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 선포라는 충격적 사태와 이어진 조기 대선을 겪은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법과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음을 절감했다. 희망제작소는 "민주주의는 완성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시민들의 일상 속 민주주의 감각을 확인하고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희망제작소는 지난 18일 12.3 계엄령 사태를 겪고 난 후 시민의 일상 속 민주주의를 알아보기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 5월 23일부터 6월 8일까지 진행됐으며 설문 응답에는 397명이 참여했다.
한국 민주주의, '이해와 존중', '법과 규칙의 준수' 후퇴했다

▲계엄 이후 현재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전반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희망제작소
희망제작소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전반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응답자들은 평균 2.7점(5점 만점) 수준으로 답해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절반 가까이 나타났다.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와 '작동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5%로, '작동한다'라는 응답(30%)보다 높았다.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의 특성입니다. 12.3 계엄 전과 비교했을 때, 현재 우리 사회는 다음 특성에서 어떤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희망제작소
희망제작소는 민주주의 구성요소로 ▲이해와 존중 ▲법과 규칙 준수 ▲협력과 연대 ▲표현의 자유 ▲비판적 사고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현재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특성이 어떤 변화가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이해와 존중'(66%)과 '법과 규칙 준수'(60%)의 후퇴를 가장 크게 체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협력과 연대', '표현의 자유', '비판적 사고'는 일부에서 발전했다는 응답도 있었지만, 후퇴 응답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희망제작소는 "이해와 존중'이 후퇴했다는 의견이 높았던 배경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며 타인을 '이해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과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반(反)민주주의의 마음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했다.
나와 다른 의견... 타인과의 대화는 소극적

▲시사 이슈에 대해 나의 의견과 다른 주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 희망제작소
시민들이 다양한 의견을 얼마나 수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나의 의견과 다른 주장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또는 '알고 있다'가 82%를 차지했고, 나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매우 들어보고 싶다' 또는 '들어보고 싶다'가 49%로 나타났다.

▲시사 이슈에 대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습니까 ⓒ 희망제작소
주목할 부분은 '다른 의견에 대한 태도'다. 앞서 전체 응답자의 82%가 시사 이슈에 대한 '다른 주장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했지만, 실제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과 대화해보고 싶다'는 응답은 49%에 그쳤다. 그들과 어떤 관계까지 용인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26%)가 가장 높았고, 가족이나 친한 친구는 각각 11%에 불과했다.

▲시사 이슈에 대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과 어떤 관계까지 용인할 수 있습니까 ⓒ 희망제작소
희망제작소는 "나와 다른 이들을 인식하고 있지만, 이들과 소통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설문으로 표출된 게 아닌지 유추한다"라며 "민주주의의 내면적 위기인 동시에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로만 유지되는 게 아니라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대화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 위에 있음을 드러낸다"라고 분석했다.
정치 피로감 속 갈등은 '피한다'가 다수
시사 이슈를 두고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질문에는 '피한다'는 응답이 직장 관계(55%)나 온라인 공간에서 높게 나타났다. 반면,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관계에서는 '해결한다'는 응답이 높아, 친밀도에 따라 민주주의적 대화 가능성도 달라짐을 보여줬다.
희망제작소는 ▲가족/친척 ▲친구 ▲직장동료 ▲지인이나 모임 구성원 ▲온라인공간에서 만나는 사람(SNS) ▲온라인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단체 채팅방)▲온라인공간에서 만나는 사람(커뮤니티, 카페) 등으로 관계 유형을 제시했다.

▲다음 사람들과 시사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이 있는 경우 어떻게 표현하십니까 ⓒ 희망제작소

▲다음 사람들과 시사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이 있는 경우 어떻게 표현하십니까 ⓒ 희망제작소
그 결과 '가족/친척', '친구'를 제외하고 '표현하지 않는다'라는 응답이 높았다. '표현한다'라는 긍정적 답변은 '가족/친척' 62%, '친구' 68%로 나타났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에서도 50% 내외로 '표현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이 높게 나왔다.

▲다음 사람들과 시사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이 있는 경우 어떻게 표현하십니까 ⓒ 희망제작소

▲다음 사람들과 시사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이 있는 경우 어떻게 표현하십니까 ⓒ 희망제작소
시사 이슈에 대해 갈등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해결한다'라는 긍정적 답변이 '가족/친척' 62%, '친구' 68%로 높게 나타났다. 대체로 가깝고 친밀한 관계일수록 갈등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짙고, 공적 관계 혹은 익명성 있는 공간에서는 이견에 대한 갈등을 피하려는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이 말하는 민주주의 지키는 방법은?
주관식 질문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묻자, 응답자들은 '투표'를 가장 많이 언급했다. 이어 '의사 표현', '집회 및 서명 참여', '후원 및 기부', '민주주의 학습', '다른 사람과의 소통', '입법청원 참여' 등 다양한 방식이 제시됐다.
희망제작소는 "응답자들은 민주주의 가치를 알고 실천하고자 하지만, 정치적 피로감과 관계 속 갈등 회피 경향이 그 실천을 가로막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면 일상에서의 소통 방식과 신뢰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해당 설문조사 결과 전문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www.makehope.org)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