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노동절은 매년 돌아온다. 하지만 노동의 의미, 노동자의 개념은 계속해서 달라진다. 기술 발전이든, 노동형태의 변화나 제도적 이유 때문이든 '노동자'가 무엇인지는 구성되는 것이지 고정된 의미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의 조건이, 노동환경의 안전과 노동자의 건강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묻는다면 매년 반복되는 산재 사고와 통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같은 문제들, 최소한 유사한 일들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은 변화하지만 노동자의 조건은 변화하지 않는, 그래서 어쩌면 상대적으로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반복을 영화 <미키17>이 보여주는 시간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발전하는 노동?
노동이 (혹은 높은 노동강도와 산재와 죽음이) 반복되는 사이, 사회가 선형적으로 발전하며, 그렇게 진보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 생각들 역시 기술 발전을 토대로 유지되고 강화된다. 이러한 생각은 대중적으로도 통용되는데, 생성형 인공지능의 새로운 버전, 또 다른 모델이 나올 때마다 인공지능을 접목한 새로운 기술들이 곧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공포심들이 넘쳐난다. 한편 기술을 통해 세상이 더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 그래서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믿음은 확고해져 간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앞으로 만들 미래가 노동집약적 모델보다는 인지 중심의 노동으로 노동의 위계를 더욱 재편할 것이라고 쉽게 예측한다. 하지만 <고스트워크>(그레이/수리, 2019)가 생성형 인공지능(AI )뒤에서 수많은 이미지들을 분류하고 등급을 매기는 '고스트워커'들의 노동을 조명했듯, <AI 지도책>(2022)의 저자 케이트 크로퍼드가 분석하듯, AI는 개척시대의 금광산업, 20세기 테일러리즘과 무척 닮아 있다.
건강권의 문제는 또 어떠한가? 기술 집약적 노동의 결과처럼 보이는 자동화된 물류시스템에서 노동자들의 효율성을 측정하는 장치들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인간을 돕는 것이 아니라 한계를 넘어 육체노동을 하게 만들고, 결국 죽도록 만든다. 알고리즘이 노동자를 죽이는 데 사용되는 것이다. 결국 기술 발전의 뒤에는 여러 형태의 (반복되는) 노동들이 존재했으며 알고리즘은 채찍이나 테일러리즘의 '자율적 버전'의 도구 같은 것에 불과하다. 결국 노동에 대한 관점이 변하지 않는다면 형태가 변화할 뿐 근본적인 문제는 반복된다.
사정이 이렇다면 기술 발전이 그리는 시대는 정말 발전한 사회인가? 사회가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이 '발전'의 의미는 무엇인가? <미키17>은 '발전한 미래'의 한 가지 버전을 그려내며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는 전세계적 극우 정치의 문제를 보여준다.
부패한 극우 정치인 '마셜'은 새로운 우주 정착지를 건설하기 위해 사람들을 이주시킨다. 실제 미국의 보수 유명 인사들을 연상시키는 이 캐릭터는 줄곧 발전, 미래 등을 외친다. 이 믿음은 우리 사회, 그리고 역사의 시간이 선형적이며 발전적으로 진보해왔다고 주장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인간은 식민지 시기를 지나왔으며, 그와 매우 유사한 형태로 우주 식민지, 정착지를 건설하기 위해 떠난다. 마셜이 추구하는 행성 정복은 자연스레 식민지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이 도착한 행성의 원주민 생물들은 정찰을 나왔다 위기에 빠진 인간을 돕고 돌려보내지만, 인간은 그 행성을 그야말로 정복하기 위해 절멸 작전을 진행한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와 <기생충>이 계급의 분리를 공간적으로 드러냈다면, <미키17>은 이를 시간적 분리를 통해 보여준다. 인류의 발전과 확장이라는 선형적인 시간의 정점처럼 보이는 우주 식민지 개척에서, 그러한 시간성에 유일하게 포함되지 못하는 존재는 바로 '미키'다. 혹은, 이 시간의 선형적 발전을 지탱하는 것이, 바로 반복되는 죽음 속 미키의 시간이다.

▲영화 <미키17>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발사되는 우주선과 리프린팅되는 미키의 몸
우주 탐사가 자유로워진 근미래 사회, 미키 역시 전통적 노동자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산재노동자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끝없이 죽음에서 돌아와 다시 반복되는 죽음을 맞이한다. 외려 이곳에서 '노동자'는 우주 탐사에 참여한 비행사들이나 연구원들에 가까워 보인다.
미키가 우주선에 탑승한 배경은 친구와 사업을 하다 망하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급하게 지구를 떠날 방법을 찾다 발견한 미봉책이 바로 극우 정치인 마셜이 준비하는 신행성 개척 프로젝트의 '익스펜더블'이 되는 일이었다.
익스펜더블은 사람인 피험자의 기억과 몸을 모두 컴퓨터에 업로드한 뒤, 피험자의 생명이 다할 때마다 새로운 몸을 리프린팅해 우주 행성 탐사와 실험에 사용하는 실험체를 의미한다. 제대로 계약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익스펜더블이 된 미키의 몸은 우주선이 정착지로 뻗어나가는 동안 16번이나 리프린팅된다.
프린트된 미키들은 연속적인 기억과 경험에 대한 자아 인식을 가지지만, 그의 몸은 계속해서 달라진다. 리프린팅될 때마다 그의 성격이나 감정, 곧 캐릭터 또한 계속해서 달라지는 것을 통해 '몸'이 경험과 감정을 반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단지 물리적인 육체로서 기능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경험을 가진 몸은 다른 자아로 구성되는 것이다. 미지의 생물들이 기거하는 얼음계곡에서 살아 돌아온 '미키17'이 온순하지만 피로에 젖어있다면, '미키18'은 거칠고 반항적이다. 실수로 동시에 생존하게 된 미키17과 미키18은 행성을 정복하고 미지의 생물을 절멸시키자는 마셜의 스피치에 분노한다.
반면 비행선의 대중 대부분이 그가 주장하는 '발전의 서사'와 인간중심주의에 흥분하며 유사한 정동이 비행선에 가득 찬다. 여기에 포함되지 못하는 이들, 오히려 이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이들은 미키17, 18 그리고 그들의 흑인 여자친구 '나샤'다. 이들은 우주 생물 크리퍼의 절멸 작전을 방해하고 마셜을 역공한다.
반격에 성공한 미키는 마셜의 당초 기획을 무너뜨리고, 더 이상 익스펜더블이 아닌 17번째 미키인 자신 그대로 산다. 마셜이 주장한 발전론의 선형성도, 반복되는 산재와 죽음도 끝났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맞붙는 두 가지 주장들이 펼쳐지는 우주공간과 아예 이 모든 주장의 리셋처럼 보이는 외부 행성이라는 공간은 지구의 미래를 상상해 보는 일에 도움이 될까? 우리 모두가 행성 이주를 할 수도 없고, 역사를 바꿀 수도 없지만, 우리는 역사가 반복되는 지점을 발견하고 비판함으로써 미래가 흘러가는 방향에 저항하고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 5월호에도 실립니다. 이 글을 쓴 김지안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