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25 APEC 반대 국제민중행동 조직위원회' 참여단체인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국제민중행동'은 APEC에 대한 국내외 인사의 목소리를 연재합니다.

온 나라가 APEC으로 떠들썩한 잔치 분위기다. 트럼프와의 한미정상회담에 모든 관심이 쏠리는 사이, 아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죽음'이 여기 있다. APEC 기업인 서밋으로 술렁이던 날인 10월 28일, 경주에서 멀지 않은 대구 달서구 성서공단에서 출입국 사무소의 강제 단속을 피하던 베트남 국적의 25세 이주노동자가 추락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은 예고된 참사이다. 출입국의 토끼몰이식 단속과 추격이 빚은 정부당국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참사이기 때문이다.

APEC과 이주민은 무슨 상관인가? 우리는 쉽게 상관관계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APEC의 성공개최를 위해 미등록 이주민을 단속하겠다고 밝힘으로써, APEC은 무엇이고, 이주민은 누구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던져줬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인권적, 폭력적 정부합동단속 규탄 공동기자회견 전국의 이주인권단체들은 10월17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반인권적, 폭력적 2차 정부합동단속 규탄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인권적, 폭력적 정부합동단속 규탄 공동기자회견전국의 이주인권단체들은 10월17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반인권적, 폭력적 2차 정부합동단속 규탄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전국이주인권단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24일 UN 총회 대표연설에서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내외국인 모두가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삶의 모든 현장에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AD
대통령의 발언이 무색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는 'APEC 2025 KOREA'를 성공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집중단속을 실시하는 한편, 인근 외국인 밀집지역 등에 대한 순찰 활동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부합동단속은 9월 29일부터 12월 5일까지 68일간이며 법무부, 경찰청, 해양경찰청,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등 5개 기관이 참여한다.

한국 정부가 40만 명의 미등록 이주민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미등록 이주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외국인 체류제도 등 이민정책부터 손 봐야 한다. 그런 제도 개선 대신에 '이주민들을 거리에서 치워버리겠다'는 발상을 한 자체가 가히 놀랍다. 2010년에 이명박 정부가 G20 정상회담 개최를 빌미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토끼몰이식 단속을 자행해 숱한 피해를 초래했던 과거가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큰 국제행사가 있을 때마다 피해를 입었던 빈민, 노숙인, 철거민의 과거사가 이주민에게 재현되는 상황이다. 삶의 모든 현장에서 존중받기는커녕,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UN 총회에서 새빨간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단속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실제 미등록 이주민 단속은 한국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지 않고 일자리를 보호하지도 않는다. 출입국사무소가 한 공장을 덮쳐 미등록 이주민을 한꺼번에 단속해 몽땅 데리고 가고 나면, 바로 다음 날 다른 브로커에 의해 다른 이주민이 그 자리를 채울 뿐이다. 단속이 늘어도 이주노동자는 줄지 않고, 단속이 줄어도 범죄율이 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감수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민들의 삶은 단속으로 인해 흔들리고 박살 난다. 또한 단속 과정에서 추락, 골절, 유산, 사망 등 수없는 인권침해가 발생한다. 공동체는 우리의 이웃, 직장 동료를 하루아침에 잃고 상실감을 겪는다.

이주민을 '가상의 적'으로 만드는 사회

미등록 이주노동자 폭력 단속의 오래된 역사 2008년 11월 12일, 마석가구단지에서 오전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경찰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폭력을 동원한 토끼몰이식 단속을 벌여 부상자들이 속출했던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가구단지의 한 골목길에 'I WANT GO BACK!' 'I ♡ 대한민국'가 적혀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폭력 단속의 오래된 역사2008년 11월 12일, 마석가구단지에서 오전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경찰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폭력을 동원한 토끼몰이식 단속을 벌여 부상자들이 속출했던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가구단지의 한 골목길에 'I WANT GO BACK!' 'I ♡ 대한민국'가 적혀 있다. ⓒ 권우성

정부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왜 이 불필요한 단속을 계속할까? 일상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미등록 이주민 단속을 포장해 더 대규모로 하겠다고 홍보하는 것은 잠시라도 온갖 사회문제의 원인을 '낮선 타인'에게 돌리기 위한 것이다. 미등록 이주민을 가상의 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울산출입국 단속실적은 이미 2023년 한 해 동안의 실적을 넘었다. 경주지역에서 더 이상 어떻게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말인가.

