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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은 제21대 대통령선거를 맞아 건강한 선거보도를 촉구하는 정책위원 릴레이 특별칼럼을 진행합니다. 이번 대선은 헌정 사상 초유의 계엄 사태와 대통령 파면이라는 비상 상황 속에서 치러지는 조기선거로, 무너진 헌법 질서를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부산민언련은 올바른 여론 형성과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에 기여하기 위해 4월 30일부터 6월 2일까지 매주 수요일, 특별칼럼을 발행합니다.
부경대학교 후문으로 나오면 빨간 벽돌 외벽에 초록 간판이 걸린 복국집이 하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위해 찾는 평범한 식당이자, 또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는 관권선거와 지역주의가 결합했던 상징적인 장소로 기억되는 곳이다. 이곳은 바로 30여 년 전,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초원복국 사건'의 현장이다.

정확히는 1992년 12월 11일, 제14대 대선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은 부산시장, 부산지검장, 부산경찰청장, 안기부 부산지부장, 부산 교육감,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등 지역의 수장들을 초원복국 식당으로 불러 모았다. 그 자리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오고 갔다.

"부산·경남이 똘똘 뭉치는 것밖에 없다."
"이번 대선에서 경남, 부산이 발전할 기회를 못 잡으면 영영 파이다."
"표가 적게 나오면 우리는 멸시 받는다. 바보라고."
"지역감정이 유치한지 몰라도 고향의 발전에 긍정적..."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해."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1992년 12월 16일 한겨레신문 1면
1992년 12월 16일 한겨레신문 1면 ⓒ 한겨레신문

 1992년 12월 18일 조선일보 사설
1992년 12월 18일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직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고 타 후보를 배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지역감정 조장을 공모했다. 이 사실은 통일국민당 측의 도청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김영삼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 분명했던 '초원복국' 사건은, 오히려 지역주의 정서가 지역민의 공감대를 얻으면서 이들이 집결하는 분기점이 됐다. 여기에 조선일보의 프레임까지 먹혀들며 사건의 핵심은 '불법 도청'으로 전환됐다. 그 결과, 복국집 회동을 주도한 김기춘은 '대통령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무죄를 선고받았고, 오히려 통일국민당 관계자와 도청에 연루된 인사들만 '주거침입죄'로 벌금형을 받았다.

지역주의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와 함께 힘을 얻었고,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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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대통령의 계엄 시도, 그로 인한 탄핵. 그 결과 치러지는 조기 대선 국면에서 내란 정권의 총리가 유력 주자로 부상하는가 하면, 결국에는 내란수괴를 옹호했던 인물이 대선 후보가 됐다. 그럼에도 지역언론의 질문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 부산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후보들은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산업은행 부산 이전, 가덕도 신공항 활주로 2본 등으로 화답한다. 지역 언론은 누가 먼저 약속했는지, 누가 더 강하게 말했는지를 비교한다.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면 '부산 무시 논란'이라며 지역감정에 불을 지핀다.

수도권 일극 체제 속에서 지역균형발전은 두말할 나위 없는 시대적 과제다. 문제는 그 당위성이 선거철마다 지역 개발 공약으로만 호출된다는 점이다. 이번엔 부산이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적어도 인천보다는 잘 살아야 한다는 담론이 지면에 넘쳐난다.

이런 지역 분위기 속에서 내란 동조 세력으로 비판받아 마땅한 인물들이 대선 최전선에 버젓이 서 있다. 박성훈 의원(북구을)과 정동만 의원(기장군)은 윤석열 탄핵안 1차 표결에 불참했고,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대통령 관저 앞을 지킨 인물들이다. 이들은 각각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 부산선대위 수석대변인과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또 '12·3 비상계엄'에 대한 입장을 요구한 시민을 고발한 박수영 의원(남구)은 기획전략본부장을 맡았다. 내란을 비호하고 책임을 외면했던 이들이 다음 세상을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지역 언론은 이 상황을 문제 삼지 않는다. 내란 정국의 책임자들이 대선 전면에 나선 지금, 여전히 "누가 우리 지역에 무엇을 더 줄 것인가"라는 물음이 반복된다. 30년 전 관권선거를 덮고 지역 유권자를 결집했던 '우리가 남이가' 정서는, 이제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 지면을 배회한다.

앞서 말했듯, 지역주의 자체를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내란 정국을 옹호했던 이들이 아무런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다시 부산의 미래를 말하게 하는 현실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들에게 "부산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묻는 순간, 지역주의는 또다시 정당성 없는 권력을 감싸는 도구가 된다. 책임은 묻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지역 발전만 이루면 된다는 익숙한 관행은 이번에는 끊어져야 한다.

2025년 5월 14일 <부산일보> 4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5월 13일 부산 문현 금융단지를 방문해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약속했다. 김문수 후보 좌측 박수영(남구을), 정동만(기장군), 박성훈(북구을) 의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025년 5월 14일 <부산일보> 4면.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5월 13일 부산 문현 금융단지를 방문해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약속했다. 김문수 후보 좌측 박수영(남구을), 정동만(기장군), 박성훈(북구을) 의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부산일보

1992년 12월 우리는 잘못된 지역주의를 바로잡지 못했다. 그리고 2025년 5월, 다시 지역주의가 내란 책임을 가리는 정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지역민의 감정을 자극해 편을 가르고, 책임 대신 약속만 요구하는 지역주의는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 지역 발전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칙과 정치적 책임 위에 놓이지 않는다면, 119대 29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마무리된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처럼, 지역민의 기대만 키운 채 허망하게 끝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칠흑 같은 내란의 어둠을 걷어낸 빛의 혁명에 이제 지역언론이 답할 차례다. 지역주의는 더 이상 '무엇을 받을 것인가'를 묻는 도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원칙 위에서 지역 공동체 모두가 잘 살기 위한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물음이 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가 그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부산 지역 언론이 그 흐름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부산민언련 정책위원이자 부경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부산민언련#대선보도#지역주의#지역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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