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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공기를 가르며 수영장으로 향하던 어느 날, 나는 봄의 냄새를 맡았다. 벚꽃은 지고, 이제 막 초록의 향연이 시작되는 순간. 그날의 공기는 조금 특별했다. 꽃이 다 진 자리, 연둣빛이 물들기 시작한 나무들 사이로 나는 성남 희망대초등학교로 향했다. '인구희망교육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2시간 일찍 나선 건, 눈여겨본 성남교육청 도서관에 잠시 들르기 위해서였다. 희망대초는 성남 구도심에 자리한 오래된 학교로 언덕 위에 있어 올라가는 길부터 봄기운이 가득했다.

▲성남 희망대초등학교 신록이 어우러진 봄 전경푸릇한 신록이 어우러진 학교의 모습이 싱그럽다. 꼭 이 모습이 이날 만난 3학년 아이들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 구혜은
교문을 지나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알았다.
'아, 이 아이들이 바로 그 봄날의 신록이구나.'
3학년 교실은 유난히 생기가 넘쳤다. 이제 막 2학년을 벗어난 아이들은 유치함과 초등학생의 발랄함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밝은 눈망울, 선생님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번쩍 드는 그 모습은 막 돋아난 새싹을 닮아 있었다.
이번 수업은 내가 주강이 아닌, 협력 강사로 들어간 날이었다. 다른 강사의 수업을 함께하며 아이들과 더 가까이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보드게임 형식으로 진행된 인구희망교육 수업에서 아이들은 주어진 사회 문제에 맞춰 정책 카드를 선택하고, 그에 따라 출산율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뜨겁게 반응했다.
"우리 조 출산율 올라갔어!!"
"아... 우리 카드는 효과 없었나 봐..."
환호성과 탄식이 뒤섞인 교실 속에서 아이들의 작은 사회 속 진지한 고민과 협력을 느낄 수 있었다.
수업에 함께 참여할수록 느끼는 건, 똑같은 내용의 수업이라도 매번 새롭다는 점이다. 아이들과 마주하는 교실은 예측할 수 없는 생동감으로 가득하고, 그만큼 강사에게도 준비된 '틀'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 그래서 나는 수업을 나가기 전, 아이들의 수준과 환경, 지역적 특성을 꼼꼼히 살핀다.
강의자료는 같아도, 수업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강사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업 속에 자신만의 관찰과 고민의 흔적을 담아내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틈틈이 수업과 관련된 도서, 다큐멘터리, 기사 등을 찾아보며 수업의 맥락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고민한다. 나는 늘 이렇게 다짐한다.
'좋은 강의는 결국, 강사의 삶에서 출발한다.'

▲수업시간 진지한 아이들3학년 교실은 역동적이다. 하지만 몰입 할때 만큼은 고학년 못지 않게 진지하다. ⓒ 구혜은
그날 수업 중 작은 일이 하나 있었다.
한 아이가 "나는 중요한 역할이 없어요"라며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다행히 담임 선생님의 따뜻한 중재와 조원들의 배려로 작은 회의가 열렸고, 역할을 다시 조율해 아이를 끌어안아줬다. 교사는 가르치지만, 아이들은 함께 자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또 한 번 배웠다. 울고 있던 아이에게 마이쭈 두 개를 살짝 건넸다.
"기분 좀 풀어볼까?"
조심스럽게 웃던 그 아이는 결국 마지못해 서랍 속에 사탕을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조는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더 많이 웃고, 더 자주 의견을 나누고, 친구들의 역할을 살펴주며 협심했다. 그렇게 봄날의 신록처럼, 그 아이들의 마음도 조금 더 푸르게 물들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이 하나둘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다음 주에도 또 와요?"
"4학년, 5학년 때도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며 나는 대답했다.
"그럼, 우리 또 만나자. 그땐 너희들의 더 커진 생각을 듣고 싶어."
교실 문을 닫고 나오는 길, 언덕을 내려오며 하늘을 봤다. 푸르러지기 시작한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부서졌다. 그날 만난 아이들의 미소가 떠올랐다. 봄날의 신록처럼, 그 아이들은 그 자체로 성장 중인 생명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려 갔지만, 돌아오는 길엔 오히려 그 아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받아 돌아왔다.

▲신록과 아이들은 닮았다연두빛 신록에서 오늘 수업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 ⓒ 구혜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날이면, 저는 누구보다 행복합니다. 이날 수업에서 만난 아이들은 4월의 연둣빛처럼 풋풋하고 생기 넘쳤습니다. 봄날의 신록이 나를 반기듯,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도 제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