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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북클럽 4기입니다. 꾸역꾸역은 '어떤 마음이 자꾸 생기거나 치미는 모양'을 뜻합니다. 책을 읽고 치미는 마음을 글로 잘 담겠습니다.
글쓰기는 사랑하게 해준다. 모르는 것을 이해해보려 애쓰며 그것에 다가가려 힘껏 나를 쓰는 과정이 글쓰기다. 그건 사랑할 때의 모습과 닮았다. 그러니 불행조차도 열심히 쓰다 보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불행할 때 가장 많은 글을 썼다. 거듭 쓰며 묻고 답하는 사이 불행이 옅어졌다. 불행이라 여긴 것들이 불행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고 삶에서 얻은 것조차 불행 덕분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글로 옮기는 사이 불행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불행을 맞는 태도만은 달라졌다. 글쓰기는 내 앞에 놓인 일을 어떻게 바라볼지 선택하게 한다. 삶의 결정권을 갖게 한다. 적극적으로 선택하여 삶을 변화시키기, 그리하여 계속 살게 하고 다음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처럼 글쓰기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글을 쓰는 동안 무언가를 돌아본 사람은 글을 마쳤을 때 더 이상 이전의 그가 아니다. 무언가를 쓰는 사이 내면의 풍경은 바뀐다. 글이 끝나면 삶도 어딘가로 옮겨간다. 저자의 삶도 그러하길, 간절히 바라며 읽은 책이 있다.

죽음의 목전에서 깨어나 한 질문 "재능이란 뭘까?"

<재능이란 뭘까?> 영화인이자 시인인 유진목이 2년 만에 펴낸 산문집. 쓰기와 죽기 사이의 사유가 담겼다.
<재능이란 뭘까?>영화인이자 시인인 유진목이 2년 만에 펴낸 산문집. 쓰기와 죽기 사이의 사유가 담겼다. ⓒ 알라딘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영화인이자 시인인 유진목 작가가 펴낸 산문집 <재능이란 뭘까?>(2025년 4월 출간)다. 질문에 관한 저자의 글쓰기 시리즈 '막간'의 첫 권이다. 죽지 않기 위해 매일 글을 쓰기로 한 저자가 쓰기와 죽기 사이에서 고심하느라 삶을 지속하는 이야기가 담겼다. 그 속에 삶과 글쓰기, 사랑과 고통, 이별과 늙음에 대한 철학이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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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재능이란 뭘까?"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불행을 사랑하기로 결정했다"로 끝난다. 이혼으로 삶의 위기에 처한 저자는 죽기를 시도하지만, 다시 깨어난다. 월세를 내고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막막한 현실이 창작자의 삶 앞에 가로 놓여 있다. 죽지 못한 저자는 글쓰기라는 유일한 재능으로 삶을 밀고 나간다.

살기 위해 글을 쓰며 내면의 상처를 돌아본다. 어린 아이를 두고 교회에서 시간을 보냈던 엄마와 참지 못하고 황급히 떠나버렸던 과거의 자신, 남겨 두거나 쉽게 버리고 말았던 모든 것들, 상처가 되어 저자를 끌어내리는 대상을 글로 갈무리한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 엄마와 나 사이에는 교회가 강력하게 자리를 잡고 있지만 생활비에 보태라며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주던 기억도 선명하게 자리를 잡았다." - 64~65쪽, 유진목, <재능이란 뭘까?>, 난다

그걸 적은 문장이 담담하다. 처절한 슬픔이나 회한, 원망이나 미움, 분노나 절망도 깎여 나갔다. 철저하게 다듬은 문장은 객관성과 진실의 자리를 확보한다. 감정이 넘치지 않는 대신 사유와 리듬으로 단단해져 시처럼 여운을 남긴다.

그걸 읽는 동안엔 겸허히 누군가의 삶을 공감하고 연민하며 이해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잘 다듬어진 문장이 독자에게 건너와 어떤 일을 하는지 살핀다. 책의 두께는 얇지만 더디게 읽고 오래 만지작거린 이유다.

