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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정부 환국 기념 촬영 사진.(1945년 11월 3일) 맨 앞줄 백범 김구 왼쪽이 김규식이다.
임시정부 환국 기념 촬영 사진.(1945년 11월 3일) 맨 앞줄 백범 김구 왼쪽이 김규식이다. ⓒ 백범기념사업회

한국 보수세력의 주장 가운데 대한민국 건국일에 관한 억지는 무지의 소산으로 치부하기에는 끈질기고 집요하다. 또한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도 적지 않는 편이다. 일반인의 경우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 한 탓으로 돌리면 되겠지만, 식자층에서도 그렇게 믿고 있어서 문제가 크다고 하겠다.

이들은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건국일이라는 것이다. 이날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이해 7월 17일 선포된 제헌헌법에 따라 정부가 구성되고 내외에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하였다. 제헌헌법은 국호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선택한 '대한민국'을 그대로 쓰고, 정체도 민주공화제를 채택하였다. 그리고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재건'한다고 밝혔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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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분명히 '재건'이라 표기하였다. 그리고 1987년 개정된 제9차 개헌(현행헌법)은 전문에 다음과 같이 표기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뉴라이트가 '국부' 또는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이승만은 1948년 7월 1일 국회 본회의 발언에서 헌법기초위원회가 만든 제헌헌법 "기미년 3월혁명에 궐기하여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세계에 선포하였으므로 그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자주독립의 조국 재건을 하기로 함이라는 내용을 넣어달라"고 요청했다.(국회 속기록 1, 340쪽)
 환국을 앞두고 상해공항에서. 앞줄 가운데 소년이 이종찬 전 국정원장.
환국을 앞두고 상해공항에서. 앞줄 가운데 소년이 이종찬 전 국정원장. ⓒ 조호진

그는 또 1948년 8월 15일 초대 대통령으로서 행한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사에서 연호를 '대한민국 30년'이라고 언급하여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되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대한민국은 정부수립 후 제1호로 발간한 <관보>의 발행일을 대한민국 30년 9월 1일로 표기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공보〉를 모두 83호를 발행했는데, 대한민국 정부 공보처에서 이를 이어 <관보>를 발행하면서 발간 일자를 '대한민국 30년'으로 승계한 것이다.

뉴라이트가 득세하면서 건국절의 시비가 일었다. 뉴라이트 계열 역사학자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한민국 건국60년'이라며 역사왜곡을 시도했다. 그는 이어서 3.1절과 광복절 경축사에서 뉴라이트 역사관을 부추기고 정부의 주요 역사기관에 이들을 배치했다. 1948년의 건국론을 제기하고 건국절 제정을 시도했다. 국민의 완강한 저항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이들은 박근혜 정권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국정역사교과서 편찬을 시도했다. 이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왜곡된 역사관을 전수받아 역사관련 주요 기관에 이들을 임명하고, 이승만과 박정희를 추앙하는 '리박스쿨'을 지원하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주입시켰다. 이들의 뿌리는 이처럼 깊다.

뉴라이트는 한국사의 근간에서부터 왜곡한 조선총독부의 <조선반도사>에 뿌리를 두고, 권력의 비호를 받으면서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에서 탄핵된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이라 명시하고 임시정부를 폄하하면서 박정희 이래의 군부독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우리 현대사 전체를 왜곡한 것이다.

뉴라이트와 보수정권이 임시정부 폄하와 1948년 건국절을 집요하게 주창한 데는 의도된 배경이 있다. 친일파를 옹호하면서 자신들의 위상을 대한민국의 정통으로 삼고자 하는 게 목적이다. 1948년이 건국일이면 항일투쟁의 독립운동은 설 자리를 잃게된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정통은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반민주세력에 주어진다.

이들의 주장대로 이승만이 국부이고 건국의 아버지라면 헌법 전문의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은 공염불이 된다. 4월혁명은 곧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독재권력을 지칭한다. 이승만을 추앙하면서 동시에 헌법에 배치되는 반 헌법의 행위인 것이다.

건국절 주장의 핵심은 한마디로 '임시정부 부정'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뉴라이트가 집필한 <건국 60년>(홍보책자)에 이들의 의도가 잘 나와 있다. "임시정부는 자국의 영토를 확정하고 국민을 확보한 가운데 국제적 승인을 바탕을 둔 독립국가를 대표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실제 출발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공로는 1948년 8월 정부 수립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공으로 들리는 것이 마땅하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사실상 모태는 미군정기(1945~48)" 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독립운동가 덕분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출범한 게 아니라, 이들이 일컫는 '건국운동가'들이 주인공이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1949년 대한민국 건국절'은 친일파와 독재자를 애국자로,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를 반국가 사범으로 뒤집기 위한 일종의 역사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힘(옛 한나라당, 새누리당)이 여러 차례 기존 독립유공자 예우에 대한 법률을 대신 하자고 입법 발의한 '건국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는 서북청년단 등 극우단체 회원들까지 '건국 유공자' 대상에 포함돼 있다. (주석 1)

국가의 기본 법인 헌법 더욱이 헌법의 기본이념 또는 그 정신을 표출하는 근본 규범을 담은 전문에 담긴 뜻을 무시하면서 나라의 생일(건국일)을 비틀려는 행위는 용납되기 어렵다. 그것이 국치 이후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생명을 내걸고 독립운동을 벌인 애국자들 대신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들의 죄상을 덮기 위해 벌이는 작태라면 그 죄가 가볍지 않다.

미국은 1776년 7월 4일이 건국일이다. 식민지 13개주 대표들이 모여 독립을 선언한 날이다. 이때는 아직 독립이 안 되고 영국과 전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미국은 1783년 파리조약에 의해 독립이 승인되고 1789년 9월 4일 아메리카합중국 헌법이 제정 공포되어 정부가 수립되고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런데도 미국은 건국일을 정부수립일인 1789년이 아닌 1776년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시민혁명군이 바스티유 감옥을 점거하고 프랑스혁명이 폭발한 1789년 7월 14일을 혁명 기념일과 건국기념일로 삼고 있다.

-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주석
1> 이준식, '민주공화제의 탄생, 1919년?, 1948년?', <경향신문>, 2025년 5월 1일.

덧붙이는 글 | [현대사의 논쟁과 쟁점]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현대사#현대사논쟁#현대사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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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논쟁과 쟁점]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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