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수업시간에 받은 초콜릿 막대과자. ⓒ 김지영
얼마 전, 주민자치센터 영어강좌에서 뜻밖의 경험을 했다. 수업 시간, 한 동료가 조심스럽게 빼빼로를 모두에게 건네며, '11월 11일'이 어떤 날인지 서툰 영어로 설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선생님을 비롯해 모두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교실은 웃음과 따뜻함으로 물들었다(관련 기사 :
주민자치센터 영어강좌가 인기 폭발했던 이유).
이 작은 과자 하나가 만들어낸 분위기는 생각보다 큰 힘이 있었다. 나는 빼빼로데이를 늘 상업적인 행사로만 여기곤 했지만, 그날 만큼은 과자를 통해 마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게 됐다. 문득 미국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다. 지난 여름 LA 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카가 직접 손편지를 써서 민트초코맛 걸스카우트 쿠키를 건넸던 기억이다. 평소 같으면 그냥 먹고 지나쳤을 쿠키였지만, 조카의 마음이 담긴 쿠키 상자를 꼼꼼히 읽으며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조카에게 받은 미국 걸스카웃 쿠키. ⓒ 김지영
걸스카우트 쿠키가 처음엔 브랜드 이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다. 걸스카우트 쿠키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그 역사를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에서 18명의 소녀들이 모여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호기심과 믿음을 공유하며 걸스카우트의 첫 부대를 정식 등록했다. 이 작은 모임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처럼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걸스카우트의 창립자 줄리엣 고든 로우(Juliette Gordon Low)는 1912년 이 부대를 이끌며, 소녀들이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의복과 음식을 모으는 구호 활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그러던 중 자원봉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쿠키를 구워 판매했는데, 이 쿠키가 맛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걸스카우트 활동 자금을 마련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미국의 걸스카우트 소녀들은 매년 봄이면 직접 쿠키를 들고 이웃집을 방문하며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목표 설정과 계획 수립, 직접 판매와 협력을 경험하며 리더십과 책임감, 금융 교육까지 배우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다.
이처럼 미국의 걸스카우트 쿠키가 단순한 판매를 넘어 교육과 나눔의 의미를 지닌 전통이라면, 한국의 빼빼로데이도 더 큰 의미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빼빼로데이 역시 11월 11일이 되면 거리와 학교, 사무실이 들썩인다. 편의점과 마트에는 화려한 포장의 과자들이 가득하고, 사람들은 친구와 연인, 가족에게 빼빼로를 건네며 마음을 전한다.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힘입어 전국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미국의 걸스카우트 쿠키처럼,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그 수익금을 공동체 활동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발전한다면 빼빼로데이는 더욱 의미 있는 날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과자를 매개로 한 소통과 나눔, 그리고 성장의 경험이 우리 사회 전반에 더욱 널리 퍼지길 기대해본다. 올해 빼빼로데이에는, 여러분도 소중한 사람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