"창의성이란 어떤 것을 포함시키고 어떤 것을 제외시킬지를 결정하는 창의적 선택을 의미한다." - 로버트 맥키,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2002, <재능이란 뭘까>에서 재인용

이 책은 화자의 삶에 대한 고백록이지만 훌륭한 글쓰기 책의 역할을 겸비한다. 글쓰기에서 핵심은 무엇을 적고 적지 않을지 선택하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또한 이 책에 그가 겪은 일의 일부를 적고 일부는 누락했다.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는 데다 삶의 일부만 적혔기에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진다. 그로 인해 이야기는 사실이면서도 허구와 같은 색채를 입는다.

편집이라는 가위는 책 속 이야기와 유진목 개인의 삶 사이에 가위집을 낸다. 틈새는 유사한 경험을 한 다수에게로 열린다. 저자의 탁월한 선택 덕분에 이 책은 독자에게 무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고통에 고통을, 슬픔에 슬픔을 엮어 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러한 선택을 창의성이자 재능이라고 로버트 맥키는 말했다.

삶에서도 무엇과 누구, 어디를 들이고 어떤 기억을 남길지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이야기에 주목할지, 어떤 서사에 나를 연결 하는가에 따라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삶은 글쓰기와 너무도 닮았다. 그처럼 이 책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창의적인 선택과 변화가 가능하다고 암시한다.

저자는 글쓰기를 통해 고통의 이유를 고민하고 고통을 끝낼 방법을 찾는다. 그래야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그다음까지 살아가" 볼 수 있으므로. 그래야 "자신을 망가뜨리는 선택이 아니라 다음을 생각하게 하는 선택을 할 수" 있으므로. 이 문장들은 그와 같은 고통으로 한없이 가라앉고 있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실오라기 같은 동앗줄이다.

세계의 내면을 발화하는 일, 감사한 재능

책을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간다. 죽음의 목전에서 깨어난 이가 "재능이란 뭘까?"를 묻는다니, 불행도 재능이라니, 이 뒤틀림에 이상하게 숨통이 트인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내담자 앞에서 잠시 화제를 돌렸다 다시 돌아오는 상담 선생님의 노련한 숙고가 담긴 말처럼, 누군가에겐 절실한 환기의 질문일 것 같아서다.

죽음은 잠시 미뤄두고, 당신의 재능이 무언지부터 이야기 해볼까. 황당한 질문에 그가 울음을 멈출지 모른다. 피식, 웃음이 터질지도. 간신히 움직인 손가락 하나로 시공간을 비틀어 가위눌린 꿈에서 깨어나듯 저자의 재치있는 질문이 누군가를 깨울 것이다. 깨어남으로 다시 숨쉬게 할 것이다.

내면의 일을 전부 끌어안고 우리는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 웃는 얼굴 이면에 우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그것을 발화해야 하는 이유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사실은 울고 있다는 것. - 22쪽

죽지 않기 위해 써야만 하는 고통을 생각한다. 그건 불행한 재능일까, 고귀한 재능일까. 한 사람을 살게 하고 타인을 살리기도 하는 재능이라면 한없이 감사한 재능이다.

책을 읽고 우는 마음을 숨긴 무수한 웃는 얼굴을 헤아린다. 개인의 고유한 고통을 읽고 들어줘야 하는 이유를 생각한다. 들어주는 이가 있는 한 죽지 않을 한 사람을 떠올린다. 나쁜 꿈에서 깨울 부드러운 질문 하나를 건네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재능이란 뭘까? - 쓰기에서 죽기까지

유진목 (지은이), 난다(2025)


꾸역꾸역은 '어떤 마음이 자꾸 생기거나 치미는 모양'을 뜻합니다. 책을 읽고 치미는 마음을 열심히 글로 잘 담아보겠습니다.
#재능이란뭘까#유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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