정부가 이주민을 범죄자처럼 몰아붙이고 사회불안의 원인으로 지목함으로써 가뜩이나 심각해지고 있는 이주민 혐오 선동 세력은 더 힘을 얻게 되고, 전체 이주민들의 삶은 더욱 불안해진다. 정부는 혐중집회 세력이 경주에 몰려들까봐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혐중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건 바로 정부다.

'포용적 성장'의 공백, 이주민 없는 인구정책

APEC 정책지원유닛(PSU)이 발간한 <Addressing Demographic Change in the APEC Region(APEC 지역의 인구 구조 변화 대응)>는 APEC 지역이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체 합계출산율이 1.3까지 낮아졌고, 고령인구 비율이 1990년 약 7%에서 2025년 약 15%로 증가했다. 관련해서 2025 APEC의 주요의제에 '인구 문제와 포용적 성장'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와 병행해서 다뤄져야 할 이주노동, 이민, 난민 정책 부분에서는 중요한 공백이 존재한다.

한국을 비롯한 APEC 회원국들은 국내적으로 이주·체류관리 강화, 미등록 이주민 단속 강화, 외국인 노동자 취업 조건 엄격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인 반이민정책이 국제적 비판을 받고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국 상황도 별다르지 않아 미국 상황을 별도로 다뤄야 할 필요는 못 느낀다. 어쨌든 APEC 회원국들은 인구감소와 노동력 부족이라는 공통의 과제에 직면해서도 이민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는 외면하고 있다.

인종차별 철폐 촉구 손도장 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3월21일)을 사흘 앞둔 2018년 3월 18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와 난민네트워크, 이주공동행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주최로 열린 '2018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 공동행동'에서 참석자들이 '인종차별(racism)'이라고 적힌 대형 천막에 손도장을 찍고 있다.
인종차별 철폐 촉구 손도장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3월21일)을 사흘 앞둔 2018년 3월 18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와 난민네트워크, 이주공동행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주최로 열린 '2018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 공동행동'에서 참석자들이 '인종차별(racism)'이라고 적힌 대형 천막에 손도장을 찍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이주민정책을 단순히 노동시장 문제로만 보면, 인권·정착·사회통합 측면이 간과될 위험이 크다. '포용적 성장'이라는 화려한 구호에는 이주민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포함되지 않는다. 경제성장의 논리가 인간의 존엄을 압도하고 있다. APEC은 자유무역과 노동력 이동의 효율화를 강조하지만 그 속에서 이주노동자는 철저히 '자원'으로 취급된다. 각국 정부는 이주민의 존재를 경제지표의 일부로 계산하면서, 동시에 '통제의 대상'으로만 본다. 노동의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불안정한 체류, 단속과 추방의 공포가 제도화되고 있다.

진정한 '포용'은 지금, 여기서 시작돼야 한다

성장 담론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완성된다. 오늘날 희생의 자리에는 이주노동자, 난민, 이주여성과 이주아동들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이 APEC 의장국으로서 진정으로 인권과 평화를 논하고자 한다면, 의제에 이주민 인권 보장과 이주노동자의 권리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를 국가간 교환의 대상으로 삼는 한, '포용적 성장'은 공허한 수사가 될 뿐이다.

이주민정책은 국제회의에서 논의할 "나중에 해결할 과제"가 아니라 "지금 준비해야 할 전략적 과제"다.

2025 APEC 반대 국제민중행동 조직위원회 참여조직(38개 단체, 10월 29일자)
국제전략센터, 균형사회를여는모임, 금속노조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너머서울, 노동자계급정당건설추진위원회, 노동당, 녹색당, 다극화포럼, 서대문은평시민연대, 서울여성회,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시민권력직접행동, 시민영화제작소 발언시간, 민주노총 서울본부, 아시아반전평화단체 AWC, 영등포시민연대 피플, 오월달빛동맹, 용산시민연대, 우주군사화와로켓발사를반대하는사람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MTU),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일터와 삶터의 예술공동체 마루,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의당, 좌파활동가 전국결집, 체제전환운동조직위원회,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긴급행동,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포항시민단체연대회의, 플랫폼C, 함께노동, 함께노원, 함께서울, 행동하는지역공동체동서울시민의힘, 국제민중총회(IPA)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주노동자 평등연대' 집행위원으로, '이주민센터 친구'의 센터장입니다.


#이주노동자#APEC#이주민단속#혐오#인종차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2025 APEC 반대, 트럼프 반대 <국제민중행동>

중국동포밀집지역인 대림동에 위치한 이주인권단체 이주민센터친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주민이 겪는 문제가 한국 사회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것을 매번 확인합니다.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향한 길에서 관심의 영역을 넓힐 수 있고, 배울 기회가 더 많아져 행복합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