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상무대 옛터인 5.18자유공원에서 '이팝나무 아래 흘러가는 시간'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 김동규
13일 5.18민주화운동 사적지 제17호인 '상무대 옛터'에서 5.18민주기사동지회 장훈명 회장의 '이팝나무 아래 흘러가는 시간' 특별전시 개막식이 열렸다.
5.18 당시 택시기사였던 장씨는 1980년 5월 20일 계엄군의 폭력에 분노한 광주의 택시기사들과 버스기사들이 진행한 '차량시위'에 참여했다. 이날 오후 5시 30분경 무등경기장에 집결한 광주의 운전기사들은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금남로까지 차량시위를 벌였다. 5월 20일은 현재 '민주기사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그러나 이날 장씨의 택시가 금남로에 도착하자 계엄군이 차량 유리창을 깨고 장씨를 끌어내 구타했다. 온몸이 피로 물들 때까지 폭행을 당한 후 계엄군에 끌려간 장씨는 경찰의 도움을 받고서야 간신히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후 5.18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분주히 활동한 장씨는 3년 전부터 5.18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데 소질이 있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그만둔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늦었지만 그의 재능은 지난 3년 내내 여러 전국대회에서 입상하는 등 빠르게 빛을 봤다. 장씨는 2023년 제9회 전국섬진강미술대전 서양화 부문 입선, 2024년 제43회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부문 입선, 2025년 제41회 무등미술대전 서양화 부문 입선 등을 했고 5.18기념재단과 함께 이번 전시를 진행하게 됐다.
'이팝나무 아래 흘러가는 시간'은 5.18기념재단이 주최·주관하고 광주의 시각예술 창작그룹 1995Hz(헤르츠)가 기획·운영한다. 장훈명 작가가 그린 유화 20여 점이 5.18자유공원 영창, 내무반, 식당 등에 전시되고 여기에 문학 작가 박진영씨가 글을 붙였다. 작품을 그리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인터뷰 영상과 5.18 관련 조형물도 함께 전시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1995Hz는 "이전 세대의 기록으로서의 그림과 현재 세대의 언어로 풀어낸 글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1980년 5월을 오늘의 감각으로 재조명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1995Hz는 지난 2021년 결성된 예술 공동체로 마음 맞는 동료들끼리 헤르츠 산하에 팀을 꾸려 일을 위해 뭉쳤다가 헤어지는 자유로운 연대를 지향한다.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었지만... 오월을 알리기 위해 작업"
이날 열린 개막식에는 5.18유족회 양재혁 회장, 5.18부상자회 조규연 회장, 5.18공로자회 윤남식 회장, 5.18기념재단 박강배 상임이사, 5.18민주기사동지회 장훈명 회장, 시각예술 창작그룹 1995Hz 김소진 대표, 문학 작가 박진영씨 등이 자리했다. 행사 진행은 광주의 문화기획자 김꽃비씨가 맡았다.
이날 행사에서 장훈명 작가는 "오월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직후에는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었지만 박진영 작가의 글이 마음에 닿아서 1980년에 죽었어야 했다는 생각을 놓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원활히 작업했다"며 "5.18 이후 그 역사에만 빠져 산 세월이 40년이 넘는데 뒤늦게 어릴 적 좋아했던 붓을 다시 잡았다. 이후 잊혀가는 역사를 그림으로 남겨보고자 한 게 이렇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5.18에 대해 잘 모르는 세대가 있고 당사자들은 오월에 대한 폄훼, 가짜뉴스에 대한 트라우마가 굉장히 깊다"며 "그 마음을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 오월을 겪지 않은 세대도 오월을 쉽게 이야기하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작업했다"고 말했다.

▲'이팝나무 아래 흘러가는 시간' 전시에 담긴 장훈명 작가의 작품. ⓒ 김동규

▲장훈명 작가의 작품에 문학 작가 박진영씨가 글을 붙였다. ⓒ 김동규
장훈명 작가의 작품을 보고 글을 쓴 문학 작가 박진영씨는 "전라도 토박이로 살았지만 작가님의 그림을 보고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며 "그동안 늘 5.18 이야기를 쓰는 일은 피했던 것 같다. 쓰게 되면 틀릴 수도 있을 거라는 조심스러운 마음 때문에, 오월은 쓸 수 없었던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잔인하게 느껴지던 그림은 보면 볼수록 처절했고, 그래서 작가님이 그 안에 남긴 것들을 최대한 잘 글로 표현해 보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이어 "이야기를 하는 일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이야기에 대해 얼마나 많이 생각했느냐인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문장을 쓴들 결국 중요한 건 충분한 숙고하는 일"이라며 "저에게도 5.18을 겪지 못한 세대로서의 이야기가 있지만 직접 겪고 아파 보신 분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도 저희가 대화를 나눴을 때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도망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오월을 걸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고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냥 '재현'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시간 되살리려는 시도"
이번 전시를 기획·운영하는 1995Hz 김소진 대표는 "이 전시는 작가 장훈명의 내면에 스며든 광주의 오월과 그가 예술을 통해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며 "과거의 아픔을 반복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은 개인의 트라우마를 치유함과 동시에 역사적 고통을 성찰하고 공동체의 기억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경험세대 문학 작가 박진영이 장훈명 작가의 그림을 바탕으로 그 시절 광주에 있었다면 느꼈을 감정을 상상하며 쓴 글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시간을 문학적 사유로 되살리려는 시도"라고 했다.
5.18자유공원 특별전시 '이팝나무 아래 흘러가는 시간'은 오는 7월 8일까지 5.18자유공원 영창, 내무반, 식당 등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팝나무는 5.18의 상징 중 하나로 쌀밥처럼 피어난 꽃이 해방광주의 시민들이 함께 나눈 주먹밥을 닮아 5.18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장훈명 작가의 작품들. ⓒ 김동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