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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온 '당신의 이야기'>는 사회적 갈등의 최전선이자 해법을 찾는 공간인 국회에서 생략되고 지워져 온 목소리에 주목합니다. 저마다의 이유를 품고 국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국회 출입기자가 전합니다.

 흑산도발전소 해고노동자 이영일씨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섬발전소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흑산도발전소 해고노동자 이영일씨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섬발전소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남소연

'열흘(10월 17~27일), 600㎞(왕복거리), 14시간(이동시간).' 흑산도 섬사람이 바다 건너 여의도를 찾기 위해 미리 짜놓은 일정이었다. 전라도 사투리가 쟁쟁한 그가 23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온종일(오전 7시 30분~오후 6시) 국회의원들을 기다리며 말했다.

"올해는 누가 신경을 써줄랑가 어쩔랑가 모르겠네요."

17일 흑산항 막배를 타고 목포항에 도착한 이영일(58)씨는 엿새 뒤인 23일 새벽 국회에 다다랐다. 풍랑과 파도로 섬에 갇히지 않도록 "육지 일정"보다 한 주 일찍 흑산도를 빠져나왔다. 점심시간이 되자 국회 앞으로 국회의원·보좌진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그들의 눈길을 붙들기 위해 이씨가 준비해 간 피켓을 들었다. '해고는 살인'이란 문구가 열흘, 600㎞, 14시간을 감내하고 그가 바다를 건너온 이유와 함께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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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주민 생명 위협하는, 섬마을 발전소 부당해고 철회하라!"

흑산도의 불빛을 밝히는 흑산도발전소에서 30년 가까이 한국전력(한전) 하청노동자로 일한 이씨는 지난해 8월 14일 마지막 근무를 마친 다음 날 해고노동자가 됐다. 이씨의 피켓엔 같은 날 해고당한 섬마을 노동자 181명의 시간이 배어 있었다. "복직"의 길을 더듬으며, "일생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견디며 국회를 찾아온 이씨가 '집단해고 이후의 시간'을 말했다.

3년 만에 소송 이겼는데... 날아온 해고 통보서

 이영일씨가 드론으로 촬영한 흑산도발전소 전경
이영일씨가 드론으로 촬영한 흑산도발전소 전경 ⓒ 이영일

"피켓이라도 의원들이 좀 보고 가라는 간절함이 있는 거죠. 해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흑산도발전소에서 4㎞ 떨어진 작은 마을(흑산도 청촌리)에서 이씨는 태어났다. 섬과 육지를 오가는 화물차 기사로 일하다 1996년 한전 퇴직자 단체가 설립한 '전우실업(현 JBC)'에 입사하면서 발전소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용역회사였던" 전우실업에서 전기를 만드는 디젤 발전기를 돌렸다. 교대 근무로 28년을 일했던 그 시절을 회고하며 이씨는 "불규칙적인 생활"에도 "빈 시간 흑산도 지역·문화를 공부하며 섬에 나를 가둬놓을 수 있었다"라고 했다.

지금도 잘 알려지지 않은 발전소였다. 1987년 준공된 흑산도발전소(흑산면 예리 소재)의 지난해 발전량은 1만 7804MWh에 불과했지만(한전 발전자회사 평균 전기생산량은 6만 5352GWh), 그곳에서 생산된 전기는 흑산면 도서 일대로 뻗어나갔다. 주택·관공서·상가·학교 등 흑산도에 공급되는 전기는 이씨와 동료들의 노동으로 생산됐다. 지난해 8월 위탁업체가 바뀌면서 발전소 운영은 'JBC'에서 한전 자회사 '한전MCS'가 맡기 시작했다(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

"상상도 못했던" 해고도 그 과정에서 이뤄졌다.

이씨는 2020년 3월 도서발전 노동자들이 한전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3년여 만에 승소했다(2023년 6월 광주지법 1심 판결). 'JBC에서 불법 파견받은 노동자들을 한전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한전은 그러나 항소를 제기했고 직접고용 대신 한전MCS에 도서발전 업무를 위탁했다. JBC 노동자들이 한전MCS로 가려면 소송 취하서와 부제소 확약서를 제출해야 했다. "우리가 1심을 이겼는데 왜 자회사로 가야 하느냐"며 전적을 거부한 이씨에게 JBC는 해고를 통보했다.

한전 위탁계약 종료로 도서전력 사업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음에 따라 2024년 8월 14일 자로 근로관계 종료를 통지합니다.
- 지난해 7월 11일 JBC 대표이사 명의의 해고통보서

 흑산도발전소 해고노동자들이 지난 2024년 8월 15일 흑산도발전소를 찾아 출근 투쟁을 벌이고 있다.
흑산도발전소 해고노동자들이 지난 2024년 8월 15일 흑산도발전소를 찾아 출근 투쟁을 벌이고 있다. ⓒ 이영일

이씨가 국회로 올라올 때 그렇게 해고된 181명의 삶도 함께 건너왔다. 흑산도, 울릉도, 백령도, 조도, 연평도 등 40여 섬에서 전기를 생산하던 노동자들이 한 섬에서 적게는 1명, 많게는 18명까지 해고됐다(발전노조 도시전력지부 해고자 명단). 해고 다음 날 이씨는 발전소를 찾아 일종의 '출근 투쟁'을 벌였지만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공기업이 노동자들 편 들어주는 사례는 거의 없는 것 같더라고요. 한전은 항소·상고로 대법원까지 가겠죠. 저희도 각오는 하고 있죠."

