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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산책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정비된 지천. 양옆으로는 잘 포장된 보행로, 초록색 풀로 뒤덮인 하천 바닥, 사람들은 "공원처럼 좋다"며 사진을 찍고, 개를 산책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전국 곳곳이 이런 식으로 '정비'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고 안전해 보이지만, 이게 과연 우리가 바라는 진짜 '자연'인가?

정비된 하천변 산책로 겉보기엔 평화롭고 잘 정비된 산책길처럼 보이지만, 물은 흐르지 않고 풀만 무성한 하천의 현재 모습.
정비된 하천변 산책로겉보기엔 평화롭고 잘 정비된 산책길처럼 보이지만, 물은 흐르지 않고 풀만 무성한 하천의 현재 모습. ⓒ 한무영

물이 흐르지 못하니, 풀만 자란다

이 하천은 한때 큰 돌들이 있었던 계류형 하천이었다. 돌은 물살을 분산시키고, 물고기와 수서곤충이 숨을 곳이었다. 그러나 하천 정비를 한다며 돌은 모두 제거되었고, 바닥은 평평해졌다. 그 결과, 유속이 느려지고 흙이 쌓이고, 풀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여름엔 푸르게 보이지만, 가을이면 이 풀들은 누렇게 시들어 쓰러진다. "지저분하다"는 민원이 들어오고, 인부들이 풀을 제거한다. 예산이 또 들어간다. 이게 우리가 바란 자연인가? 관리가 쉬운 시스템인가?

하천정비후 풀만 무성한 하천 좁게 난 인공 물길과 양쪽을 가득 메운 수풀. 원래 돌이 있었던 자리는 사라졌다.
하천정비후 풀만 무성한 하천좁게 난 인공 물길과 양쪽을 가득 메운 수풀. 원래 돌이 있었던 자리는 사라졌다. ⓒ 한무영

제방이 무너진 이유, 정말 하천 단면 탓일까?

사실 이 하천은 몇 해 전 홍수로 제방이 넘쳐 무너진 경험이 있다. 그 사고 이후 '정비사업'이 시작됐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구되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과거에는 하천 단면이 충분했지만,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도로와 주차장이 조성되면서 빗물이 땅에 스며들지 않고 한꺼번에 하천으로 몰려든 것이다. 즉, 물이 많아져서 넘친 것이 아니라, 스며들 곳이 사라져서 넘친 것이다.

펌프로 끌어올린 물, 그 에너지는 누가 감당하나

이 하천은 지금도 마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하류에서 상류로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비가 오지 않아도 물이 흐르는 모습은 사람들의 눈엔 좋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적인 물 흐름이 아니라, 에너지로 움직이는 인공 시스템이다. 선조들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물챙이'라 불리는 구조물을 만들어 물을 먼저 받아주었다. 빗물을 가두고, 스며들게 하고, 천천히 흘려보내는 철학이 있었다.

물을 반듯하게 내보내면, 하류가 아프다

지금의 하천 정비는 물을 직선으로, 빠르게, 곧게 내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내 지역에서는 물이 잘 빠져서 좋아 보이지만, 문제는 그 물이 하류에 그대로 쏟아진다는 것이다. 유속 조절 장치 없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물은 하류 제방을 위협하고, 침식과 재해를 일으킨다. 위에서는 편하고, 아래에서는 위험하다.

선조들은 '물챙이'로 하류를 배려했다

옛 선조들은 이런 식의 자기중심적 물관리를 하지 않았다. 대신 '물챙이'라 불리는 작은 돌담이나 흙둑을 만들어 물을 가두고, 잠시 머물게 하고, 천천히 보내는 구조를 곳곳에 만들었다. 마치 "내가 조금 수고를 하더라도, 하류 사람들이 덜 고생하게 하자"는 철학이었다. 물챙이는 단지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공존의 철학, 자연 순환의 이행, 그리고 미래 세대를 향한 예의였다. 지금의 하천은 '내 지역만 안전하면 된다'는 사고, 물챙이는 '함께 살자'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물은 선으로 흐르지만, 면에서 시작된다

오늘날의 하천 관리는 대개 선(하천 자체)만 본다. 하지만 물은 하늘에서 내려와, 지붕과 도로(면) 위로 흘러, 땅속으로 스며들다가, 마지막에야 하천으로 흐른다. 즉, 하천은 '결과'이지, '시작'이 아니다. 지금처럼 하천만 손보고, 유역 전체(면)를 무시하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 물이 흐르는 하천은 선이지만, 그 물을 만든 것은 산과 들, 지붕과 주차장이라는 면이다. 이제는 하천을 보는 관점도 '선에서 면으로' 바뀌어야 한다.

물소리가 사라지면, 생명도 추억도 사라진다

물이 돌을 때리며 나는 소리는, 물의 위치에너지를 줄이는 '완충 작용'이자, 자연의 브레이크 시스템이다. 돌은 서식처이고, 소리와 물보라는 하천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이제 그 돌들이 사라지자, 물고기, 곤충, 새… 그리고 아이들이 놀고, 어른들이 시를 읊던 기억의 공간까지 사라졌다.

먹이를 찾는 백로 백로 한 마리가 마지막 생명처럼 서 있다. 그러나 이곳이 그에게도 편한 서식처일까
먹이를 찾는 백로백로 한 마리가 마지막 생명처럼 서 있다. 그러나 이곳이 그에게도 편한 서식처일까 ⓒ 한무영

'재자연화'라는 이름의 착각
요즘은 콘크리트 대신 돌망태를 쓰고, 풀을 심었다고 해서 '자연형 하천'이라 부른다. 하지만 정작 물의 흐름은 인공 펌프에 의존하고, 생물다양성은 사라졌고, 풀만 무성한 공간이 됐다. 이것은 생태도, 기억도, 순환도 빠진 '겉치레 자연'이 아닐까?

우리가 바라는 하천의 미래는 이런 모습일까?
하천은 단순히 물이 흐르는 곳이 아니다. 돌 하나, 물소리 하나, 그림자 하나가 모두 생명의 조건이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단지 물길이 아니라, 순환의 철학, 생명의 다양성, 기억의 공간이다. 진짜 재자연화는 돌을 다시 놓고, 물을 천천히 흐르게 하고, 그곳에 생명과 추억이 함께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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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오늘날의 하천정비는 ‘안전’과 ‘경관’을 내세우지만, 그 과정에서 물이 흐르는 방식, 생물이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방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돌 하나, 물소리 하나, 그림자 하나’를 잃는다는 것은 단지 경관의 변화만이 아니라, 생명과 기억, 공동체의 철학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미래 세대에 물려줘야 할 하천은, 단지 잘 정비된 산책길이 아니라, 천천히 흐르고, 함께 머물고, 공존을 담은 하천이어야 합니다.

이 글이 오늘 우리가 짓는 제방 하나, 걷는 산책로 하나가 누군가에게 어떤 물길이 되고, 어떤 기억이 될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천정비#하천재자연화#물챙이#하천의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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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오마이 물모이

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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