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곡리 작은 교회는 곽은득 목사님이 은퇴하신 후 원필선 목사님이 남편 이동희 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그 뜻을 이어가고 있다. 부설로 매곡리 자연학교로 운영하고 있다.
2007년 쯤 대구생태유아교육협회장이었던 수성대학교 김정화 교수님의 소개로, 인문학 공부를 위해 몇몇 선생님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그곳에는 곽은득 목사님이 계셨고, 우리는 주말마다 농사를 짓고 목공과 도예를 하며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도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삶의 방식이 매곡리에는 있었다.
매곡리 교육 공동체
아이들에게 이 생명력 넘치는 공간을 나누고 싶었던 나는 목사님께 부탁드려 텃밭을 분양받았다. 매주 한 번씩 차를 타고 아이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산책을 하며 계절의 변화를 체험했다. 처음엔 우리 어린이집만의 특별한 놀이터였지만, 지금은 뜻이 맞는 여러 어린이집이 함께 이 공간을 공유하며 생태유아교육의 거점이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겠다는 의지를 가진 원들과 매곡리 자연학교가 뜻을 모아 매곡리 자연학교교육공동체를 만들었다.
교육공동체의 모든 아이들은 매곡리에서 사계절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냉이와 달래, 쑥을 캐고, 고랑을 만들어 씨를 뿌리며 논에 모를 심는다. 아카시꽃을 튀겨 먹고, 앵두를 따며, 감자를 구워 먹고, 개구리와 메뚜기를 잡으며 논과 물가를 뛰논다. 자두와 오디가 익으면 따먹고, 벼를 베고 탈곡하는 가을을 맞는다. 겨울이 되면 썰매를 타고 빈 논에서 연을 날린다. 그렇게 숨 쉬는 생명과 평화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쌀 계약 재배
이 고마운 공간에 보답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 '쌀 계약 재배'였다.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농사의 일부가 되기로 하였다.
군위 매곡리 지역의 농사 짓는 어르신들과 매곡리 교육공동체 소속 유아교육기관들이 뜻을 모아, 어르신들은 본인의 손자들을 생각하며 쌀을 잘 키워 주시고 기관들은 매달 일정한 양의 쌀을 가져다 먹기로 했다. 10년째 해오고 있는 일이다. 농가에는 안정적인 판매처가 생기고, 원들은 비록 저렴하지는 않지만 믿고 먹을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쌀을 사고 파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땅에서 난 쌀을 함께 먹는 일은,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사는 땅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모를 심어 자라는 모습을 보고 누렇게 익은 벼를 베고 탈곡을 함께 하는 경험 속에서 아이들은 '먹는 일'이 '사는 일'과 맞닿아 있다는 걸 배운다. 이 것은 생태교육이며, 아이들에게 지역과 자연을 잇는 삶의 감각을 키워주는 소중한 교육의 장이다.
매년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함께 만나 쌀값을 정하고 양을 정한다. 먼저 원장들과 농부어르신들, 목사님이 모여 쌀값 조율을 한다. 더 받아야 한다는 어르신들과 운영비가 부족하다는 엄살로 쌀값을 깎아보려는 원장들의 줄다리기가 한참 진행된다. 아직 수매가가 정해지기 전이고 일 년을 계약하면 중간쯤 가격 변동이 있을 수 있어 어느 해는 어르신들이 득을 보고 어느 해는 원이 득을 보기도 한다. 중요한 협상이기에 서로 주장을 펼치다 '잠깐만요'를 외치고 둘러앉아 작전을 짜기도 하고 나름 꽤 성실하게 임한다.
문제는 뒤에 참관인들의 참견인데 운영비에 연연하는 원장들과 달리 조금은 느긋한 입장인 이사장들(원장의 남편)이 '원장들이 너무 야박한 거 아니냐 적당히 하세요' 등의 야유를 보내는 것이다. 그래도 어르신들이 아이들이 먹는 것을 아시기에 양보를 잘 해 주신다. 우리가 먹는 쌀은 클릭 한 번으로 배달 오는 포장 된 쌀과 다르다. 달마다 정미소에 가서 새로 빻아 놓은 쌀을 직접 실어와야 한다. 생명과 돌봄, 보살핌이 포함된 것이다. 쌀값이 결정되면 정식으로 협약서를 쓰고 목사님, 농부 어르신, 원장, 운영위원장의 날인으로 마무리한다.
