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인 동백작은학교에서 다섯 해를 보낸 도하는 오늘도 자신만의 길 위에 서 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는 어른은 많지 않다. 청소년들의 높은 스트레스와 우울과 불안증세는 점점 증가하고 있고, 이러한 상황들이 청소년 자살률 1위로 이어지는 암담한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여전히 그들은 '살아내고' 있다.
이 우울과 절망의 근저에는 단순한 공부 스트레스가 아니라, 끊임없는 입시경쟁,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사회적 고립이라는 사회 구조적, 제도적 문제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언어가 '불안의 언어'로 가득 채워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어두운 풍경 속에서,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한 한 십대가 있다. 이름은 도하, 열여덟 살이다. 그는 여느 십대와 다름 없이 여전히 바쁘지만, 그것은 시험을 위한 분주함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가꾸는 분주함이다.
음악을 하고,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질문을 이어간다. 타인의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언어를 찾고, 누군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궤적을 그린다. 도하의 청춘은 경쟁에서 한 발 비켜서 있지만, 그 걸음은 결코 느리지도, 가볍지도 않다.
한국사회에서 그는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을까? 열여덟 도하의 삶을 인터뷰해 보았다.

▲어디든 기타를 들고 다니며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도하 ⓒ 이임주
"요즘에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음악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그 말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그의 삶을 지탱하는 힘처럼 들렸다.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입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시간이기도 했다.
불안과 함께 걷는 '보폭'
입시를 거부한 삶, 열여덟의 길은 늘 불안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그 불안은 대개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되었다.
"불안이 없는 삶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할 거예요. 사람들은 쉽게 말해요. '뒤처진다'고. 그런데 어떤 삶이 뒤처지는 삶일까요? 저는 제게 맞는 방향으로 걷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불안과 함께 걷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제 보폭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강요하는 획일적 속도에 대한 저항이자 단단한 그의 무게이다. 누군가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보폭으로 걷는 삶. 그것이야말로 진짜 배움의 과정이 아닐까.
학제가 없는 학교, 위계가 없는 배움
동백작은학교는 조금 특별하다. 학제가 없고, 나이와 학년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선후배가 없으니, 위계도 없다. 열여덟의 도하는 열여섯의 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함께 웃고, 함께 배우며, 서로를 '가족'처럼 부른다.
"학제가 없다는 건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평등에 대한 시도예요. 나이나 학년으로 배움을 규정하지 않으니까요. 저희 학교에는 선후배 문화 같은 게 없거든요. 두세 살 어린 친구들이 친구처럼 느껴질 정도로.. 다들 엄청 편하고 가족 같은 사이에요. 나이에 따라서 서열이 생기고, 한국에 당연하게 자리잡혀있는 그런 위계 문화가 저희 학교에는 없어요. 나이나, 학년으로 배움을 구분짓고 결정하지 않는 거죠.
학년 대신에 돌담과정, 너머과정이있는데요. 돌담과정은 제주 돌담처럼 각기 다른 높낮이로 세상과 소통하고,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자신을 사유하고, 탐구하는 단계예요. 너머과정은 돌담이라는 비교적 작은 세상에서부터의 배움을 뛰어넘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너머과정과 돌담과정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외부에서의 배움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인턴십 같은 외부와의 소통을 통해서, 바깥세상과 나를 연결해나가는 과업들을 합니다. 너머과정에게는 계속해서 자기자신을 넘어서는 과업들이 주어지는 것 같아요."
너머과정인 도하는 바깥세상과 조금씩 연결되며 용기 있게 자신의 보폭으로 나아가고 있다.
"저는 지금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있고 또 제가 많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비교당하지 않는 삶 그 자체만으로 저는 제가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저의 삶이 만족스럽고, 또 행복한 것 같습니다."
도하의 말처럼 행복은 남과의 비교 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갈 때 많은 책임이 따르지만 또 기꺼이 그 무게를 짊어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 갈 때 청소년들은 진정한 행복과 삶의 의지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대안학교가 '공부 안 하는 학교'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흔히 대안학교는 '공부하기 싫은 애들이 가는 학교'라는 누명을 씌우기도 한다. 그 말에 대해 도하는 격분하며 이야기 했다.
"하…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해요. 편협한 생각이에요. 이런 말 자체가 되게 규정 짓는 말이거든요. 국어, 수학, 과학, 사회 뭐 이런 것만 공부는 아니잖아요. 배움에는 정답이 없는데, 왜 제도권 학교에서 하는 공부만이 정답이라고 여기는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교과서로 하는 공부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생에 한 번뿐인 청소년 시기에 대안학교에서는 더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배우고 있는 전부를 다 이야기려면 너무너무 오래 걸릴 거예요. 그리고 저희는 한 학기를 '달린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엄청 바빠요… 아무튼 대안학교에서 공부를 안 한다는 건 너무너무 갇혀있는 생각입니다."
도하말처럼 배움에는 정답이 없다. 십대에게 '공부'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의 언어를 찾는 시간, 그리고 꿈 같은 만남
최근 그에게 남은 가장 선명한 배움은 두 가지였다고 한다.
하나는 '국수페(국어, 수학, 페미니즘-동백작은학교의 생생한 성평등 실천기를 담아낸 책)' 북콘서트에 참여한 일이다. 그는 이미 오랜 시간 동백작은학교에서 페미니즘을 배워왔다.
이 책의 작가인 동백작은학교 선생님은 늘 도하와 북콘서트에 동행했다. 도하는 그 때마다 신이났다. 자신의 목소리로 더욱 생생하게 학교 페미니즘 교육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즐거움은 또 다른데 있었다. 국수페 북콘서트에서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이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페미니즘을 배워가지만 세상에서 다양한 시각에서 이야기되는 페미니즘은 너무 흥미롭고 깊었기 때문이다.
"제가 가장 집중한 건, 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차별에 맞설 수 있는 나의 언어를 찾는 일이었어요." 그는 지금도 안전하게 오롯이 자신의 깊이에서 차별에 대응할 수 있는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이다.

