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캄보디아 헌법 답사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한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남성과 캄보디아 여성의 신혼부부가 그 주인공이었다. 며칠 전 처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프놈펜에서 서류 정리를 하며 신혼여행을 겸하고 있던 이들의 모습에서 두 나라를 잇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은 개인의 행복을 넘어 양국 관계의 희망적 미래를 상징하는 듯했다.
이번 답사를 통해 확인한 캄보디아의 헌정사는 격동 그 자체였다. 1947년 자치헌법에서 시작해 1993년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캄보디아는 네 차례의 헌법 제정을 경험했다. 각 헌법은 그 시대의 꿈과 좌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1947년 자치헌법은 독립 의지의 표현이었다. 1970년대 크메르루주 정권의 헌법은 급진적 사회 개조의 청사진이었지만 억압의 도구가 되었다. 1980년대 인민공화국 헌법은 베트남의 영향 아래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했다. 1993년 현행 헌법은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우리나라가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9차례 개정을 통해 점진적 발전을 이뤘다면, 캄보디아는 체제 전환을 동반한 전면적 헌법 교체를 반복해왔다. 이는 현대사의 극심한 단절과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왓랑카 법당의 천장 사진 ⓒ 여경수
한편 캄보디아 헌법상 종교와 관련된 특성이 있다. 캄보디아는 불교 신자가 전체 인구의 90%가 넘는 불교국가다. 태국처럼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스님들을 자주 볼 수 있으며, 탁발하는 모습도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내가 묵은 숙소 맞은편에는 왓 랑카가 있었다. '왓'은 캄보디아어로 사원을 뜻한다. 사원 안에는 많은 탑들이 있었고, 법당 안에는 국왕이나 훈센과 같은 정치인의 사진이 걸려 있는 점이 특이했다. 사찰 마당에는 캄보디아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다.
외국 관광객들은 왓프놈을 많이 찾는다. 전설에 따르면, 프놈펜의 이름은 14세기 무렵 '펜(Penh)'이라는 이름의 여인과 관련이 있다. 그녀가 메콩강에서 발견한 불상을 모시기 위해 언덕을 쌓고 사원을 지었는데, 이 사원이 바로 왓프놈이다. 프놈펜은 '펜의 언덕'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왓프놈의 외국인 입장료는 1달러이다.
물론 캄보디아 헌법은 국민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 다만 그 자유는 타인의 신앙·종교를 침해하거나 공공질서·국가 안보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특히 불교는 국가의 종교로 명시되어 있다(헌법 제43조). 또한 캄보디아 헌법 제6조에 따르면 국왕 승계 절차는 국왕이 사망하거나 퇴위할 경우 7일 이내에 국왕 선출위원회가 비밀 투표로 후계자를 정하는 방식이다. 이 위원회는 상원의장, 국회의장, 총리, 불교 종정 등 9명의 인사로 구성된다(헌법 제13조). 불교가 국왕 선출 과정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다. 이는 정교분리 원칙을 명시한 한국 헌법과는 대조적이다.

▲캄보디아 독립문 앞에 휘날리는 캄보디아 국기 ⓒ 여경수
캄보디아 국기 중앙의 앙코르 와트는 크메르 제국의 영광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영광이 단순한 과거의 추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네 개의 헌법이 시대마다 다른 이상을 담았듯, 현행 헌법 역시 새로운 캄보디아를 향한 희망의 설계도가 되기를 바란다.
물론 그 길은 쉽지 않다. 권력의 관성과 기득권의 저항, 그리고 역사의 무게가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헌법은 국민과 함께 숨 쉬며 진화하는 살아 있는 문서다. 한식당에서 만난 국제결혼 부부의 행복한 모습처럼,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모여 큰 흐름을 만들어갈 것이다.
캄보디아의 네 헌법이 보여주는 것은 좌절과 재기, 단절과 연속의 역사다. 그 모든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것은 하나의 희망이다. 1993년 헌법에 담긴 민주적 가치가 언젠가는 현실이 되고, 앙코르 와트의 영광이 과거의 유물이 아닌 미래의 가능성으로 재해석되는 그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