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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19일 51차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뒤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며 인사하고 있다. 2025.6.19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19일 51차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뒤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며 인사하고 있다. 2025.6.19 ⓒ 연합뉴스

중동 위기가 한국 경제와 교민 안전을 위협하는 지금, 대통령이 공군 1호기에서 보고를 받으며 추경·노사·안보 현안을 원격 지휘하는 모습이 과연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이라 할 수 있을까. 최근 대통령실은 국내 산적한 현안과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을 공식 사유로 꼽으며 24~25일 예정되어 있는 나토 정상회의 불참을 알렸다. 실제로 미국이 지난 21일(현지 시각) 이란 핵시설 세 곳을 벙커버스터로 폭격하며 중동 분쟁이 급격히 확전되었고, 이란도 전면적 반격 작전에 나서며 해상 운송로가 흔들리고 있다. 해외 현장에 파견된 교민들의 안전 대책은 현 국민주권정부에 있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됐다.

국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 정부는 경기 방어를 위해 약 20조 2천억 원 규모의 2차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여야 원 구성 갈등으로 통과 시점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당 원내지도부는 6월 국회 내 처리를 공언했지만,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추경 재원 대책을 문제 삼으며 제동을 걸고 있다. 여기에 서울 시내버스를 비롯한 여러 노조가 곧 파업을 예고해 사회ㆍ경제적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이렇게 하루가 중요한 시점에 대통령이 해외로 자리를 비우면 국회 협상력은 물론 비상대응 체계에도 공백이 생길 수 있다.

그럼에도 보수 야당은 동맹 파트너가 모두 모이는 자리에서 한국만 빠지면 국익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외통위 일각에서는 "북·중·러 눈치 보기"라는 해묵은 표현도 동원됐다. 여기서 쟁점은 나토와 체결한 맞춤형 파트너십 프로그램(ITPP) 이행 의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ITPP는 사이버 및 신흥 안보 관련 기술 협력을 총괄하는 제도적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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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 여부와 무관하게 ITPP의 실무 채널은 정기적으로 굴러간다. 또한 나토 측이 올해 회의에서 의결할 사안은 우크라이나 재건금 분담, 공급망 연대, GDP 대비 5% 국방비 권고안 등이지만, 파트너국 자격으로 참가하는 한국의 경우 발언권은 있어도 투표권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대통령이 의전적 상징성을 위해 먼 길을 감행하기보다,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외교안보채널이 스마트오더 방식으로 몰아 소화하는 편이 실용적일 것이다.

한편 중국 변수도 간과할 수 없다. 중국은 불과 2주 전 "나토의 아·태 진출이 지역 긴장을 부추긴다"는 성명을 냈다. 현 정부가 "균형 외교"를 표방하며 중국 외교부장 방한을 추진 중인 만큼, 취임 후 첫 다자 무대에서 중국을 자극하는 사진 한 장조차 중대한 외교적 비용이 될 수 있다. 또한 나토가 국방비 목표를 GDP 5%로 높이면 한국 역시 장기적으로 증액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불참을 통해 이러한 부담 완화에 기여하면서, 향후 있을 한-미 정상 회의까지 실속 있는 협력 과제를 챙긴다면 손익계산서상 이득도 더 크다.

물론 기회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나토 정상회의는 우크라이나 재건, 유럽 방산시장 진출, 공급망 협조 같은 실리 협상을 하는 드문 무대다. 그렇기 때문에 대리 대표단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번에 대표단이 현지 시각으로 곧 개시될 우크라이나 재건 및 방산 관련 세션에서 라운드테이블을 잡는 실무력을 증명하고 이후 이어지는 사후 관리까지 우수하게 수행해 낸다면, 이번 결정은 이익이 손해를 압도하는 결정으로 평가될 것이다.

결국 대통령실의 결정은 다양한 위기관리와 자원 배분이라는 현실적 딜레마 속에서 내려진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여겨진다. 국내 금융시장은 이미 중동 위기에 신경이 곤두서 있고, 추경 처리와 노사 갈등 해결도 시급한 문제다. 외교가 참석과 불참 사이의 흑백 논리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임기 초반 국정 동력을 지키기 위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도 필요한 시점이다.

관건은 이후 단계별 청사진이다. 대리 대표단이 어떤 실질적 성과를 가져오고, 현 정부가 중동 위기를 안정시키기 위해 어떤 비상 경제·안보 패키지를 실행하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정치권도 "왜 안 갔느냐"는 갑론을박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정부가 제시할 후속 조치의 타당성과 실행력을 면밀히 따지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유도진 기자는 극동대 해킹보안학과 교수입니다.


#중동위기#나토정상회의#ITPP#노사#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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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중심이 되는 정책과 기술을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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