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국토종주 출발 전날 해남 땅끝마을에 도착했다. 이날은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백로이다. 절기는 가을인데 날씨는 아직 여름 같다.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가을비인지 여름비인지 분간은 안 되지만 국토의 땅끝에서 맞는 비여서인지 더 신선하고, 안그래도 신비한 땅끝마을이 더 신비해지는 것 같다.
땅끝마을은 오랜 세월 맹지이자 오지나 다름없었다. 땅끝기맥이 해남반도를 동과 서로 가르며 뻗어내려오다 땅끝에서 해식애 절벽을 이루어 바다로 직하하므로 땅끝마을은 산과 바다에 갖힌 형국이 되었다. 이 땅끝마을에 가려면 돌아가거나 산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던 탓에 본토와의 빈번한 교류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구릉 넘어 저 맨 끝 조그만 땅끝 자리에 오지 마을로 구별된 형상의 땅끝마을은 지금도 여전히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땅끝을 정말 땅끝이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신비로움을 넘어선 특별함에 있다. 두 발로 걸어서 우리 국토와 만나는 국토종주를 이곳에서 시작하는 만큼 우리나라의 땅끝이 특별한 이유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한반도의 축소판 같은 땅끝
땅끝이 특별한 이유 첫째는 대간의 맥이 땅끝을 관통하는 점이다.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호남정맥의 한갈래인 땅끝기맥이 바다와 접하는 극남인 해남 땅끝까지 뻗어와 사자봉에서 한껏 포효한 다음, 맥이 바다로 들어갔다가 한라산으로 이어진다.
<택리지>(1751)에서 이중환은 백두산에서 시작하는 조선의 산맥이 '월출산에 이르러 해남현을 지난 다음 남해 복판의 여러 섬이 되었고, 바닷길 천리를 건너 제주 한라산이 되었다'고 기술했다.
둘째, 한반도의 축소판을 연출하고 있다. 바다 쪽 하늘에서 해남의 송지면 땅끝을 보면 신기하게도 한반도 형상을 하고 있다. 땅끝이 연출하는 남해안 리아스식 해안과 갈두산에서 달마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백두대간의 등줄기를 연상시키며 한반도 지형을 빼닮았다.

▲전남 해남군 송지면 땅끝이 한반도 지형을 쏙 빼닮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 해남군
이뿐이 아니다. 땅끝기맥이 해남반도의 동편에서 등뼈처럼 뻗어내려 있다. 백두대간을 등허리로 삼은 한반도 전체의 축소판을 해남반도가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땅끝기맥: 호남정맥의 바람봉(노적봉 430m)에서 분기해 국립공원 월출산을 지나 서기산, 주작산, 두륜산, 달마산에 이어 마지막 갈두산까지 자그마치 123km 길이의 웅장한 1자 산맥을 형성하는, 정맥에 버금가는 산맥).

▲월출산에서 서기산을 지나온 땅끝기맥이 우리나라의 가장 남쪽 산맥을 형성해 만덕산부터 해남 땅끝까지 40여 km를 해남반도의 등뼈처럼 곧게 뻗어있다. ⓒ 네이버지도
셋째, 지질구조상 한반도를 대변한다. 한반도(남북한)는 지구 표면적의 0.043%를 차지하는 좁은 면적이지만 수십억 년 전인 선캄브리아 시대부터 신생대 제4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질시대의 암석을 망라한다. 또 한반도의 등뼈를 이룬 태백산맥을 비롯해 산악지형을 이룬 많은 산들이 백악기의 융기와 화산 활동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작디작은 해남이 똑 그렇다. 해남군 지질은 선캄브리아기 변성암 복합체가 기저를 이루고, 활발한 화산 활동의 중심지가 되므로 백악기 지층에 지배되고 있다. 땅끝기맥도 백악기 때 화산 활동과 화강암의 융기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쯤이면 땅끝이 한반도를 대변할 자격이 차고 넘친다. 이렇게 정교한 땅끝을 대체 누가 설계했을지 생각할수록 신기할 뿐이다. 땅끝만 봐도 한반도의 전체의 무게감과 중요성을 말해 주는 것 같다. 필연적 존재로서 우리 국토,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우리의 땅끝이 알게 해주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토종주를 이 땅끝에서 출발하는 것이 뿌듯하다.
혹자는 국토종주를 해남에서 출발하지 않고 반대로 고성에서 출발하면 어떻냐고 한다. 그것 역시 좋다. 어떻게 걸어도 국토종주의 가치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순방향은 해남에서 고성으로 향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고성은 더 걸어갈 우리 땅이 남아 있는 열린 곳이다. 지금은 분단으로 막혀있지만 한반도의 최북단인 함경북도 온성까지 이어갈 희망을 남겨 둔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산 존재에게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해남 땅끝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장소이다. 땅끝이 국토종주의 출발점이 되는 이유도 같다. 우주 삼라만상이 돌아가는 것이 끝과 시작이 분리되지 않는 순환의 원리인 것처럼 땅끝은 끝과 시작이 구분 없이 만나는 지점이다. 생명의 순환의 고리이자 새 희망을 알려주는 땅끝을 국토종주의 출발점으로 삼는 이유이다.
출발 하루 전날 여유있게 땅끝에 오니 땅끝의 의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여유있게 즐기는 땅끝 관광
저녁식사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땅끝마을 관광에 나섰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서자마자 숙소 바로 맞은편에 '땅끝공원'이 있다.
이 공원의 특이한 점은 세계 6대륙의 땅끝 모형을 한 장소에 모아 놓은 것이다. 6대륙을 상징하는 정원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세계의 땅끝'을 한자리에서 볼수 있다. 희망봉으로 불리는 아프리카 테이블마운틴을 비롯 포르투갈 호카곳, 멕시코 엘아르코데카보산, 아르헨티나 에클레어 등대, 호주 오페라하우스의 실제 모습이 축소돼 있다. 당장 세계의 땅끝에 직접 가보지 않는다면 이곳에 와서 출발과 희망을 상징하는 땅끝의 의미를 새겨 보면 좋을 것 같다.

▲6대륙의 땅끝을 축소 모형으로 만들어놓은 땅끝공원 ⓒ (사)사람길걷기협회
이어 '땅끝 스카이워크'를 향해 걷는다. 사자봉 아래의 땅끝과 바다가 만나는 길이다. 스카이워크는 바닥이 투명 유리로 돼 있어 이 특별한 바다 위를 공중에 떠서 걷는 것 같은 아찔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땅끝점이 있는 이 일대는 큰 사재 끝이라 불리는데, 땅끝 스카이워크가 설치된 이곳 해안 절벽에 사재끝샘이 있다. 백두산 천지물이 백두대간을 따라 백두산의 정기를 나누어 준 뒤 최종 이 곳 땅끝 사재끝샘에서 다시 솟아나는 것이라고 전해진다.
사재끝이란 삶의 끝에 저승사자가 있다는 뜻인데, 국토의 끝과 삶의 끝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실제로 남해와 서해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땅끝점의 앞바다는 항해할 때 이곳만 통과하면 살 수 있었다고 할 만큼 물살이 세서 배들이 이곳을 통과할 때면 반드시 재를 올렸다.
땅끝마을에서도 정월 초하루 국수당에서 도제를 지내는데 도제를 주관하는 제관은 사재끝샘에서 목욕재계를 했다. 길이 없던 옛날에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해안을 따라 온 정성이 놀랍다. 드디어 국토종주의 첫 발을 내딛는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든다.

▲땅끝 스카이워크가 설치된 이곳 해안 절벽에 사재끝샘이 있다. ⓒ (사)한국사람길걷기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