협약식을 마치면 각 기관의 원장, 부모, 아이들, 동네 어르신들이 모두 모여 소고기국에 밥을 말아 먹고 공연도 하고 체험도 하며 하루를 보낸다. 동네 잔치다.

▲쌀 계약 재배 협약식사전 회의 중 ⓒ 움사랑생태어린이집
쌀농사 계약재배 협약서 |
매곡리 농장 쌀농사 농가와 어린이집이 2025년산 쌀 계약재배를 체결하여 아래 사항을 성실히 지킬 것을 약속합니다.
1. 우리 지역에 알맞은 품종으로 재배한다.
2. 농사는 병해충방제나 제농제 등 투입 횟수를 최소화하여 안전성에 최우선을 둔다.
3. 안전한 쌀 생산을 위해 기타 유해물질 등 오염 우려가 없는 지역에서 재배한다.
4. 도정은 월 1회, 도정된 쌀 보관은 작은교회 혹은 농가에서 한다.
5. 쌀이 불량하거나 변경되지 않도록 보관에도 최선을 다한다.
6. 쌀값은 80kg당(한 가마) 000 원과 정부 수매값에 0.05%를 추가해서 해당하는 금액으로 한다.
7. 계약금은 약정기간 동안 서로 의논을 하며 지급하기로 한다.
8. 재배 기간 동안 '생태교육'(모심기체험, 벼베기 체험, 메뚜기잡기...)에 협조한다.
9. 약정기간은 약정일로부터 2025 년 11월까지(2024 년산 도정 완료 때까지) 한다.
10. 약정서에 규정이 없거나 해석상 이의가 있을 때는 언제든 서로 의논하여 결정한다.
11. 약정서는 약정내용을 성실히 지키기 위해 2통을 작성하여 서로 서명한 후 각각 1통씩 보관한다.
2024 년 11월 03일
농장 대표, (대구 군위군 )
유아교육기관 문 수 아 ( 움사랑생태어린이집 대표)
최 00 (움사랑생태어린이집 운영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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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11월 3일 쌀 협약식을 마치고
쌀 계약재배 협약식을 모인 사람들의 도움으로 잘 마쳤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걱정이 많았는데 딱 좋은 가을 날씨였습니다. 소고기국도 맛있었고 군고구마도 어찌나 잘 익었던지 잘 먹고 잘 놀았습니다.
쌀값은 동결을 부르짖는 원장들의 주장을 어르신들이 넉넉한 인심으로 받아주셨습니다. 다행히 원장들 야박하다 훈수 두던 이사장들이 고구마 굽고 설거지하느라 바쁜 바람에 참견 못 했습니다. 협약서 잘 쓰고 자연학교 직인 찍고 어르신들, 운영위원장, 원장 다 멋지게 휘갈겨 사인했습니다.
며칠 전, 지인이 연락이 와서 좋은 쌀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업체를 소개 해 주었습니다. 20kg에 4만5000원인데 맛도 좋더랍니다. 아낄 건 아껴야 한다고 알려주더군요.
요즈음 쌀들이 다 좋지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냥 밥을 먹는 게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밥을 먹으며 매곡리의 자연을 함께 먹습니다. 논과 밭의 지렁이 메뚜기 배추벌레 우렁이들을 함께 먹고, 햇볕과 바람과 비를 함께 먹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스마트폰, TV가 없고 빠르게 달리는 차도 없는 매곡리의 평화 속에서 자라는 겁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기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참여해 주신 부모님, 고맙습니다
북적거리며 잔칫집인 듯 흥겨웠습니다. 내년에도 잘 준비해 보겠습니다. 더 많은 부모님이 참여해 주세요.
깊어가는 11월의 가을 속에서 열심히 놀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협약식 마치고 뿌듯한 원장이 드립니다."

▲매곡리 자연학교씨영금 아이들이 그린 매곡리 ⓒ 움사랑생태어린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