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교육의 현장은 곳곳에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배움이 입시와 경쟁 속에 갇히고, 교실은 점점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공부'를 이어가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금산 진악산 자락에서 작은 불씨를 지피고 있는 금산간디학교 교사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대안학교를 꿋꿋하게 세워 가는 이범희 교장이 그렇습니다.
책상머리에서만 배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온몸으로 자연을 만나고, 땀과 발걸음으로 삶을 배우는 학교가 있다는 사실. 그 길 위에서 교사와 학생이 함께 울고 웃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모습은 참으로 가슴 벅찹니다. 이번에 전해드릴 이야기는 바로 그런 살아 있는 배움, 금산간디학교 아이들이 떠나는 '해파랑길 생명체험 학교'입니다.
"우리는 그저 이 지구를 함께 나누는 수많은 생명 중 하나일 뿐이다."
이 단순하면서도 깊은 고백이 올해 9월, 금산간디학교 학생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습니다. 9월 1일부터 13박 14일 동안, 학생들은 영덕에서 강릉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을 따라 걷습니다. 주제는 평화·인권·생태·환경. 책상 위가 아니라, 길 위에서 배우는 특별한 학교가 열리는 것입니다.
대안교육의 뿌리, 금산간디학교
충청남도 금산 진악산 자락에 자리한 금산간디학교(교장 이범희)는 '사랑과 자발성으로 행복한 학교'를 지향하는 대안학교입니다. 1997년 산청간디학교에서 시작된 정신을 이어받아 2008년 개교한 이래, 작은 규모(60여 명)로 교사·학생·학부모가 한 가족처럼 생활하며, 획일화된 교육을 넘어 자기주도적 학습과 공동체적 삶을 일구어 왔습니다.
학교는 교과서 중심의 암기식 수업 대신, 프로젝트 학습·체험 활동·노작 교육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탁월성"을 키우고자 합니다. 또한 마을과 함께하는 교육, 민주적 자치, 생태적 삶을 교육과정 전반에 녹여내고 있습니다.
왜 해파랑길인가?
이번 체험학교가 '해파랑길'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도보여행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해안선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입니다. 해수면 상승, 해양생물 멸종, 어업 생계의 위기, 잦아지는 태풍과 폭우. 또한 영덕·울진·삼척 지역은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가 밀집해 있고, 해양쓰레기와 환경오염으로 고통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이 길을 걸으며 깨닫게 됩니다. "기후위기는 모두의 문제지만, 그 피해는 특정 지역과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다"는 사실을. 따라서 해파랑길은 단순한 '걷기'가 아니라, 기후정의와 생태정의의 현장을 온몸으로 배우는 수업입니다.
배우는 것은 길 위에서만이 아니다
도보 과정은 단순히 걷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울진 원자력발전소 전시관을 방문하고, 삼척 화력발전소 조기폐쇄 운동 현장을 찾습니다. 바닷가에서는 플로깅과 비치코밍을 하며 쓰레기를 줍고, 강릉에서는 청소년 단체와 교류하며 지역 시민들과 대화합니다. 또한 독립서점에서 저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책과 사람, 현장과 사유가 어우러지는 시간을 갖습니다.
공동체적 배움, 삶의 훈련
이번 체험학교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휴대전화와 전자기기는 가져가지 않습니다. 개인 간식이나 용돈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각자는 자기 물건을 책임지고, 음식은 남기지 않으며, 서로를 응원하는 언어를 씁니다.
이 작은 규칙들은 학생들이 '함께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훈련입니다. 불편을 감수하고, 공동체를 우선시하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교육이란 삶을 배우는 것
금산간디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은 단순히 '좋은 대학 진학'을 향한 경쟁이 아닙니다. 삶을 위한 교육, 자연과 함께하는 교육, 공동체 속에서 성장하는 교육입니다. 이번 생명체험 학교 또한 그 철학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길을 걸으며 학생들은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것입니다.
"나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가?"
"지구와 더불어 살기 위한 나의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
"내가 속한 공동체와 지구 생태계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
함께 살아가는 지구인으로
금산간디학교의 해파랑길 도보는 단순한 특별활동이 아니라, 학생들이 '지구인으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배움터입니다. 경쟁과 서열이 아닌 사랑과 자발성으로, 지식을 넘어 삶의 지혜를 배우는 이 작은 학교의 실험은 오늘날 우리 교육이 던져야 할 질문을 대신 보여주고 있습니다. 금산 진악산에서 출발한 그 작은 발걸음은, 이제 동해 바닷길 위에서 더 큰 울림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이 지구를 함께 나누는 수많은 생명 중 하나"라는 고백과 함께. 그 길 위에서 아이들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 곁에서 묵묵히 함께 걷는 교사들의 헌신이 있기에, 오늘도 이 작은 학교는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더 내딛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옥성 님은 교육희망네트워크 상임대표, 행복마음연구소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