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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15 13:31최종 업데이트 25.09.15 13:31

문화 영역 성장은 주변에서 시작된다

[굿모닝퓨처] 정부가 지향하는 '문화강국', 성취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

 대통령실은 9일 이재명 대통령이 대중문화교류위원 공동위원장에 최휘영 문체부 장관과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창의성총괄책임자 및 대표 프로듀서를 임명했다고 전했다. 2025.9.9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통령실은 9일 이재명 대통령이 대중문화교류위원 공동위원장에 최휘영 문체부 장관과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창의성총괄책임자 및 대표 프로듀서를 임명했다고 전했다. 2025.9.9 [연합뉴스 자료사진] ⓒ 연합뉴스

새 정부의 문화정책 방향은 매우 분명합니다.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수출지향 문화산업을 육성하여 경제적 성과를 올리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방향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방향을 적극 지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부의 문화정책은 결국 늘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 선택의 옳고 그름이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 선택에 대한 평가는 결국 사후적으로 내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 평가 역시 늘 양가적으로 이뤄집니다. 정책 방향은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며 정권의 국정운영 철학에 따라 좌우되는데 그것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입장과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특정 개인의 사적 이해관계가 지나치게 개입되는 결정이 아니라면 민의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선택하는 정책 방향은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번 정부에서 첫 번째로 임명된 문화체육관광부의 수장인 최휘영 장관은 언론인 출신이지만 주로 네이버 등에서 콘텐츠 사업을 경영하였고 최근에는 여행 서비스 플랫폼 사업을 운영해 온 인물로 문화산업에 익숙한 인물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부터 "K-컬처 300조 시대"를 내세우며 수출지향 문화산업의 집중 육성을 문화분야의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 반영된 것입니다. 최근에는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를 신설하고 최휘영 장관과, 대중가수이자 프로듀서, 사업가인 박진영씨를 장관급 공동위원장으로 내정했다는 것이 발표되었습니다.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문화산업의 집중 육성이 정권의 문화정책기조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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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21세기 초반인 현재까지 한국에서 대중문화산업이 급성장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재명 정부가 대통령 선거 기간에서부터 내세운 "문화강국론"은 분명히 이것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선거 당시 공약에서 "한국을 세계 5대 문화강국으로 만들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다소 당혹해했었는데, 이것이 실은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현재까지 한국이 세계 7위 수준인데 그것을 세계 5위권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어찌 보면 한국이 콘텐츠 시장에서 세계 7위권이라는 현재의 수준 역시도 대단한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보다 콘텐츠산업(문화산업)의 매출 규모가 큰 나라들을 살펴보면 압도적인 1위인 미국 외에 중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입니다. 이들 국가의 면면을 보면 단지 콘텐츠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측면에서 세계 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영향력이 무척 큰 강대국들입니다. 한국이 이런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측면이 있습니다.

매출 규모 등 산술적인 성취뿐만 아니라 가끔 해외를 다녀보면 소위 "K-컬처"라고 통칭되는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의 엄청난 영향력을 더욱 체감하게 됩니다. 개인적 체험이지만 이미 근 20년 전에 프랑스 파리에 있는 음반, DVD 전문 매장에 들렀다가 박찬욱, 홍상수, 김기덕, 봉준호 등의 한국 영화가 별도의 코너로 자리 잡고 있어서 상당히 놀란 적이 있습니다.

또한 6, 7년 전에는 튀르키예의 서부 항구도시인 이즈미르를 걸어가다가 현지 십 대 청소년이 한국말로 말을 걸어와서 매우 당황한 적도 있습니다. 그 청소년에 따르면 한국 가요와 드라마를 보며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생겼고, 그래서 현지 어학당을 다니며 한국말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사반세기 전에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문화강국"은 이런 자신감에서 나온 표현일 것입니다.

하지만 문화(문화정책)연구를 해온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표현은 다소 불편하거나 논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문화라는 것에 대한 입장이 매우 다양하고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문화를 강약이나 우열 관계로 보는 시각이 점차 사라지고, 차이와 다양성으로 보는 시각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얘기해서 세계 최첨단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뉴욕의 문화가 아프리카나 중남미 밀림 지대에서 과거의 전통적 삶의 양식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문화보다 결코 우월하거나 강하지 않으며, 다만 서로 다를 뿐이란 입장이 점점 더 강화되어 왔습니다. 각자의 서로 다른 문화가 있을 뿐이며 특정한 문화가 강하거나 지배적이란 것은 다분히 문화제국주의를 옹호했던 과거의 입장이란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문화연구의 내부적 논의에서 불편합니다. 그걸 꼬투리 삼아서 지금 정부가 얘기하는 문화의 강(强)함이란 개념을 이론적 측면에서 비판하거나 논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다분히 정치적 어휘이고 정책 어젠다를 제시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관용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여기서 짚어봐야 하는 것은 이 정부가 지향하는 "문화강국"을 성취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입니다.