이씨는 지난해 8월 해고 이후 국회 국정감사 기간이면 흑산도~여의도를 오갔다. 1년여간 왕복한 횟수만 7~8차례였다. 이번에도 이씨는 도서전력지부 70여 명과 국회 앞에서 한전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피켓 선전전을 벌였다. 그날은 한전 사장이 국정감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었다.

한전 사장에 "직접 고용하겠냐" 묻자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 국정감사에서 섬발전소 노동자 부당해고 문제와 관련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 국정감사에서 섬발전소 노동자 부당해고 문제와 관련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 국정감사에서 섬발전소 노동자 부당해고 문제와 관련해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 국정감사에서 섬발전소 노동자 부당해고 문제와 관련해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 남소연

"이분들을 사지로 내몰 거예요? 이 자리에서 확답을 주세요!"

23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용우 의원이 김동철 한전 사장을 불러 질의했다. 오는 12월 18일 도서발전 노동자들의 항소심(2심) 선고기일에서 "1심 결과가 그대로 유지되면 이들을 직접 고용하겠냐"는 질문이었다. 김 사장은 "2심 결과를 봐야겠다"며 확답하지 않았다. 한전이 패소한 1심 결과에 대해선 "일부 사례를 갖고 전부를 불법 파견이라고 내렸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김 사장은 "아시다시피 한전은 2001년부터 발전 사업을 할 수 없다"라며 "그래서 과거 지자체 계약직 공무원들이 해왔던 도서발전 업무를 한전 퇴직자들이 해왔는데 이젠 경제성장으로 민간의 발전 여력도 충분하다"라고 했다.

김 사장은 "한전 퇴직자들에게 (도서발전 업무를) 맡기는 건 특혜이기 때문에 경쟁 입찰에 맡기라는 게 감사원과 국무조정실의 요구"였다며 "그분들의 일자리도 지키고 처우도 보장하면서 안정적인 고용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2년 동안 고심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회사 MCS에서 그분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고용도 보장되고 처우도 안정되겠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용우 의원은 김 사장의 답변이 "구차한 변명"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통화에서 "직접고용 문제는 한전이 발전 업무를 하고 있는지와 아무 상관이 없다"라며 "도서발전 노동자들은 삶터이자 일터인 섬을 떠나 다른 일을 하는 것까지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면 한전은 법원 명령에 따라 그들에게 다른 업무를 부여해 직접고용을 이행하면 되는데 엉뚱한 얘길 하고 있다"라고 했다.

'한전 직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싸움은 '생존'을 위한 싸움으로 전환되고 있다. 해고 이후 고정 수입이 끊겼다며 이씨는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소송에서 진다면 "일생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소송비용 청구"는 물론이고 "손해배상이 거꾸로 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와 정책연구소 이음이 이들 해고노동자 151명의 생활 실태를 긴급 조사한 결과를 받았다. 해고 이후 소득이 없다는 답변은 34.4%(52명), 해고 이후 빚이 늘었다는 답변은 57.6%(87명)였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가 의심되는 비율은 29.1%(44명),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비율은 49.7%(75명)였다. 응답자의 75.5%(114명)는 알코올 의존이 있었고, 57.6%(87명)는 우울증으로 전문 치료가 필요했다.

이러한 "공공 부문의 이례적인 대규모 해고"(이용우 의원)에도 이씨가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는 국회가 자신들의 말에 관심을 보내올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두 달 뒤 항소심을 이기면 "내년엔 한전으로 들어갈 수 있겠다"는 바람으로 이씨가 말했다.

"올해가 소송 6년 차거든요. 섬사람들이 이렇게 고생한다는 걸 의원들이 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죠.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이 있는 건 정부가 바뀌고 노동자 출신 고용노동부 장관이 왔으니까, 항소심에서 우리가 또 이기면 한전이 상고를 포기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을까. 그저 용기를 갖고, 꾸준히 나아가야죠."

27일 이씨는 목포항에서 흑산항으로 가는 배를 기다렸다. 풍랑주의보로 결항된 배가 뜨길 기다리며 열흘, 600㎞, 14시간의 일정을 잠정 마무리했다. 언제까지 더 국회를 왕복해야 할지는 이씨도 알지 못했다.

 흑산도발전소 해고노동자 이영일씨(맨 오른쪽)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한국발전산업노조와 함께 섬발전소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흑산도발전소 해고노동자 이영일씨(맨 오른쪽)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한국발전산업노조와 함께 섬발전소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남소연



#흑산도#이영일#이용우#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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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온 '당신의 이야기'

오마이뉴스 복건우입니다.

오마이뉴스 사진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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