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한다. 2002년 충청리뷰 검찰 사태는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벌어진 드레퓌스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19세기 말 프랑스 제 3공공화국을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은 군사·정치·사회적 사건으로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가 독일에 군사 기밀을 유출했다는 혐의로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뒤 벌어진 대규모 사회적 논쟁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누명 사건을 넘어 프랑스 사회를 깊이 분열시키며 현대 프랑스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그 과정에서 반유대주의, 군부의 부패, 권력의 남용, 사법제도의 문제, 언론과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 등이 충돌하며 역사적 분수령이 됐다.

AD
사건은 1894년 프랑스 육군이 독일 대사관 우편함에서 찾아냈다는 한 장의 명세서를 육군 포병 대위 드레퓌스의 간첩활동 증거로 삼아 간첩 협의로 종신형을 처하면서 시작된다.

2년 후 정보본부 신임 수장 피카르 중령에 의해 드레퓌스는 누명을 쓴 것이고 에스테라지가 진범임을 밝혀내지만 군 당국은 허위 필적 감정서와 가짜증인으로 이를 묵살한다. 오히려 피카르 중령을 아프리카로 좌천시키고 드레퓌스가 유대인이라는 정보를 언론에 흘려 반유대주의 정서를 자극한다. 결국 진범인 에스테라지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분노한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 에밀 졸라가 <로로르>지에 '나는 고발한다'란 공개서한을 발표, 프랑스 전역에 격렬한 논쟁을 촉발한다. 에밀 졸라는 이 글에서 드레퓌스 사건의 부당함을 폭로하고, 군부와 정부가 진실을 은폐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프랑스 내각은 드레퓌스 재심을 의결했고, 드레퓌스는 군부의 압력 속에서 다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7년 후인 1906년7월 최고재판소는 드레퓌스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복권시켰다. 국방부는 사관학교 연병장에서 드레퓌스의 육군소령 복귀식을 열고 레지웅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드레퓌스 사건은 이렇게 끝이 났다.

드레퓌스 사건은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또한 진실을 숨기려는 권력에 맞서는 '언론과 지식인의 역할'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에일 졸라가 <로로르>지에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한 직후 '로로르'는 재심 요구 항의문과 함께 지지 서명을 실었다. 앙드레 지드를 비롯해 작가·예술가·건축사·변호사 등 전문 직업인과 대학교수·학생들의 지지였다. 당시 로로르 편집장으로 후에 프랑스 총리를 지낸 조르주 클레망소는 그들을 가리켜 "한 가지 이념을 위해 사방에서 몰려든 지식인들"이라 했다.

지역 주간지 구하려 연대한 사람들

 충청리뷰에 대한 보복 수사 중단을 촉구하며 청주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선 충북대 김승환교수
충청리뷰에 대한 보복 수사 중단을 촉구하며 청주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선 충북대 김승환교수 ⓒ 충청리뷰

충북을 비롯한 전국의 지식인들이 검찰의 부당한 수사와 언론탄압을 규탄하고 나선 것은 지식인과 언론의 시대를 연 드레퓌스 사건에서 클레망소가 외친 '사방에서 몰려든 지식인'과 다르지 않다.

일개 주간지에 검찰 권력을 남용해 부당하게 언론탄압에 나선 검찰에 대해 지식인들이 연대하고, 고발하고 나선 것이다.

충북대 김승환 교수, 이홍원 화가 등은 검찰의 보복 수사에 항의하며 검찰청 앞 1위 시위를 마다하지 않았다. 도종환 시인은 <한겨례>를 비롯한 언론에 보복수사의 부당함과 검찰 권력의 전횡을 고발하는 글을 기고했다. 서울에서 이정식 CBS 해설위원장은 투쟁속보에 "수틀리면 보복한다는 청주검찰"이라고 직격하는 글을 보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검찰 보복 수사로 첫 희생자가 된 윤석위 시인(충청리뷰 발행인)의 석방을 위한 촛불 문화제를 열어 결의를 보여줬다. 이들 모두는 진실을 추구하고 부당함에 맞서 행동하는 지식인인 '우리의 에밀 졸라'였다.

