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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 jontyson on Unsplash

33년간 직업계고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세상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이 아이들이 노동과 임금, 진로 문제를 이야기할 때, 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정치와 닿아 있었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종종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한국에서 교사는 말이 없다. 아니, 말을 할 수 없도록 법률로 규정된 존재다.

사회가 민감하다고 여기는 사안에 대해 입을 열면 곧바로 '정치적'이라는 무거운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정치를 말하는 순간,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선동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교사는 침묵한다.

하지만 침묵한다고 해서 정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침묵이 지배하는 공간에서는 진실이 왜곡되고, 오해는 쌓여가며, 누군가의 일방적인 입장만이 거대한 목소리가 된다. 학생들은 만 18세 투표권을 얻어 정치적 시민으로 성큼 나섰지만, 정작 그 자유를 안내하고 토론을 이끌어야 할 교사는 입을 다문 채 뒷걸음치고 있는 이상한 풍경이다.

정치적 인간, 즉 책임 있는 민주시민을 길러야 할 교사가, 정작 정치적 시민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는 이 거대한 모순. 이 글은 바로 그 모순의 정체를 파헤치고, 교사의 정치적 자유에 대해 다시 묻기 위한 시도다.

정치적 금치산자, 교사 vs. 만 16세 유권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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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닫혔지만, 질문은 교실 안에 떠 있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달콤한 이름표 아래, 교사는 말이 금지된 존재다. 한국에서 교사는 정치적 권리가 사실상 박탈된 존재나 다름없다.

'공무원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국가공무원법과 교육공무원법은 '정치운동에 관여할 수 없다'고 규정하며 교사의 정치적 표현을 광범위하게 제약하는 근거가 되어왔다(국가공무원법 제65조, 교육기본법 제14조).

2014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판한 SNS 글로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은 교사 이야기를 언론에서 본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흘러, 2025년 6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우리 학교 한 학생은 거리 유세에서 특정 정당을 홍보하고, 후보를 응원하는 지지 연설까지 했다. 해당 동영상은 학생 본인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학교에 버젓이 전파되었다.

법률은 만 16세 학생에게는 정치적 자율성이라는 성년의 왕관을 씌워주었으나, 정작 그 성장을 안내해야 할 교사에게는 여전히 정치적 금치산자의 족쇄를 채워두고 있다. 교사는 정당 가입조차 금지되는 반면, 그들이 가르치는 학생은 이미 정치 활동의 주체가 된 것이다. 이 장면은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의 교실이라고 믿기 어려운 기이한 풍경이다.

교사의 시민권은 어디에 있는가

학생은 선거에 참여하고, 교사는 침묵한다. 교사도 엄연한 시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교사는 직업을 선택한 순간,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 상당 부분을 제한받는다. 정당 가입은 금지되고, 정치 모임은 제한된다. 투표는 가능하지만, 그 외의 표현은 금기다.

이러한 제한은 '학생에게 미치는 교사의 막대한 영향력'과 '공무원의 행정 중립성'이라는 두 가지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미성년 학생들이 교사의 견해를 비판 없이 수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일견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이 명분은 곧 교사의 시민권을 유예시키는 근거로 악용되어 왔다.

실제로 2014년 헌법재판소는 교원의 집단적인 정치활동을 금지한 법 조항에 대해 합헌을 결정하면서도 (5:4 의견),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직무와 무관한 사적 영역의 정치적 표현까지 일률적으로 막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2020년 헌재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교원의 '정당 가입' 금지는 여전히 합헌으로 보았지만, '그 밖의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가입하는 행위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조항에 대해서는 헌법 불합치(실질적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처럼 교사의 정치적 자유는 법정에서도 치열한 논쟁거리였고, 2020년 헌재 결정으로 비로소 법적 장벽에 미세한 틈이 생겼다. 그러나 정당 가입과 선거 운동이라는 핵심 권한은 여전히 봉인된 상태다.

