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열린 '인혁당재건위사건 '사법살인' 부정하는 박근혜 규탄 기자회견'에서 고 송상진씨 부인 김진생씨, 고 김용원씨 부인 유승옥씨, 고 우홍선씨 부인 강순희씨가 울부짖고 있다. ⓒ 권우성
송상진 열사는 1926년 10월 3일 경북 달성군 공산면 백악리(현 대구시 동구 백안동)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세에 공산공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사범에 입학한 수재였다. 대구사범은 조선총독부가 황민화 교육을 위해 설립하여 서울의 경성사범, 평양의 평양사범과 함께 3대 명문으로 알려졌다.
그는 3학년 때 8.15 해방을 맞아 속성 교원양성 과정을 마치고 1946년 모교인 공산초등학교에 교원으로 임용되었다. 학구열이 높았던 그는 교직생활을 하면서 1951년 5월 대구대 경제학과 3학년에 편입, 1953년 4월에 졸업하고 이 대학 경제학과 조교가 되었다.
4월 혁명이 일어나고 현실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61년 3월 4일 발족한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 경북맹부 사무국장에 선임되었다. 민민청은 통일운동과 장면 정부가 추진한 2대악법 반대투쟁에 나서고, 뒷날 인혁당 사건으로 함께 엮인 서도원·도예종·이재문 등 진보적인 인사들과 만났다.
5.16쿠데타는 그에게도 날벼락이었다. 1961년 12월 반국가행위자로 몰려 혁명검찰부에 검거되고 서울교도소에 수감되었다. 5개월 동안 혹독한 고문과 신문을 받고 1962년 4월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대학으로 돌아갈 길이 막혔다. 생업으로 선택한 것이 양봉업이었다.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산속 깊숙이 들어가 자연 속에 벌통을 놓아두고 살아가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 그런데 또 다시 태풍이 몰려왔다. 그가 기소유예로 풀려난 1차 인혁당 사건이 잊힐 만 할 때 2차 사건을 조작한 것이다.
1차 당시 검찰총장이던 신직수가 중앙정보부장이 되어 사건을 일으켰다. 1974년 4월 28일 체포되어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고 검찰로 넘겨졌다. <항소이유서>에 저간의 사정이 담겼다.
공소사실 전문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본 피고인은 평소 공산주의 사상을 포지하고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할 목적으로 70.8.15 등산회를 조직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본 피고인은 대구에서 약 24km 떨어진 경북 달성군 공산면 산두동(부인사)에서 양봉업을 하는데 그곳에 4, 5천 되는 사람들이 등산을 왔다면서 코스를 등화사를 거쳐 대구에 가기로 정했다기에 본 피고인은 양봉장에서 동화사까지의 산길을 안내하였습니다.
그리고 본 피고인은 양봉장으로 되돌아왔을 뿐인데 이 등산 온 것을 본 피고인이 용공혁신계의 규합을 목적으로 조직한 것이라고까지 과잉 추리 해석이란 전무후무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당시 누구 한 사람도 정치에 대한 발언은 하지 않았습니다. 도시의 공해로부터 산소를 듬뿍 마시는데 또 맑은 냇물, 기묘히 생긴 나무들에 홀려서 정신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상피고인 전재권과 인사를 나누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는 본 피고인은 전혀 바빠서 참석한 일이 없습니다. 상기와 같은 단순한 길 안내가 오늘에 와서 그 무시무시한 공산주의 국가건설의 모의조작이란 누명을 쓰게 되었다는 것은 억지 오해인 것입니다.

▲12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열린 '인혁당재건위사건 '사법살인' 부정하는 박근혜 규탄 기자회견'에서 유가족들이 희생자 8명(여정남, 하재완, 이수병, 송상진, 김용원, 우홍선, 서도원, 도예종)의 영정사진을 들고 나왔다. ⓒ 권우성
우연히 어느 날 길 안내한 것을 인혁당 재건 조직으로 몰아서 구속하고 극심한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하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고문에 의한 자백이라고 호소했지만 검찰이나 법원은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재판은 최종심까지 사형구형→사형선고로 마무리되었다. '인혁당재건위'의 '사법살인'에 참여한 인적구성은 다음과 같다.
1심 - 보통군법회의구성 재판부는, 박현식·류병현·박희동·이희성·강신탁·신현수(이상장군), 권종근·신정천·박천식(이상 판사), 김진석·송병철·김태원(이상 검사), 신복현·황종태·김영범(이상 무궁화 법무사),
2심 - 고등군법회의 재판부는, 이세호·윤성인·차규헌(이상 장군), 문영옥·박정근(이상 판사), 정태균(이상 검사), 이진우(이상 무궁화 법무사), 이진우(이상 무궁화 법무사),
검찰부는,이근일·전세봉·이원우·강월신·정상용·이인수·백광현·조태영·문호철·이규영·송종의(이상 검찰관).
대법원 - (대법원장 민복기, 1차 때 법무부장관), 민복기·홍순엽·이영섭·주재환·김영세·민문기·양병호·이병호·한환진·임창준·안병수·김윤행·이일규(법원 행정처 인사관리실).
관계의 사법살인의 주역들은 대통령(박정희), 국무총리 김종필·중앙정보부장 신직수·법무부 장관 황산덕·중앙정보부 (국장 당시 수사책임자) 이용택, 중앙정보부 수사관 윤종원·모성진, 사형집행 명령(군법회의법으로 국방장관이 집행명령) 서종철 국방부장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가 민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되고 시신 처리과정에서 지켜보았던 증언이다.
무시무시한 사법살인이었다. 심지어 박정희 정권은 시신을 가족에게 전하지 않고 몰래 화장하려 했다. 벽제 화장터로 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가족과 재야 인사들은 응암동 오거리에서 시신을 실은 구급차를 가로막고 차에 뛰어들었다.
"아직 죽은 남편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유가족이 울부짖자 누군가 관뚜껑을 열어졌혔다. 얼마나 조급했던지 관 뚜껑이 제대로 못질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시신은 손이 등 뒤로 묶인 채 엎어져 있었고 발로 짓밟았던지 등에는 구둣발 자국이 선명했다. 죽은 이들이 입고 있던 하얀 한복은 온통 피로 젖어 있었다. 이소선은 경악했다.
"독재 놈들아! 니들이 사람이냐,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냐. 어제 판결하고 오늘 새벽 죽이는 법이 어딨냐, 그리고 시신을 관에 쑤셔 넣는 놈들이 대명천지에 어딨냔 말이냐."
이소선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시신을 똑바로 눕히려고 안간힘을 썼다. 손이 끈적끈적한 피로 물들었다. (주석 1)
주석
1> 오도엽, <이소선 여든의 기억,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여기서는 이창훈 앞의 책, 202쪽, 재인용.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민주열사 열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