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4기입니다. 꾸역꾸역은 '어떤 마음이 자꾸 생기거나 치미는 모양'을 뜻합니다. 책을 읽고 치미는 마음을 글로 잘 담겠습니다.
중학교 재직 당시 진로탐색 활동의 일환으로 '나'에 대해 알아가는 수업을 했다.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갈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성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이나 중년 이후의 사람들과의 관계에 이어 노년의 삶의 모습까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글로 적으며 마무리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유언장 쓰는 활동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할 수 있다면 과거를 성찰하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고 성장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죽음 이후를 얘기하는 것은 무척 조심스럽다. 우울증을 겪거나 주변의 영향에 쉽게 흔들리는 학생들에게 죽음이라는 주제는 자칫 위험한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가정한 아이들의 유언장은 다양했지만, 그중에도 가족과 사랑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것 같다. 그 순수함이 아이답고, 부모의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것 같아 불안을 잠재우고 수업의 의미 또한 찾을 수 있기도 했다.
30대 작가 구민정과 오효정이 20대와 30대 삶의 과정을 기록한 <명랑한 유언>은 사실 투병과 상실, 아픔에 관한 이야기다. 책의 모든 부분은 사실상 유언과 다름없는데 무겁지 않다. 책은 두 여성의 10년간 유명 피디로서의 경험을 얘기한다. 절실한 마음으로 시작해 거침없이 이뤄낸 시간들이 꾸밈 없이 펼쳐진다.

▲'명랑한 유언' 구민정,오효정 (지은이) ⓒ 스위밍꿀
유명 방송 프로그램의 연출 피디인 구민정과 오효정은 만남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를 공유하며 '영혼의 단짝'이 된다. 피디는 체력이 전부라고 말하는데, 그런 직장 생활에서 어느 날 오효정은 위암 4기 판정을 받는다. 두 저자는 남은 시간을 한 공간에서 생활하며 각자의 시선으로 생을 바라보며 그들의 세상을 정리한다. 한 마디로 이 책은 20대와 30대 초반을 치열하게 살아온 두 젊은 여성의 애씀의 리포트다.
그러나 상실과 아픔의 이야기로만 정리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이 '기대 수명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3명 중 한 명이 암에 걸릴 만큼 발병률이 증가(p.105)'했다는 국가암정보센터의 통계처럼, 암으로 인한 사망은 우리 주변에 넘친다. 그러니 눈물 한 줌 더하는 이야기는 작가들도 원치 않을 것 않다.
책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떻게 사회에 진출하고, 어떤 모습으로 사회에서 인정을 받게 되는지, 소중한 것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또 삶을 어떻게 갈무리되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특별하지 않은 삶이지만 젊은 사고가 생물처럼 팔딱거린다.
사실 효정이 맡은 동해 촬영의 난이도가 가장 높았는데, YB밴드가 바다 한가운데서 노래를 시작하는가 하면, 보컬 윤도현이 점차 물이 차오르는 대형 수조 안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구현해야 했다. 수조의 유리가 수압을 버틸 수 있는지 안정성을 검증해야 함은 물론, 사람이 들어갈 만한 대형 수조를 제작하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효정은 영민하게 움직였다. 먼저 카메라계의 전설과도 같은 촬영 감독님께 빵을 사들고 찾아갔다. 효정 같은 어린 축에 속하는 피디는 쉽사리 다가가기 어려운 분이시다. 그러나 효정인 달랐다. 감독님을 곧바로 찾아가 촬영에 관한 조언을 구하고 촬영감독님으로 섭외했다. 그 감독님은 효정의 당돌함과 열정에 응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살라 촬영에 임해 주셨다. 효정인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p.69-71)
피디로 10년의 경험을 쌓으니 '어딘가에서 '도'를 발견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그런 것은 없다. 사실 그러한 경지는 성공이 쌓이고 연륜이 쌓여도 쉽지 않다. 우리는 늘 '나만의 색깔'을 찾지 못할까 봐, 만든 작품이 노잼에 감동도 없을까 봐(p.50)' 언제나 초초하고 불안해 할 뿐이다. 삶은 불안의 토양 위에 희망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므로.
남의 것을 표현해 주고 남의 것을 이용해 성취감을 느끼는 삶은 있었으나 '내가 만든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초조했다. 내가 만든 우주를 만나려면 나에게 무언가 창작할 시간을 줘야 했다. 난 무엇을 꿈꾸며 달리고 있는가, 과연 난 지금 행복한가.(p.78)
오효정 작가가 동생에게 남기는 유언은 시선을 오래 붙잡는다. 자신이 떠난 후 부고장 전달에 대한 내용에는, 꼭 와주었으면 한다고 부탁할 사람, 반드시 연락해야 할 사람, 그밖에 건너 건너 소식을 전하게 될 사람 등으로 나누는데, 가족들이 슬픔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한다.
영정사진 얘기도 나온다. 오효정 작가는 SNS 사진 중에서 하나를 골라 써주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평소의 모습,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지인들을 맞이하고 싶다고. 얼마 전 읽은 책 <노인의 꿈>에도 영정사진에 대한 특별한 사연이 나온다. 사진관에서 빌려 입은 한복을 입고 테두리만 번듯한 사각 틀에 늙고 굳은 표정이 싫어서 부드러운 모습의 영정사진을 직접 그리는 할머니의 이야기. 아무래도 영정사진은 나도 생각해 볼 문제 같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면, 너무나 이른 나이에 한 명은 떠났고 한 명은 남는다. 상실을 경험한 모두에게 위로를 나누고 싶은 순간, 마침 이정현이 쓴 <삶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를 펼치니 뻔하지 않은 위로를 준다.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방향을 잃은 사람들에게 솔직한 문장과 우울을 포장하지 않는 방식이다. 마치 곁에서 그저 함께 있어 주는 것처럼.
사람들은 대부분 평균 수명까지 건강하게 살 거라고 전제하며 삶을 계획한다. 그러나 죽음은 '가을의 배고픈 곰처럼'(메리 올리버 시 <생이 끝났을 때> 중에서) 찾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한다. 안타깝게도 생의 마지막인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인식하게 될 때가 되어서야 삶을 가치 있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뒤늦게 자각하기도 한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국엔 모든 것이 죽지 않는가. 그것도 너무 빨리.
내게 말해보라, 당신의 계획이 무엇인지.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이 이생의 소중한 삶을 걸고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지. - 메리 올리버, '여름날'에서 (이정현, <삶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재인용 p.191)
"삶다운 삶을 살아야, 죽음다운 죽음을 맞을 수 있다"(람 다스 Ram Dass)는 말이나, '마지막을 떠올리면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되짚어 보게 된다'(<삶이..> p.198)는 말의 방점은 '삶'에 있다.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다는 윤동주 시인의 시구도 다르지 않다. <명랑한 유언>의 오효정 작가는 동생에게, '현재', '젊은 그들'에게 마음을 담아 당부한다.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명심해. 너의 삶은 너의 것일 뿐이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