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출판 편집자이다. 거실 책상에서 일하며 책 속으로, 책 밖으로 산책하는 것이 일상의 낙이자 유일한 신체 활동이다. 편집 작업을 하는 와중의 책 이야기, 다 만든 책 이야기, 남이 만든 책 이야기… 기웃기웃, 어슬렁거린 산책길의 이야기를 풀 계획이다.
"장마 끝났어?"
"지금 장마 아니야?"
6월 말, 7월 초만 해도 하루걸러 듣던 말이다. 기상관측 이후 가장 빨리 끝났다는 장마. 이후 심상치 않은 열대야랠리. 일찍 끝난 장마를 기록적인 폭염이 뒤덮었다.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유럽 곳곳이 45도를 예사로 넘나들며 역대 최고기온을 경신하고 있다는 뉴스가 연이었다. 기후학자들은 "우리가 알던 전통적인 장마와 여름은 사라진 지 오래"라고 하고, 세계기상기구는 "때 이른 폭염은 일시적 기상이 아닌 새로운 기후 현실"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이런 엄혹한 기후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기준이라고 했다.
7월 하순을 향하면서는 온 나라가 비 피해로 난리였다.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잠정 집계된 인명 피해가 28명에 이르렀고(7월 22일 기준), 농작물 침수 면적도 3만 헥타르에 육박했으며, 폐사한 가축도 178만 마리에 달했다. 물론 집, 도로, 교량이 침수, 파손된 시설 피해도 막대했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나 날씨 이야기가 화제이고 기후위기가 화두다. 이상 냉해로 열매를 맺지 못한 과일 농사 뉴스, 기록적인 가뭄에 농부들의 근심이 깊다는 뉴스, 물 폭탄이라고 할 만한 기록적인 폭우 뉴스… 모두 '무섭다'고 말한다.
그 무서움의 근원에는 이런 기후 재난이 뜻밖에 일어난 '재난'이 아니라 앞으로의 '일상'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또 이런 상황이 과연 어디까지 영향을 끼칠지 모르겠다는 무지가 크게 똬리를 틀고 있어서인 것 같다.
환경 문제에 관한 문제제기와 대책 강구가 그렇게 오랜 세월, 몇십 년은 이어진 것 같은데 나 또한 여전히 두렵고 무지하다. 그런 무지를 걱정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사실 내가 하는 '적극적인' 행동은 여전히 없다.

▲흐린 하늘, 푸른 숲, 흐르는 개울, 이 모든 자연이 소중한 요즘이다.<최후의 바키타>(메멘토, 2025)와 <기후극장>(에디토리얼, 2025) ⓒ 김은경
올 봄 <최후의 바키타>(2025년 3월 출간)라는 책의 제작 펀딩에 참여했었다. '멸종 위기 작은 돌고래가 보내는 공존의 메아리'라는 부제와 '최후의 바키타'라는 제목 자체가 흥미로웠다. 돌고래를 향한 관심은 2023년에 나온 <마린걸스>(부제: 두 여성 행동생태학자가 들려주는 돌고래 이야기) 교정교열을 맡으며 각별해진 애정이다.
그나저나 바키타? 바키타는 멕시코 코르테스 해에 서식하는 작은 돌고래로, 웃는 듯한 귀여운 얼굴이 트레이드마크로 '바다의 판다'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멸종되어 가고 있다.
저자는 이 멸종위기종인 바키타를 생태 회복력과 희망의 강력한 상징으로 내세우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페로 제도, 멕시코, 프랑스, 인도네시아, 북극 등으로 이어지는 탐사 여정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서 멸종되어 가는 바키타가 우리의 운명과 무관하지 않음을, 연결되어 있음을 알린다.
그러는 와중에 청소년 대상의 환경 관련 책을 편집하게 되었다. '연극으로 만나는 우리 공동의 과거와 미래'라는 부제가 달린 황승미 작가의 <기후극장>(2025년 6월)이란 책이다. 이 책은 기후위기에 관한 역사, 과학 지식, 논쟁을 연극 대본 형식으로 쓴 청소년 교양서이다. 작가는 기후위기를 '기후'의 측면에서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역사와 구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역할과 대사, 연극적 장치를 통해 풀어놓는다.
가령, 플라톤의 <변론> 형식을 차용해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석유, 석탄, 탄소가 법정에 등장해 자신의 처지를 항변한다거나,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속 등장인물들과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를 조우하게 해 신대륙에서의 약탈과 식민 경제의 자본 흐름 아래 금융 자본이 부상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또한 그를 통해 산업혁명, 기계화, 화석연료 기반의 생산 체계의 확립 등이 오늘날 기후위기의 구조적 토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무대 위의 장면, 장면으로 목도하게 한다.
이 외에도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탄생 비화와 함께 살펴보는 윤리적 상상력과 공동의 책임에 관한 사유라든가 프로이트, 인공지능 장착 로봇 그리고 타임머신의 이야기가 엮이며 생각해 보게 되는 '기후 분기점'에 관한 고민도 신선하다. 문명의 진보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과 사유를 곱씹고 떠올리게 하는 작가의 독창적인 이야기가 연극의 한 장면으로 펼쳐져 더욱 쉽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환경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황승미 선생은 현재 녹색아카데미에서 자연철학 세미나, 녹색문명 공부 모임을 꾸리고 있다. 꾸준히 녹색아카데미 웹진을 통해 기후위기와 기타 환경 관련 기사를 소개해 왔고 다양한 주제의 독서 모임을 이끌고 있다.
그러한 내력 덕분인지 이 책에서도 기후와 문명, 생명체의 존재를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여덟 편의 이야기를 통해 쉽고 흥미롭게 우리를 이끌어 준다. 내용을 좀 더 직관적으로 설명해 주는 그의 매력적인 삽화와 앞서 거론한 여러 차용한 작품들과 인물에 관한 배경 이야기가 실린 부록을 꼭 읽어 보길 '강추'한다.

▲<기후극장> 본문 중.꾸준히 기후위기와 기타 환경 관련 기사를 소개해 온 작가가 기후위기에 관한 역사, 과학 지식, 논쟁을 연극 대본 형식으로 풀어놓았다. ⓒ 김은경
날씨예보에서 "기록적인"이라는 말이 너무 자주 반복되는 것 같은 느낌은 그야말로 '느낌적 느낌'일까, 과장일까, 사실의 전달일까. "이제 쭉 이러면 어쩌죠?", "앞으로는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 않을 거라는데?" 이런 막연한 공포를 이야기하다 보면 일회용품, 플라스틱 용기 사용 줄이기나 텀블러 사용 같은 소소하지만 가능한 실천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곤 한다.
그러면서 이런 하찮은 정도의 노력으로 기후위기를 막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며 우리는 이미 선을 넘었을 거라는 누군가의 한탄이 나오면 깊은 한숨과 함께 무거운 침묵이 흐르곤 한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만나면 새삼 우리의 노력을 견고히 하고 미래를 위한 불편이라면 감내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곤 한다. 여전히 우리가 이 지구에 살고 있어서, 미래에도 아이들이 이 지구에 살거라서.
덧붙이는 글 | 김편집의 책산책은 이번 10화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연재는 마무리되지만 앞으로도 '책동네'를 통해 꾸준히 책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