와 91살 할머니도 있었고, 휠체어를 탄 사람도 있었다. 주민들은 남녀노소 없이 서점을 돕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새로 이전할 곳까지 두 줄로 길게 인간 띠를 만들어 한 권씩 책을 옮겼다.

CBS Detroit

책을 전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 책은 안 읽어봤어요." "이 책 정말 좋아" 같은 대화가 책을 나르는 동안 계속 이어졌다.

파트 타임 직원 3명만 고용하고 있기에 직접 이사를 했다면 족히 2~3일이 걸렸을 텐데 주민들의 도움으로 9000권이 넘는 책을 2시간 만에 다 옮겼다.

서점 주인을 기쁘게 한 것은 책을 금방 나른 것만이 아니었다. 책을 옮기면서 다들 책 이야기를 하고, 책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같은 관심사를 가진 주민들이 서로 통성명하면서 밝게 웃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서점은 이전을 마쳤고, 자원봉사자들은 다 같이 손뼉을 치며 일을 마무리했다.

이 소식은 미국 주요 언론 매체뿐만 아니라 영어권의 다른 주요 매체들의 주목을 받았다. 서점의 페이스북의 해당 게시물은 2700여 회나 공유되었고 6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미국인들도 지역 공동체가 조금씩 소멸하는 것을 아쉬워한다. 명맥을 제대로 잇지 못하던 지역 공동체가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는 사례를 발견하고 다들 감동하는 모양새다.

종이책, 동네서점, 주민들의 품앗이, 지역 공동체. 우리 주변에서도 점차 사라져가는 것들이다. 사라짐은 어쩔 수 없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켜나갈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동네서점#독립서점#지역공동체#미국미시간주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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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amdg77) 내방

미국에서 종교사회학과 국제정치학을, 인도네시아에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 한국 관련 콘텐츠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관심사는 동남아입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여론형성을 하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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