또한 드레퓌스 사건에서 <로로르>지 역할은 지대했다. 신문은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1면 전체를 할애해 보도함으로써 군 내부 문제로만 다루어졌던 드레퓌스 사건을 전국적인 정치·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다. 또한 '1894년 재판의 법률 위반과 에스테라지 의혹에 항의하며 재심을 요구한다'는 항의문을 실었다.

충청리뷰는 검찰의 직접적 보복수사에 굴하지 않고 굳건히 맞서 검찰권의 남용과 언론탄압을 비판하는 보도를 계속함으로써 검찰 보복 수사를 전국적인 사회적 이슈로 이끌어 냈다. 충북의 지식인 및 시민들이 충청리뷰의 검찰 비판 보도에 지지 및 격려 광고를 한 것은 프랑스 지식인 수백명이 <로로르>지 항의문에 지지 서명 한 것과 같다.

격려 광고는 재정적 후원을 넘어서 온 힘을 모아준 응원이었다. 특히 충청리뷰에 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공무원들이 홈페이지 게시판 등을 통해 검찰 수사의 부당함을 표출한 것은 지식인 및 시민의 항의와 지지 못지않은 민주주의와 언론 지키기의 버팀목이었다.

충청리뷰 검찰 사태 또한 극적이다. 윤송현은 이 사태에 대한 한 칼럼에서 "청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마치 새로운 영화를 보는 듯하다. 영화나 연극,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소재가 될 것이다"고 할만큼 극적 요소를 갖췄다. 그는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우선, 소재가 새롭다. 그동안 정권에 의한 언론탄압은 많이 들어왔지만, 검찰이 비판기사를 문제삼아 신문사에 대해 보복수사를 하고 신문을 폐간시키기 위해 혈안이 된 사례는 처음 들어본다. 검찰의 과도한 구속관행을 지적한 기사가 발단이 된 것도 의미 있고, 사건의 전개과정과 갈등관계도 분명하다. 그 신문사가 지방의 조그만 주간지인데다 아무리 조사를 해도 비리가 나오지 않는 회사라는 것도 인상적이다."(2002. 11. 22 충청리뷰 '우암세평'중)

충청리뷰 검찰 사태, 검찰개혁으로 마무리해야

이런 면에서 보면 충청리뷰 검찰 사태는 검찰 흑역사인 동시에 검찰 개혁 촉발 사건이다. 드레퓌스 사건이 프랑스 사회에 군부의 부패, 권력 남용, 반유대주의 문제 등을 드러내며 민주주의 사회 발전의 전환점이 됐듯이 충청리뷰 검찰사태는 검찰의 무모한 권한 남용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검찰 개혁 필요성을 확고하게 환기시켜 주었다.

검찰 개혁은 이제 더 이상 사회적 논쟁 거리가 아닌 상수다. 이재명 정부가 검찰 해제 수준의 검찰 개혁을 공언하고 있어 더 이상의 논쟁은 없을 것이란 기대다. 하지만 노무현, 문재인 정부도 검찰 개혁을 주요 국정 과제로 삼아 밀어 부쳤지만 되치기를 당했던 옛 기억은 끝을 보지 않고는 안심하기 이르다는 불안을 지울 수 없음은 숨기기 어렵다.

드레퓌스가 군부 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투옥됐다가 복권되는 데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한민국의 검찰 개혁 요구 또한 수십년이 흐르고 있고, 비판 보도에 대한 보복 수사로 촉발된 충청리뷰 사태도 23년이 흘렀다.

충청리뷰 검찰 사태에 대한 온전한 평가와 반성은 검찰 개혁의 완성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산학연 코리아에도 실립니다.


#검찰개혁#보복수사#청주검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2002년 검찰을 소환한다

00일보에서 경영권에 의한 편집권 훼손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가 쫒겨나와 충청리뷰에서 거침없이 기사를 썼다. 그러나 검찰 비판 기사에 검찰이 보복 수사를 벌여 발행인과 현직 대학총장까지 구속되는 '충청리뷰 검찰 사태'를 빚었다. 늘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힘을 빼는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힘을 보태겠다는 각오로 당시를 회상하며 기록한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