▲초대받은 국수페 북콘서트에서 직접 작사작곡한 성평등 노래 '무지개깃발'을 부르고 있다. ⓒ 이임주
또 다른 배움은 뮤지션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음악과 관련된 꿈을 꾸며 작사작곡을 하고, 평화와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에 자신만의 솔직함과 용기를 담은 자서전을 노래와 함께 펴내고, 올해는 자신이 존경하는 타인의 삶을 통해 그의 삶과 좀 더 깊이 있는 연결을 하고 있는 중이다. 동백의 청소년들은 각자 다른 이야기들로 평등하게 자신의 삶을 전하고 나누고 있다.
최근에 그는 평소 너무 좋아했던 뮤지션들 '여유와 설빈, 권나무, 하림'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이들과 노래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그 시간을 "꿈만 같았다"고 표현했다. 며칠 동안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상상 속에서 함께 노래하던 장면을 수십 번 그려보았다고 한다. 어른들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온전히 스스로 해 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순간, 뮤지션들의 삶의 궤적과 정성 담긴 그들의 조언과 응원으로 확신을 얻었다. "내 색깔대로 잘 걸어가고 있구나."

▲어느 길 위에서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청소년들 ⓒ 이임주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으로 산다는 건?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서 청소년으로 살아간다는 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대학 입시, 경쟁, 시험같은 것들이 엄청난 압박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도적으로 많은 것들이 통제되어있기도 하고, 사회에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아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운 구조인데, 자립적 존재가 되어야 하니까 청소년들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당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 사회가 청소년이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대학은 그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필요하다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일 뿐이라고,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이라고... 동백에서 보낸 다섯 해, 그리고 열여덟의 지금. 도하는 여전히 배우고,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경쟁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오히려 더 치열하게 자신을 살아내고 있다.
연대의 언어가 전하는 평화
대안학교에서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비빌언덕'이 생기는 것이다. 주변의 좋은 어른들은 그들의 삶을 지원해 주고 응원해 주며 깊이 있는 관계로 이어진다. 또 지역에서 이어지는 다양한 만남과 연대를 통해 세상에 나가서도 비빌 수 있는 또 다른 울타리를 형성해 간다. 도하는 광장에서도, 자연 속에서도, 바닷가에서도, 혼자만의 공간에서도 평화와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그것이 지금 도하의 보폭이고 행복이다.
이 암담한 대한민국의 입시경쟁이라는 현실 속에서 도하의 선택은 언제나 평화와 연대의 구체적 실천이었다. 그것은 그의 선택이 존중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등은 큰 구호가 아니라, 서로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작은 순간에서 시작돼요."
그의 목소리는 지금 이 사회가 가장 들을 필요가 있는 이야기다. 한국 사회는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 동백작은학교는 제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생태, 인권, 평화의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청소년 민주시민 교육 공동체이다. 제주 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14세~19세의 청소년들이 함께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배우고 실천하며 따뜻한 공동체를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평등한 통합교육을 지향하고 있으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배움이 즐거운 '학교를 넘어선 '학교를 꿈꾸는 학교이다. 2021년 3월에 처음 문을 열었으며, 전국에서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https://www.dongbaekscho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