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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놀이터

누리반(만 3, 4, 5세) 통합 나들이를 20여 분을 달려 시설이 잘 되어 있다는 구청에서 만든 공원으로 갔다. 우리 아이들이 반 별로 흩어지자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할 정도로 넓은 곳이다. 놀이터도 있고 숲도 있고 그늘도 있다. 그 중 아이들의 가장 흥미를 끈 곳은 밧줄 놀이터였다. 건물 2, 3층 높이로 밧줄로 다리를 만들어 발 빠질 틈도 없이 안전하게 잘 만들어 놓았다. 옆에는 아이들이 사용하라고 헬멧까지 준비되어 있다. 씨영금(만 5세)들이 몰려 들어 얼른 올라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런데 시설담당자가 안타까워하며 키가 작아 못 올라간다고 한다. 120cm이상만 사용 가능하다는 규칙이 있다. 씨영금 아이들의 키는 대부분 120cm를 넘지 못한다. '우리는 잘 놀 수 있어요. 위험하지 않게 놀게요' 사정을 해 보지만 규칙은 규칙. 결국 밧줄놀이터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림의 떡이 되었다. 유아용 작은 놀이터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이미 흥미를 잃었다. 시시하기 그지 없는, 밟으면 땅에 내려 붙는 밧줄 그물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위험도 모험도 없는 재미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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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놀이터는 발전하고 있다. 특히 지자체들이 나서면서 곳곳에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시설들이 많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행정은 우리를 위한 것이지만, 참 고루한 것도 사실이다. 다치면 안 되는 건 당연하고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로 넘어가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 된다. 그러니 이건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 난감한 일이 발생한다. 모두의 입장이 이해는 가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 해 몇 분의 원장님들과 편해문 선생님*을 따라 일본의 놀이터를 찾아 갔다. 그곳은 특별한 놀이 시설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도심 귀퉁이 넓은 땅에 아이들이 직접 톱질이나 망치질을 해서 놀이터를 만들고 고무 풀장에 물을 부어 수영장을 만들고 어떤 곳은 불을 피워 모이기도 했다. 관리하는 성인이 있었지만 그들은 제지하거나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놀고 위험한 일은 지켜보고 있다가 필요할 때 도와 주고 있었다. 어린 유아들은 부모가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그곳을 관리하는 분에게 질문을 했다. "아이들이 다치는 경우는 부모들이 어떻게 반응하나요?" 처음에는 뜻을 이해하지 못 한 것 같았다. 다칠 수 있지만, 그 책임을 부모가 그들에게 따져 묻거나 하는 일은 잘 없는 모양이었다.

모험이나 위험이 없는 안전하기만 한 놀이는 아이를 설레게 하지 않는다. 늘 모험이 필요하고 늘 뛰어 놀 수는 없다. 아이들도 쉼이 필요하고 혼자 뒹굴기도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시간은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놀고 난 다음이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공간이 얼마나 되는가. 또 그 공간이 아이의 안전도 지켜야 하지만 모험과 위험 사이, 아이의 욕구를 얼마나 충족시켜 주는가'에 대해 묻고 싶다.

우와 놀이터

우리 어린이집도 놀이터에 고민이 많았다. 어린이집 안에는 마당의 흙놀이터와 옥상놀이터 두 곳이 있다. 마당의 흙놀이터는 처음에는 일반적인 놀이터였다. 바닥에는 안전한 탄성바닥재가 깔려 있고 플라스틱 조합 놀이기구가 있었다. 나도 흙이 있고 나무로 만들어진 진짜 자연놀이터가 몹시 부러웠지만, 사립기관의 원장이라 비용도 문제인데다 멀쩡한 놀이터를 뽑아 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플라스틱 놀이터 예전 놀이터
플라스틱 놀이터예전 놀이터 ⓒ 움사랑생태어린이집

