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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지방법원
제주지방법원 ⓒ 제주다크투어

푸른 물이 똑똑 떨어질 것처럼 녹음이 짙어가는 풍광을 보며 농민들은 고된 농사일 중에도 긴 심 호흡을 하고 허리 쉼도 하고 마음에 위로도 받는다. 제주에도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검은 현무암 돌담 아래 옹기종기 자리 잡은 들판과 밭에는 진초록으로 갖가지 농작물들이 한껏 싱그럽게 자라고 있겠지.

사위를 둘러보며 이토록 찬란한 계절에 몇 뼘 안 되는 감옥에 갇혀있는 후배 진희를 생각하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치받쳐 올라오는 설움인지, 분노인지 모를 아픔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이게 된다. 바윗덩어리 같은 무거움이다.

이런 상식 이하의 판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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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지귀연, 오창훈 제주지법 형사1부 부장판사의 이해할 수 없는 판결로 인해 피눈물, 애간장이 녹아나는 사람들이 있다. 오 판사는 항소심 재판부 첫 공판에서 곧바로 선고하는 즉일 선고를 이례적으로 강행했다. 게다가 동석한 판사들과 합의는커녕 의견도 나누지 않고 독단적으로 판결했다. 법질서 위반이며 상식을 깔아뭉갠 판결이다.

2025년 3월 27일. 윤석열 파면과 내란 심판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연일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윤석열 구속 취소라는 법원 초유의 판단에 분노가 들끓던 시기에 제주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윤석열이 권좌에 오르고 역행하는 정권에 대한 저항을 제압하기 위해서였는지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은 물론 구속하는 일이 벌어졌다. 압수수색과 구속이 한 사람에 그치지 않았던 시기였다. 공안탄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평생을 제주에서 함께 농사 짓고 일상을 같이해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부당한 구속에 항의하는 기자회견도 하고 집회와 탄원 서명 등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2023년 3월 4일 제주교도소 앞에서 구속 수감된 이들이 인치(사람을 강제로 끌어냄)당한 일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참여자들을 떨어뜨려 놓는 과정에서 경찰들과 몸싸움이 있었고 경찰이 공무집행 방해와 폭력을 이유로 2명의 여성을 고발했다. 1심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80시간의 봉사활동 판결을 받았고 과한 판결이라고 생각했지만 피해 입은 경찰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항소하지 않았다.

그런데 검사가 항소해 사건으로부터 2년이 지난 내란 정국에서 2심 재판을 하게 된 것인데 판결은 더 가혹하고 상식 이하였다. 당일 재판을 방청했던 가족들과 지인들은 판사의 행동을 납득할 수도 없고 저의가 의심된다고 했다. 최후 변론을 마치자 판사가 갑자기 방청석과 재판부 사이에 경찰을 배치하라 명령하더니 "이 시간 부로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 눈동자로만 보라, 어떤 소리나 행동을 할 경우 즉시 구속하겠다, 한숨도 쉬지 말라, 항의도 하지 말라"라고 발언한 후 1년 8개월이라는 실형과 함께 법정 구속을 판결한 것이다. 방청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인격 모독이었고 그야말로 박정희·전두환과 같은 독재정권 시절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함께 재판을 받은 여성은 무릎 수술 후 깁스도 풀지 않은 상태였다.

농민을 어찌 이리 무자비하게 가둬놓는 것인가

1심 판결도 과했지만 사회봉사 명령에 임하고 집행유예 기간 성실하게 지내면 되겠거니 했기에 현진희는 농번기에 호박을 심다 아무 준비도 없이 재판정에 갔다가 법정 구속을 당하고 3개월여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다. 평생 호박농사에 콜라비 농사며 당근 농사며 국민의 먹을거리 농사 지으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왔던 현진희. 농민들의 삶이 나아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성농민회를 만들어 정책도 만들고 직거래장터도 열고 여성농민들이 맘껏 어울려 한바탕 어우러지는 여성농민한마당도 펼쳐 내며 한 몸에 열 지게를 지고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해 왔던 귀하디 귀한 여성농민 현진희.

온 국민이 다 아는 내란죄를 저지른 윤석열은 구속이 취소되어 버젓이 나돌아 다니고, 총기를 휴대한 채 공무집행 방해를 했던 윤석열 경호실장의 구속 영장은 무산시키면서 여성 농민을 어찌 이리 무자비하게 구속해 가둬놓는 것인지 제주의 지귀연이라 아니할 수 없다.

평소에 강단있고 건강했던 현진희는 갑자기 혈압이 높아지고 두통이 심해져 혈압약을 먹어도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청년이 떠나는 농촌에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한 딸이 사위와 함께 농촌으로 돌아와 농사를 시작한 터라 농사일에 해박한 엄마의 도움이 절실하다. 보름쯤 전에는 귀한 손녀가 태어났는데 산후조리는 물론 아기의 얼굴도 보지 못하는 이 비현실적인 현실을 감당하라니 너무 가혹하다. 어찌 해볼 수 없는 답답함에 얼마나 억울하고 속이 터질지.

30여 년 전 30대의 청춘 시절에 농사를 짓는 여성농민으로 만나 하냥 성실하고 책임 있고 무엇을 맡겨도 믿음직했던 현진희가 있어 농촌에서의 삶이 절망적일 때 견뎌낼 힘이 되었다. 이제 그녀가 하루라도 빨리 감옥 문을 나서 그토록 간절하게 보고 싶을 손녀도 안아보고 가족들과 얼싸안을 수 있는 날을 만들어주고픈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그녀들을 철조망 넘어 세상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을까? 답답하고 답답한 6월이다.

한편 MBC 5월 21일 <"재판절차 어겼다" 시민단체가 판사 고발> 기사에 따르면 이번 판결에 대해 제주지방법원은 개별 재판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여성농민#불법재판#공안탄압저지#현진희#현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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