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살다 보면 눈앞이 깜깜해지는 순간들을 만난다. 특히 일상을 공유하는 가족이 아프거나 힘들 땐 모든 것이 마비되는 느낌이 든다. 그 대상이 내 자식일 때는 책임감과 죄책감이 더해져 그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발달장애 스펙트럼을 지닌 아이들의 부모들은 처음 병명을 진단 받는 순간, 삶의 빛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분이라고 한다.

"인생의 두꺼비집이 갑자기 탁 하고 내려간 것 같았다."

- 책 <발달은 느리고, 마음은 바쁜 아이를 키웁니다> 중에서

아이가 자폐 스펙트럼을 판정 받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한 정소연 작가의 비유처럼 말이다. 마치 정전이 일어난 듯 막막하고 어두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 13일 국립현대미술관 MMCA 다원공간에서 열린 '반짝 번쩍' 공연 무대에서,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만났다.

봄날의 꽃처럼 활짝 피어난 얼굴들

반짝번쩍 공연  강강술래 오프닝
반짝번쩍 공연 강강술래 오프닝 ⓒ 달리아

'반짝 번쩍'은 안은미컴퍼니와 서울특별시어린이병원, 국립현대미술관이 협력해 진행한, 장애아동과 부모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 발표 무대였다. 본격적인 무대에 앞서 국내 최초 의료 기반 공공기관에서 시작된 장애-비장애 통합 오케스트라인 서울시 별별하모니아의 축하 연주가 있었다.

그 후 무대 위 하얀 배경 위로 둥그런 보름달이 떴다. 참여자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부르며 등장했다. 맞잡은 손으로 길고도 둥글게 이어진 원 안에서 모두가 신이 나고 흥에 겨운 얼굴이었다. 그 후 20여 가족이 나와 자신만의 재능을 마음껏 발산했다.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케이팝데몬헌터스 OST인 '소다팝'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한복을 입고 갓을 쓰고 사랑가를 부르기도 하고, 징을 치고, 발레를 하고, 랩을 하는 등 정말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한 무대 위에서 펼쳐졌다.

별별하모니 오케스트라 오프닝 공연
별별하모니 오케스트라오프닝 공연 ⓒ 달리아

무대 위에서는 더 이상 다른 것은 틀린 것이 되지 않았고, 박자가 조금 맞지 않아도 발음이 약간 달라도, 음악의 비트보다 움직임이 더 빠르거나 느리다 해도, 괜찮았다. 조금만 다르면 눈총을 받고, 그것이 혐오로 이어지는 세상에서 자신의 느낌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마음껏 표현하고 관객들로부터 지지와 응원, 환호를 받는 순간 아이들의 얼굴과 몸은 봄날의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AD
더욱 감동적이었던 건 아이와 함께 무대에 선 부모들의 모습이었다. 무대 뒤편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살았을 부모들이 무대 위 밝은 조명 아래에 서서 아이들과 함께 자신만의 끼와 재능을 마음껏 표현하는 모습은 정말인지 통쾌했고, 뭉클했다. 공연을 보다가 문득 최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가 성진학교 신설안을 통과시켰을 때 부모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던 기사 사진이 떠올랐다. 세상의 편견과 혐오에 맞서, 아이들을 지켜내고자 애써온 삶의 흔적들과 어떤 간절함이 그들의 몸짓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대의 마지막엔 'SOo+Noah(계수정, 최노아)'의 라이브 퍼포먼스가 있었다. 피아니스트인 엄마가 피아노를 치고, 아들이 실시간으로 붓을 들고 글씨를 썼다. 무대 위에서의 두 사람은 단순한 모자 관계나 진단명 등을 넘어, 삶의 순간을 느끼고 표현하는 두 사람의 예술가로 함께 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무대가 끝나고 참여자들이 모두 다시 나와 신나는 음악과 함께 춤을 추었다. 무척 아름다웠고,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웠고, 공연의 제목처럼 반짝이고 번쩍였다. 세상의 모든 어둠을 밝힐 것만 같은 빛이 무대에 가득 뿜어 나오고 있었다.

SOo+Noah 라이브 퍼포먼스 계수정, 최노아 공연
SOo+Noah 라이브 퍼포먼스계수정, 최노아 공연 ⓒ 달리아

이런 공연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더 많이 열리길

이번 공연 예술감독을 맡은 안은미 무용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을 때, 저는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미술관과 극장이라는 두 공간, 그리고 춤이라는 언어가 가진 폭넓은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펼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공 기관이 지닌 포용성은 이번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의 토대가 되었고, 특히 서울특별시어린이병원과의 협업을 통해 그 가능성은 더욱 넓게 확장되었습니다. 각자의 고유한 표현을 존중하며, 그 안에서 반짝이는 개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해 갔습니다."

안은미 무용가 반짝번쩍 공연 중
안은미 무용가반짝번쩍 공연 중 ⓒ 달리아

남민 서울시 어린이병원장의 "본 공연은 단순히 춤을 추고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예술을 통해 치유하고 서로를 보듬는 여정"이라는 인터뷰와 김성희 국립현대무실관장의 "무대 위에서 함께한 반짝이는 경험이 앞으로도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따뜻한 빛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는 말도 깊은 울림이 있었다.

오랜 시간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해오며 나는 종종 치유의 원형을 더듬어본다. 그럴 때면 나는 이번 무대의 오프닝처럼 자연 속에서 둥글게 서서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나로 이어진 둥글고 큰 원 안에서는 누구도 이상하다고 배척되거나 차별 받지 않는다. 함께 몸을 흔들고 춤을 추며 살아있다는 기쁨이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하고 이어준다. 무엇이든 수용되는 안전한 장(場)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안고 품는 순간 오해는 이해로, 고통은 사랑으로, 어둠은 빛으로 변한다. 그것이 바로 승화이며, 예술의 지닌 힘이기도 하다.

공연을 보고 나오며, 나는 이런 공연과 무대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더 많이, 많이 열리기를, 더 많은 사람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예술로 자신을 표현하고 나누기를 바라게 되었다. 삶이라는 무대에서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고 응원을 받는 순간은 암흑처럼 깜깜한 삶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순간들이 되어 줄 테니. 그리고 그 빛이 우리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테니 말이다.

 반짝번쩍 공연 포스터.
반짝번쩍 공연 포스터. ⓒ 안은미컴퍼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안은미컴퍼니#반짝번쩍#발달장애스펙트럼#국립현대미술관#서울시어린이병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정현 (dalia35) 내방

일상예술가로 살아가며 교육, 예술, 심리에 관한 기사를 씁니다. @school_dalia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