편해문 선생을 통해 놀이터를 다시 보게 되며, 처음에는 아쉬운대로 흙을 몇 트럭 부어 흙산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파고 또 파고 물을 부어가며 온 힘을 다하여 놀았다. 그리고는 원목으로 놀이터를 만드는 권민영 선생님을 알게 되어 제작을 의뢰했다. 돈으로 사 와서 바닥에 꽂으면 되는 놀이터와 달라서 몇 달을 원에서 먹고 자다시피 하며 제작을 하여 완성은 하였는데 검사에 또 한 달이 걸렸다. 아이들은 못 먹는 감을 찔러 보듯 지나가며 한 번 만져보고 아쉬워하고 씨영금 아이들은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졸업을 했다. 드디어 개장을 앞두고 이름을 공모하였는데, 완성된 놀이터로 나오던 터일굼들이 '우와' 했다고 우와 놀이터가 되었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놀이기구를 기어오르고 뛰어다닌다. 원래 설계에는 오르지 않게 되어 있는 둥근 미끄럼틀 위쪽이나 2층으로 된 그물로 싸인 놀이기구 바깥쪽에 자주 올라가는데 말리지는 않지만, 규칙이 있다. 스스로 안전히 내려올 수 있을 때 올라가야 한다. 숲에서 바위를 올라가고 뛰어내리는 때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몸을 자주 많이 쓰는 아이들은 본인의 신체 능력을 잘 안다.

집에서 사용하던 살림살이를 한 쪽에 모아 놓았는데 그 앞에서는 역할놀이를 한다. 흙구덩이를 만들어 물을 가득 부어 물길을 만드는 놀이도 좋아하는데 삽을 들고 와서 파는 선생님의 힘을 본 이후로는 자꾸 삽을 들고 오라고 재촉하고 수돗가에 가서 물을 떠 오라고 양동이를 내민다. 그나마 꽃피움이나 씨영금은 스스로 하기도 하지만 역시 선생님이 되려면 힘이 세야 한다.

도심 한가운데 흙놀이터는 동네 고양이들이 화장실이 되기도 한다. 우리 놀이터는 새벽에 따로 청소하시는 분이 계시고 전문 소독업체에 맡겨 수시로 소독하고 있다. 요즈음은 대부분의 놀이터가 위생과 안전을 이유로 탄성매트를 깔고 있다. 하지만 탄성매트를 밟고 뛰어 논 아이와 흙을 밟고 뛰어 논 아이의 감각은 다르다.

우와놀이터 마당 놀이터
우와놀이터마당 놀이터 ⓒ 움사랑생태어린이집

옥상 놀이터에는 아무것도 없다. 백 평 정도 되는 공간에 인조잔디만 깔려 있고 체육 교구가 있어 필요할 때마다 꺼내 놀 수 있고, 밸런스 바이크가 몇 대 있어 타고 논다. 여름에는 그늘막 아래에서 논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더 재미있다. 우와 놀이터 살림살이들을 들고 올라가서 그늘막 사이로 떨어지는 비를 받으면 소리가 다 다르다. 인조잔디가 빗물을 머금은 상태에서 우비를 입고 첨벙거리면 이제까지 했던 놀이는 다 시시해진다. 이런 날 알림장에는 하원할 때 신을 신발을 준비하라는 내용이 뜨는데, 신발을 들고 오는 부모의 표정에는 '오늘은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으려나' 하는 기대가 실려 있다.

우리 어린이집이 이런 놀이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부모들의 열린 생각 덕분이다. 숲에서 놀다 넘어져 무릎을 긁히는 정도, 놀이터에서 놀다 부딪친 정도는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들은 애초에 그렇게 키우려고 우리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냈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란다

제대로 된 놀이는 신체를 단련시키고 감각을 일깨우고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아이들의 진짜 밥이다. 그러나 현실은 안전해야 된다는 것 때문에 테두리를 만들어 그 안에서만 놀라고 한다. 모험도 재미도 없는 밋밋한 맛의 놀이를 강요하고 있다. 아이들은 인형이 되어 가고 있다.

아이들은 넘어질 수 있고 다칠 수 있고 그러면서 성장한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넘어졌을 때 스스로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고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 할 수 있도록 지켜보아야 한다. 보호는 통제가 아니라 신뢰에서 시작된다.

우와 놀이터는 그렇게 만들어 졌다. 흙을 붓고, 땀을 흘려 만들고, 몇 달을 기다려 아이들에게 건넨 공간 하나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자라게 하고 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에는 우리 원의 교사들과 부모들의 용기가 있었다.

아이들은 오늘도 놀고 싶어 한다. 그 놀이는 곧 삶이고, 교육이며, 성장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아이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함께 뛰어 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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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해문은 놀이운동가이자 놀이터 디자이너로, '위험해야 안전하다'는 철학 아래 아이들의 자유롭고 주체적인 놀이 공간을 만들어왔다. 저서로는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 <위험이 아이를 키운다>가 있다.

#움사랑생태어린이집#대구생태어린이집#모험놀이터#자연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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