한국이 20세기 말부터 문화산업을 크게 성장시킨 것에 대하여, 정부가 주도했다는 인식이 외부적으로는 존재하고 있습니다만, 문화산업현장에서 일해 온 대부분의 주역들은 그걸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화산업의 성장은 민간이 주도해 왔고, 정부는 여기에 끊임없이 의존해 왔다고 보는 이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것은 반쯤은 사실이고 반쯤은 오해라고 봅니다. 일단 1990년대 중반 이후 역대 정부와 그 산하기관들이 외형적으로 선전해 왔던 것에 비하여 문화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나 획기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며 혹은 존재하더라도 그다지 성공적인 사례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한국 문화산업의 성장이 정부 주도였다는 시각은 착시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이 존재합니다. 문화산업 자체를 의도적으로 직접 키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가능해진 환경을 부여한 것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환경의 변화는 대부분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 시절에 이루어졌습니다.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하는데, 우선 첫 번째로 세계적인 기준으로 봐도 무척 빠르게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을 구축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나라들도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21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해외에선 한국과 같은 인터넷 서비스를 값싸게 이용하기 힘들었습니다. 스마트폰 보급 역시도 무척 빠르게 이루어졌습니다. 즉 한국은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이 매우 빠르게 구축된 편이며, 이것은 산업의 급성장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정치·이념 등의 이유로 금지되거나 검열되던 예술작품과 문화상품에 대한 규제가 1990년대 후반에 대부분 풀렸습니다. 공산권 국가의 영화나 드라마, 대중음악이 1990년대 전반에 걸쳐서 차례로 해금되었고, 90년대 후반에는 역사적 악연으로 규제되고 있던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됐습니다. 국내적으로 보아도 대중음악에 대한 사전검열 제도 같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족쇄들이 90년대 후반에 거의 다 풀렸습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문화산업의 급성장에는 이런 해빙의 분위기가 매우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문화적 자유가 개방적으로 주어지면서 많은 젊은이가 문화 관련 분야에 뛰어들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러 왔던 일본의 중견 영화인들이 한국 영화의 급성장에 대하여 매우 부러워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일본 같으면 국립대에서 죽어라 공부해서 정부 관료가 되었을 엘리트 젊은이들이 한국에선 영화계로 들어와 일하고 있다. 이런 차이를 당해내기 힘들다."

즉, 문화산업을 성장시키는 것은 문화산업에 대한 투자만으로 이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문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생태계에 대한 고려를 통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문화산업이란 본질적으로 매우 그 트랜드의 변화가 격심하고 개별 콘텐츠로 가면 실패의 확률이 높은, 리스키(risky)한 영역입니다. 100개의 콘텐츠가 만들어지면 97개가 실패하고 2개 정도가 손해를 보지 않고 1개 정도가 대박이 나는 것이 이 산업의 특성입니다.

또한 그 성패를 예측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과거의 사례지만 1977년 조지 루카스 감독이 <스타워즈> 첫 번째 작품을 만들고 시사회를 했을 당시에 대부분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망한 상품으로 취급했습니다. 당시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레퍼런스는 <대부> 시리즈나 <차이나타운> 같은 성인 취향 영화들이었고, <스타워즈>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물은 청소년들이 심야영화관에서나 보는 B급 장르로 취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막대한 제작비로 찍었기 때문에 성공을 감히 예측하기 힘들었습니다만,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오히려 영화 산업의 트랜드가 바뀌는 것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즉 문화산업의 성공은 "잘될 것 같은 것들을 집중해서 밀어주는 방식"이 아니라 "창작자들이 숱한 실패를 감수하고라도 다양한 새로움을 계속 시도할 수 있게 하는 환경"에서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함과 새로운 시도가 가능한 환경은 문화 산업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폭넓은 주변부를 튼튼하게 만드는 과정을 통해 일궈낼 수 있습니다.

역시 과거의 성공 사례이지만 2000년대 초반 한국과 세계에서 크게 성공하며 초창기 한류 열풍을 일으켰던 드라마 <대장금>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전혀 엉뚱하게도 조선왕조실록의 번역과 전산화 덕분이었습니다. 1993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가 조선왕조실록의 번역을 완료하여 출판했고, 1995년 CD롬 초판이 간행·보급되었습니다.

이것은 한국 역사를 문화콘텐츠로 만들기 위한 의도로 진행된 작업이 아니라 한국 역사의 대중화를 위한 시도였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실록에 매우 간략하게 소개된 의녀 장금(長今)의 존재는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작가적 상상력을 거쳐 성공적인 드라마로 탄생되었습니다. <대장금> 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의 창작자들이 조선왕조실록 CD롬을 앞다투어 구했으며 매우 많은 콘텐츠가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문화산업이건 기초예술이건(사실 이 경계도 매우 모호합니다만), 문화 영역에서의 성공이나 의미 있는 변화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촉발되는 일이 매우 반복적으로 거듭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 영역의 지속가능성은 튼튼한 주변부와 폭넓은 다양성에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분방한 사회 분위기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문화산업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오직 문화산업만을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입니다. 이 기사는 굿모닝 충청에도 실립니다.


#문화성장#문화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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