이 문제는 교사의 개인 권리만이 아니라, 교육의 품질과 직결된다. 물론 교사의 정치활동 제한이 곧 정치교육의 금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사 스스로가 정치적 시민으로서의 경험과 사고를 제한받는다면, 살아있는 정치교육을 하기 어렵다. 교사가 시민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어야, 비로소 학생도 시민으로 자라는 교육이 가능해진다.

정치가 열렸는데, 교육은 왜 닫혔는가

헌법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헌법 제31조 제4항)을 말했지만, 현실은 교사에게 침묵만을 요구했다.

학생들의 세상은 이미 정치로 열렸다. 이제 만 18세부터 투표할 수 있고(공직선거법 개정), 만 16세부터는 정당 가입도 가능하다(정당법 개정). 하지만 정작 교사는 이들의 활발한 정치적 표현을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학생에게 영향 줄 수 있으니 중립 지켜라." 교사는 이 구호 속에 갇혀 있다.

그렇다면 학생은 정치를 어디서 배울까? 가정과 미디어에서 접하는 정보는 종종 편향되어 있고, 또래 집단의 영향력은 때로 극단적이다. 교실이야말로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공공의 학습 공간이다. 그런데 그 교실에서 정치를 금기시하면 남는 것은 무관심뿐이다. 무관심은 민주주의의 가장 비옥한 적이다.

학생의 정치적 자유는 확대됐다. 하지만 그것을 책임 있게 다루는 교육은 여전히 막혀 있다. 그 자유가 책임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누군가 질문을 들어주고, 토론을 이끌고, 생각을 다듬어줘야 한다. 그 역할은 교사만이 할 수 있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공백이다

정치가 사라진 교실이 아니라, 토론이 살아 있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질문하고 말할 수 있을 때 시작된다.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는 이 문제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준다. '교화 금지, 논쟁성 유지, 학생의 행위 능력 강화'라는 이 세 원칙은,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고 서로의 주장을 근거로 토론하는 것이야말로 선동이 아니라 교육임을 말해준다.

한국 맥락에서 이를 적용한다면 이렇다. 교사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도록 학생을 유도해서는 안 된다(교화 금지). 하지만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는 이슈를 교실에서 논쟁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논쟁성 유지). 그리고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정치적 의사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행위 능력 강화).

하지만 지금도 나를 포함한 많은 학교 관리자가 말한다. "정치적인 건 건드리지 마." 학교 관리자의 '정치적인 건 건드리지 마'라는 주문은 교실을 평화롭게 지키는 중립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질문과 토론이 사라진 교육의 공백을 의미한다.

그 공백이야말로 혐오와 편향된 확신이 독버섯처럼 자라기 딱 좋은 환경이다. 우리는 교실에서 정치를 밀어낼 때, 민주주의를 가장 비옥하게 만드는 토론의 힘을 함께 내보내는 우를 범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려면, 교사부터 민주주의 안에 있어야 한다. 이는 교사가 교실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강요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교사 스스로가 정치적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경험할 때, 학생들에게도 그것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제는 열어야 한다

교사의 입은 지금 닫혀 있다. 학생들은 투표권을 얻었고, 정당에 가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정치를 이야기할 교사는 여전히 침묵을 강요받는다.

물론 교사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학생들이 교사의 의견을 비판 없이 받아들일 위험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를 아예 교실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민주주의 교육의 정답일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사의 무제한적 정치 활동이 아니라, 교실에서 다양한 관점이 존중받는 정치교육이다. 그리고 그 교육을 책임감 있게 이끌 수 있는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이다.

교사가 정치적 시민으로 온전히 살 수 있을 때, 학생들도 책임 있는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있다. 침묵이 아니라 대화로, 금기가 아니라 토론으로, 공백이 아니라 교육으로. 이제는 열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교원정치활동#교사정치기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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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봇고등학교 교장. 『되풀이되는 비극, 따개비 현장실습』, 『디지털 대전환 시대 직업계고 미래는』 등 직업계고 학생들의 삶과 미래를 응원하는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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