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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드득 비 내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지난 7월 19일 새벽 5시, 가로등 불빛도 자취를 감춘 골짜기는 컴컴하다. 새벽부터 지붕을 두드리는 장맛비 소리다. 창문을 열자 산 너머에서 빗줄기가 넘어온다. 골짜기에서의 삶은 어려움이 많다. 눈이 많이 와도 걱정이고, 비가 많이 와도 또 걱정이다. 전국 곳곳에 물난리가 났다는 소식이다. 현관을 나가볼까 망설이다 장맛비를 감당할 수 없음에 책상에 앉았다. 이중 창문을 닫았는데도 도랑물 소리가 우렁차다. 창문 두드리는 빗줄기가 거세진다. 골짜기에 장맛비가 찾아온 아침 풍경이다.

경사지 이웃들의 삶이 걱정됐다

전원의 삶 전원에서 만나는 자연은 아름답다. 전원의 아름다움 뒤편엔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장마와 무더위 그리고 추위, 미리미리 준비하는 수 밖에 없다.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는 방법, 몇년을 살아가며 미리 준비하는 방법을 이제야 조금 알아냈다. 장맛비 뒤의 무더위, 전원의 삶은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전원의 삶전원에서 만나는 자연은 아름답다. 전원의 아름다움 뒤편엔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장마와 무더위 그리고 추위, 미리미리 준비하는 수 밖에 없다.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는 방법, 몇년을 살아가며 미리 준비하는 방법을 이제야 조금 알아냈다. 장맛비 뒤의 무더위, 전원의 삶은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 박희종

하얀 눈이 오고, 비 내리는 날을 좋아했다. 초가 지붕 위 눈은 탐스러웠고, 향나무에 앉은 눈은 포근했다. 봄비 내리는 소리는 새봄의 시작이었다. 맑음을 주는 하얀 눈과 새봄을 알려주는 봄비를 좋아했던 이유다. 눈과 비 없이 농촌 살림을 이어갈 수 없다. 농사를 지어야 하고 삶을 꾸려야 하는 생명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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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랑물이 콸콸 흐르는 소리에 가슴이 뜨끔 하다. 도랑물 소리가 상쾌한 골짜기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앞서 서다. 곳곳에 있는 경사지와 이웃들의 살림살이는 무사한지. 논밭은 무사하고, 농작물 피해는 없는지. 자그마한 텃밭은 아직 온전하다. 상추가 안전하고 토마토도 건재하다. 언제 쯤 장맛비가 그치고 일상으로 돌아올지 걱정이다.

산 골짜기 삶은 물이 좌우한다. 물이 부족해도 곤란하고 많아도 걱정이다. 농사를 지어야 하니 생활 용수를 준비해야 한다. 화단을 돌봐야 하고 텃밭을 길러내야 한다. 가뭄도 그리고 넘치는 장맛비도 걱정인 이유다. 자연의 섭리를 거역할 수 없는 인간, 자연에 순응하며 철저한 준비만이 화를 면할 수 있다.

산부터 내려오는 흙탕물이 온갖 잡동사니를 실어온다. 나무 등걸이 밀려오고 바위돌이 굴러온다. 순식간에 도랑이 혼란스럽다. 한가롭던 꽃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도랑가도 뒤죽박죽이다. 나무 등걸에 바윗돌이 엉켜있고, 흙탕물이 휘젓고 있다. 미꾸라지가 있었고, 붕어가 있었으며 삶이 있었던 오래 전의 도랑이 아니다.

노후된 물받이 틈 사이로 물이 흐른다. 작은 틈만 있으면 어김 없다. 지난 가을 낙엽이 막은 물통으로 물이 넘친다. 얼른 낙엽을 제거해야 한다. 더 큰 혼란을 막기 위해선 서둘러야 하고, 언제나 물과 마주하는 데크는 항상 걱정이다. 일 년에 한 번씩 오일스텐으로 처리를 해야 안전하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이 골짜기를 점령했다. 감당할 수 없는 흙탕물은 물길이 따로 없다. 제방을 무너트리고, 나무를 쓰러트린다. 여기저기 위험이 도사린 골짜기에서 긴장하는 이유다.

인간은 자연 앞에 무기력하다. 밀려오는 구름을 밀어낼 수 없고, 맑은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빗줄기가 갑자기 거세진다. 지붕을 두드리는 기세가 두렵다. 아내는 걱정스러워 현관 앞에 서성인다. 검은 구름을 끼고 싸울 듯이 밀려오는 장맛비, 도랑은 벌써 흙탕물이 넘쳐흐른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주는 대고 받고 순응해야 하지만,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안부 전화

시골의 전원 풍경 무더위 속에 곡식은 무럭무럭 익어가고 있다. 긴 장마를 이기고 난 후의 농부들의 전리품이다. 시골살이는 계절따라 미리 준비해야 하고, 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옥수수가 익어가는 계절, 자연은 골짜기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시골의 전원 풍경무더위 속에 곡식은 무럭무럭 익어가고 있다. 긴 장마를 이기고 난 후의 농부들의 전리품이다. 시골살이는 계절따라 미리 준비해야 하고, 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옥수수가 익어가는 계절, 자연은 골짜기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 박희종

아침부터 전화기가 바쁘다. 곳곳에서 걸려오는 안부 전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걸려오는 전화다. 장마 대비는 봄부터 준비했다. 물길을 잡아주고, 지붕 곳곳을 손봐야 했다. 잠시 소홀하면 엄청난 재난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틈이라도 허용하지 않도록 습기를 막기 위한 총력전을 벌여야 한다.

시골의 삶은 습기와의 전쟁이다. 습하면 곰팡이와 각종 벌레가 기승을 부린다. 잠시도 습기를 가둬둘 수 없는 이유다. 아침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창문을 여는 것이다. 방부터 거실 그리고 화장실 등 모든 문은 열어 놓는다. 공기를 환기시키고 습기를 조절하기 위해서다. 햇살에 습기를 말려야 하고 제습기를 작동시켜야 한다. 습기 조절에 소홀하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장마철 정원관리는 더 어렵다. 비에 꽃은 쓰러지고 부러지며, 잡초 세상이 되고 만다. 잔디밭엔 여기저기 잡초들은 신이 났다. 잠시 눈을 떼면 잔디는 보이지 않는다. 나뭇가지도 순식간에 웃자라 감당할 수 없다. 비가 머뭇거리는 사이 잡초를 뽑아내고, 나뭇가지를 정리한다. 늙음을 이유로 머뭇거릴 수가 없다. 어렵지만 해내야 하는 삶의 소일 거리라 여긴다.

헐떡이는 흙탕물에 무엇도 살지 않는 골짜기, 거센 함성으로 쏟아져 내려온다. 매년 겪어야 하는 일이기에 축대를 보수하고 물길을 잡아 주며 작은 틈이라도 소홀하지 않았다. 물받이를 청소하고 습기 제거를 위한 대비를 했다. 비 오는 날엔 보일러를 가동한다. 끈끈한 습기를 제거해 주기 위함이다. 장마가 끝나고 참을 수 없는 더위가 이어진다.

물난리를 만난 주민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농토가 물에 잠겼고, 지하 차도에 물이 가득했다. 삶의 터전이 무너졌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난리를 올해도 만난 것이다. 거센 빗줄기가 할퀴고 간 상처, 얼른 아물어 예전의 삶이 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에 게재되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브런치스토리에도 발행될 수 있습니다.


#장마#여름#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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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늙을 줄 몰랐다


박희종 (ko4246) 내방

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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